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일당 독식 구도 하에서 지방정치가 비관적이다. 특히 호남지역은 더불어민주당, 영남지역은 국민의힘의 공천이 곧 당선으로 인식되는 상황에서 '일당 독식주의'가 낳은 병폐가 갈수록 심각하다. 이번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나타난 '무더기 무투표 당선'은 대표적인 사례다. 

역대 최저 경쟁률 속 494명 무더기 '무투표 당선', 왜?

YTN 5월 4일 뉴스 화면 캡처
YTN 5월 4일 뉴스 화면 캡처

6월 1일 실시될 지방선거를 불과 15일 앞두고 전국 각 지역에서 출마하겠다고 등록을 마친 후보들의 공개 현황은 가히 ‘충격’ 그 자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선출하는 자치단체장을 비롯한 교육감, 광역의원, 기초의원은 모두 4,132명. 이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은 모두 7,616명으로 평균 경쟁률이 1.8대 1로 나타났다. 이는 역대 지방선거 중 최저치다. 

전북지역에서도 전국 평균 경쟁률과 똑같은 1.8대 1을 기록했다. 모두 254명을 선출하는 전북에서 도지사 후보 2명, 교육감 후보 3명, 시군단체장 후보 46명, 광역의원 후보 53명(비례 10명), 기초의원 후보 291명(비례 50명) 등 총 455명의 후보가 등록해 얼핏 경쟁률만 보면 전국의 축소판을 연출했다. 

그런데 문제는 13일 마감된 지방선거 출마 후보 등록 결과 전국 313개 지역구에서 무려 494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전국에서 지역구 기초의원 출마 후보 282명, 지역구 광역의원 출마 후보 106명, 비례 기초의원 후보 99명 등은 후보자가 단독 출마했거나 2명을 뽑는 선거구에 2명만 나오는 등 투표 자체가 필요 없게 됐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와 비교해 선거구 수로는 4배 이상, 무투표 당선자 수로는 5배 이상 폭증한 수치다. 대선 이후 3개월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이처럼 무투표 당선자가 속출한 이유는 뭘까?

'전북=민주당 공천=당선' 인식 공고..."줄서기·계파정치 더욱 심각" 

JTV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JTV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전북지역에선 광역의원 40명(지역구 36명, 비례대표 4명) 중 절반이 넘는 22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이들은 모두 민주당 소속이어서 ‘민주당 공천=당선’을 더욱 선명하게 했다. 후보 단독 출마로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된 광역의원 선거구는 전주 10곳, 군산 3곳, 김제 2곳, 완주 2곳 등 전체 지역구의 60% 이상에 달할 정도다. 

민주당 당세가 강한 전북에서는 광역의원 외에도 기초의원 후보들 중 29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역시 모두 민주당 소속이다. '전북=민주당 공천=당선'이란 등식이 성립되다보니 앞으로 민주당 공천을 받기 위해 후보들의 줄서기가 심해질 것은 더욱 자명해졌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민주당 중심의 자기 사람 심기와 줄서기, 계파정치 등으로 부작용이 심각할 소지가 더욱 다분해졌기 때문이다. 

전국 상황을 다시 살펴보자. 기초단체장 후보들 중에선 대구 중구와 달서구, 광주 광산구, 전남 보성군과 해남군, 경북 예천군 등 6곳에서 투표 없이 당선이 확정됐다. 모두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이다.

이 외에 전국적으로 광역의원 106명, 기초의원은 비례대표를 포함해 381명이 무투표로 당선됐다. 이들 지역 역시 호남은 민주당, 영남은 국민의힘의 쏠림 현상이 더욱 강화돼 무투표 당선이 증가했다.

지방선거 한계..."거대 양당 구도 속 갈수록 무소속 출마 줄어들 것" 

KBS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KBS 5월 14일 뉴스 화면 캡처

지방선거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낸 이번 선거는 거대 양당 중심의 진영 대결 양상이 대선부터 확고해져 불리한 지역에 출마 자체가 줄었기 때문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또한 대선 이후 3개월 만에 치러진 지방선거여서 대선 기간의 극심한 양당 대결 구도가 상당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무투표 당선자가 나온 선거구에서는 공직선거법 275조에 따라 후보자 신분을 유지하되 선거운동이 금지된다. 벽보 붙이기나 유세도 할 수 없다. 그러나 워낙 낮은 경쟁률과 선거도 치르기 전에 무투표로 당선된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속출해 유권자들의 선택권이 막혀 선거제도 자체의 문제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허탈과 실망, 정치 냉소가 더욱 커졌다. 

대선의 과열된 경쟁 구도가 지방선거를 깜깜이 선거로 몰아넣어 국민들의 지방선거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리고, 극심한 양당 구도의 대선 분위기가 지방선거에 옮겨붙어 지역별로 ‘특정당 공천=당선’ 공식을 더욱 공고하게 만든 형국이다. 

사상 유례 없이 지방선거가 대선과 맞물려 실시되면서 선거에 대한 피로도 누적과 대선 결과에 대한 실망, 불만 요인 등이 이번 지방선거에 반영됐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거대 양당 구도가 지속되는 한 무소속 출마 후보는 더욱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민주주의 꽃' 선거제도·민주주의 위기, 단독 출마 시 찬반 투표 등 대안 필요  

지역 정치권 관계자들도 “과거 지방선거에서는 강한 당에서 경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무소속으로 상당히 많은 후보들이 출마를 했는데 이번엔 무소속 출마자도 줄어들면서 전반적으로 경쟁률이 낮아진 것 같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 2018년 지방선거 당시 무투표 당선자의 5배가 넘는 숫자로 최근 20년 새 가장 많은 숫자라는 점에서 지방선거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개선해야 할 때라는 지적이 높다. 유권자는 선택할 수 있는 다른 후보가 없는 것 또한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투표 자체를 실시하지 않아 지지율로 민의를 보여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번 지방선거처럼 특정 정당 쏠림 현상과 무투표 발생이 두드러진 사례는 처음이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무엇보다 이로 인한 피해는 유권자들 몫이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 선택권마저 빼앗긴 기형적인 지방선거 제도를 개선하는 방법 외에는 길이 없다는 볼멘소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의회 내부에선 물론 집행부의 견제 세력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다. 

공천이 바로 당선이기 때문에 유권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말았다는 점에서 '민주주의 꽃'이라고 여겨왔던 선거제도가 큰 위기에 직면했다. 이는 곧 '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지적이 팽배하다. 이 때문에 단독 출마 시 찬반 투표를 하는 등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비등하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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