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 통제 전략(3)] 오리무중(五里霧中) 전략
언론이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항을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은 모른다. 정치적 부담이 되는 일방적 위안부 합의 문제나 국정농단 비선실세문제, ‘사자방’ 비리문제 등에 대해 언론이 보도 자체를 하지 않거나 축소하게 되면, 국민은 사안의 심각성, 불법 폐해를 알 길이 없다.
헌법이 보장한 국민의 알권리 실현을 위해 언론이 보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헌법적 위헌소지가 다분하지만 권력과 결탁하거나 낙하산 사장이 자리 잡은 언론사는 알아서 보도하지 않기, 하더라도 작게 취급하기, 어떤 내용인지 아리송하게 보도하기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하는데 이는 언론 통제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명박·박근혜 시대 언론 통제 전략 첫 번째로 '오리무중(五里霧中) 전략'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편집자주
언론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의 알권리 훼손, 언론은 직무유기 비판에 직면

정치 권력의 치부나 비리 등에 대해 보도하지 않아 뭐가 뭔지 모르도록 하는 가장 기초적인 ‘무보도(無報道)’ 방식이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거나 중요사항에 대해 보도하지 않으면 국민은 뭐가 뭔지 알지 못하는 소위 ‘오리무중(五里霧中)’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국민의 알권리는 훼손되고 언론은 직무유기라는 비판에 직면한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가장 크게 몰락한 방송사는 <MBC>라는데 이견이 없다. <MBC>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과 파업은 일상이 됐지만 시청자, 일반 국민들은 왜 파업하는지, 얼마나 장기간 파업을 하며 누가 왜 해고당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2017년말 해직 PD 최승호가 <MBC> 사장으로 복귀한 것은 한국 방송사의 일대 사건이었다. 그도 한때 해고된 언론인이었다. 불공정, 편파 방송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며 당시 김재철 사장 등 경영진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한 대표적 인사였다.
<MBC>는 역사의 고비에서 국민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해 온 공영방송이다. 공익성과 공공성을 최우선 가치로 존재하는 <MBC> 방송은 정의가 뒤틀리거나 훼손된 사건을 바로 잡고자 노력해왔다. 권력의 부당한 개입, 권력과 재벌의 결탁 등을 고발하며 한국사회의 건강한 감시견 역할을 해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언론들, MBC 파업에 침묵...시청자들도 별 관심이 없었던 이유는?

그런 <MBC>가 내홍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 그 사연이 무엇인지, 타당한 사유가 있는지 한번쯤 관심을 갖고 살펴보는 것이 시청자의 도리다. 시청자의 지지나 이해 없이는 파업이라는 극단적 수단은 성공을 거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언론은 대부분 <MBC> 파업에 침묵했고 시청자들은 별 관심이 없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MBC> 언론인들은 절박했다. 보도를 못하도록 하는 소위 ‘보도누락’에 대해 항의했지만 뜻을 이루기 어려웠다. 가장 치열했던 2012년 파업 때 <MBC> 기자들은 스스로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의혹 △김문수 경기도지사 119 전화 등 권력에게 민감하고 불리한 기사들이 잇달아 축소, 누락됐다고 고백했다.
또 반값 등록금, 한미 FTA, 10.26 재보궐선거 같은 첨예한 사안에 대해서는 균형을 현저하게 잃은 불공정 보도가 이어졌다고 자기반성을 했다. 심지어 경쟁방송사인 <KBS>와 <SBS>가 다 보도한 내용조차 노골적으로 뺀 사실까지 언급했다. 내부 구성원들이 얼마나 참담한 심정이었을까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MBC> 기자들은 스스로 성명서에서 “가장 공정하고 비판적이라는 평가를 받아온 <MBC> 뉴스가 불과 몇 년 사이 (이렇게) 가장 불공정하고 순치된 언론으로 전락했다”며 “내부의 문제제기는 무시당했고, 취재 현장의 목소리는 묵살됐다”고 탄식했다. “일 잘하고 바른 말 잘한다는 기자들은 소리 없이 한직으로 밀려났고, 소통이 생명인 언론사 내부에서, 언로의 숨통은 그렇게 죽어갔다”고 기자들은 고백했다.
MBC 낙하산 사장, 취임 과정에서 정당한 권위와 이미지 크게 훼손

이런 언론 통제 전략이 청와대에서 직간접적으로 내려오게 되면 바로 움직이는 것은 <MBC> 사장이다. 김재철 당시 <MBC> 사장은 취임 과정에서 이미 정당한 권위와 이미지가 크게 훼손돼 있었다. 취임 이후 그의 인사정책에 대해 내부 구성원들의 불만은 매우 높았다. 유능한 제작인력을 비제작부서로 배치시켰다는 비판, PD수첩을 무력화시켰다는 비판 등...회사가 비상한 상황으로 흘러가는데도 그는 일본 패션쇼 참석이라는 외부 행사에 참석했다.
공영방송 <MBC>는 <KBS>와 함께 주요 뉴스 보도하지 않기라는 언론 통제 전략의 충실한 수행자 역할을 했다.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리거나 불편한 아이템의 경우, 자기검열을 통해 ‘보도하지 않기’로 자신의 사장직을 연장해나갔다.
<MBC>나 <KBS>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소위 조·중·동이라는 주요 신문도 무보도 전략을 성실히 수행했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신문보도비평에 따르면, 2017년 11월 12일-13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소위 ‘MB 블랙리스트’ 관련 보도에 대해 동아와 중앙은 단 한 건도 보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일보는 단 한 건 보도에 그쳤다는 것이다.
MB 블랙리스트는 정보기관이 노골적으로 방송장악과 민간인 사찰 등 범죄행위와 반인권적 행태를 벌였다는 것으로 매우 주요한 사안이었음에도 조·중·동의 ‘보도하지 않기 전략’이 가동된 것이라는 점이다. 반면에 <한겨레>, <경향신문>, <한국일보>는 같은 기간 4건, 4건, 3건 각각 보도했다고 한다.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 공영방송사은 물론 주요 신문들도 보도하지 않아...전형적인 ‘무보도 전략’

보도 방식과 내용도 중요하지만 아예 보도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언론 통제 전략의 핵심적인 부분이다. ‘우리 편에 불리한 기사는 보도하지 않고 상대편에 불리한 기사는 확대, 과장, 날조까지 해내는 언론’은 언론이 아니다.
2014년 국정원이 간첩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중국 공문서까지 위조한 국정원 간첩조작 사건은 국정원과 검찰이 한 개인의 인권을 어떤 식으로 유린하고 불법을 저지를 수 있는가를 보여준 충격적 사건이었다. 뉴스타파의 특종으로 보도된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은 그러나 공영방송사는 물론 조·중·동 같은 주요 신문에는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무보도 전략’이었다.
주요 뉴스를 보도하지 않는 대신 <KBS>, <MBC> 등 공영방송은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는 날씨 이야기, 동물이야기, 연예인 신변 잡담으로 채웠다. 무난한 방송같지만 제한된 시간에 몰라도 될 것을 보도하고 정작 알아야 할 것을 빼버리는 반 저널리즘적 행태는 지적되고 경계돼야 한다.
그러면 뉴스의 가치 기준은 무엇인가. 다음과 같이 7가지로 정리한다. 언론사마다 주요 뉴스가 비슷한 이유는 이런 유사한 뉴스 가치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벗어날 경우,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뉴스의 가치 기준 7 가지
무엇이 주요 뉴스가 되는지 뉴스의 경중 판단은 어떻게 할까? 막연한 감으로 하는 것 같지만 보편적으로 공식이 있다. 그 공식에 대해 나라마다 언론사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으로 7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공식에 따라 보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면 어느 정도 크기로 할 지 등 언론인이 평가, 선택한다.

새로움
뉴스는 새로워야 한다. 어제의 뉴스는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물론 어제의 뉴스라도 오늘 다른 것이 추가된다면 뉴스가 된다. 범법 행위로 소송 당한 ‘박근혜의 블랙리스트’에 이어 이명박의 블랙리스트가 나왔다면 또 다른 뉴스가 된다. 이를 보도하지않는다면 정상적이 아니다.
의외성
뉴스는 특이해야 한다. 의외의 이야기 예를 들면, 대통령이 수석, 장관 등 참모를 장기간 만나지않고 서면 보고만 받거나 비선 실세와 어울리는 것은 큰 뉴스가 된다. 이런 의혹만 있어도 의외의 일로 보도할 뉴스 가치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
중요성
정치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 중요하다고 판단되면 뉴스가 된다. 위안부 합의문제는 한일간 외교적으로 중요한 사안이므로 어떤 내용의 합의인지, 이면합의 여부 등은 중요한 뉴스 가치 판단이 된다.

규모
규모에 따라 뉴스의 경중이 나뉜다. 304명이 한꺼번에 눈앞에서 사망했다면 큰 사건이다.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을 생매장했다면 더 대형 뉴스가 된다. 자원외교로 날린 돈이 수천억원이 아니라 수조원인데, 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면 역시 큰 뉴스가 된다. 그래서 한국은 뉴스 천국이다.
시의성
정치를 타이밍의 예술이라고 부르듯 언론도 타이밍에 따라 뉴스의 경중이 갈린다. 공기업 부정 채용이 광범위하게 번질 정도로 일상화됐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전수 조사라는 타이밍에 걸려들면 뉴스가 된다.
거리감
지리적으로 멀거나 관계가 없는 사안은 뉴스 가치가 낮은 편이다. 국제뉴스가 국내뉴스보다 관심이 적은 것은 국민의 시각에서 ‘남의 나라 이야기’라는 낮은 뉴스 가치 기준 때문이다. 자신의 이익이나 실생활에 직결될수록 뉴스 가치는 높아진다.
흥미성
인간적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뉴스의 가치 기준이 높다. 비극의 현장이나 전쟁상황에서도 인간적 흥미요소를 담고 있는 이야기는 뉴스가 된다. 기자들은 취재과정에서 감동, 놀라움, 안타까움, 슬픔 등 인간의 감성을 건드리는 사안은 따로 뉴스로 만들기도 한다.(계속)
/김창룡(인제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