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66 )

지리산 남원에 교룡산이 있다 그곳의 주인은 교룡이다. 교룡은 여의주와 뿔이 없는 미래에서 올 황룡이다. 교룡은 평소에는 백성을 보호하고 적은 물리쳐 고을을 잘 지키지만 여의주를 입에 물면 뿔이 나고 황룡이 되어 승천해 버린다.

남원 사람들은 교룡이 자손만대로 자신들의 고을을 지켜주기를 바라며 승천하지 못하도록 여의주 바위를 보이지 않도록 땅속에 숨겨야 했다. 그 여의주가 대곡방 신계리에 있었다 지금의 행정구역은 대산면 신촌마을이다. 남원 백성들은 그곳에는 대나무를 심지 못하게 했다. 그 사연은 이랬다.

죽순이 땅속에 숨어 있는 여의주 바위를 밀어 올리면 용이 보고 입에 넣어 승천해 버리기 때문이었다. 어느날 좋은 땅을 찾아 다니던 도사가 이곳을 지나다가 기운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 잠시 기도를 했다 그 도사는 나중에 다시 이곳을 찾아오기 위해서 대나무 지팡이를 꽂아두었다.

그 대나무 지팡이는 살아서 번창했고 몇년후에는 많은 죽순이 올라오면서 땅속에 숨어 있던 여의주 바위를 밀어 올렸다. 남원 사람들은 황급히 도선국사를 찾아가 대책을 물었고 그 여의주 바위를 반으로 잘라 부처를 모시라는 답을 들었다.남원 사람들이 그 바위에 부처를 모신후로부터 교룡은 승천하지 않고 어려운 시기마다 고을을 지켜왔다. 

정유년 남원성 전투에서 조선군이 교룡산성에서의 전투를 내세웠던 것도 동학농민군의 지도자들이 교룡산성에 들어 백성들의 꿈을 실현하려 했던 것도 교룡이 승천할 때 수많은 물고기들이 따른다는 백성의 용이기 때문이었으리라. 신계리 마애불에 대나무와 절과 스님이 존재하지 않은 것은 고을의 수호신 교룡의 승천을 막는 여의주의 터전이기 때문이었다. 

남원 백성들은 주지와 절이 없는 그 마애불에 초파일마다 죽순을 공양으로 올렸다. 조선시대 문화적 몸집이 조선팔도만 했다던 그래서 딸을 가장 시집 보내고 싶은 고을이었다던 남원은 경주와 안동 같은 고을들과 함께 문화적 종가였다.

정부는 그러한 가치를 활용하여 국격을 높이고 시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담아낼문화적인 고을로 가꾸어 가겠다며 법정문화도시 30개 도시를 선정 관리에 들어갔다. 이제 그 그물안에 들지 못한 고을이 되었으니 문화적 종가회의에서 회원 퇴출이 된것이 아니고 무엇이랴.

천년의 도시는 문화적 어른의 고을이다. 쇠락해져 가는 고을의 이름값 나이 값을 해내야 할 과제보다 앞에 놓인 큰 과제는 없다. 손에 쥔 마이크 대신 그 손으로 백성들의 가슴에 대고 심장소리를 들어야 할 때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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