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의소리' 창간에 바란다]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신문은 공무원이 봅니까? 농민이 봅니까?”
“신문은 쓰레기통이 봅니다.”
2015년 도내 지역 행정감사에서 신문구입 예산을 조정하라는 군의원의 지적에 담당자가 무의식적으로 내뱉었던 유명한 발언이다.
당시 지역신문에 대서특필되고, 주재기자들은 고위 공무원이 보여준 지역 언론에 대한 인식이라며 사과를 요청하기도 했다. 씁쓸한 해프닝이다.
“기사가 꺾이는 일이야 다반사였다. 현직 판사가 술 취해 식당 밖에서 옷 벗고 행패를 부려도 ‘킬’, 태풍으로 공장이 피해를 봐도 청주방송 주주 회사 건물이어서 ‘킬’, 공사 현장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해도 주주 회사의 일이라 ‘킬’이었다. 청주방송 모기업인 두진건설 아파트는 취재 보호 지역이었다. 그 아파트에서 경찰이 용의자를 추적해 용의자가 추락 사망해도 사건은 보도되지 않았다. 대신에 청주방송 보도국 간부들은 타 언론사에 전화해 보도를 막기 바빴다.”
“보도국 취재기자는 체면을 팔아가며 청주방송 주최 콘서트 표를 팔고 카메라 기자는 특정 날마다 회장이 다니는 종교시설, 기부 행사장, 골프대회에 참석해 그와 그의 아내를 카메라에 담아야 했다. 시간을 못 맞춰 제대로 못 찍으면 보도국장에게 핀잔을 들었다. 그건 용납 못할 낙종이었다.”
아래는 <미디어오늘>이 5월 18일 보도한 '옛 청주방송 기자가 고백한 진짜 낯부끄러운 기억들'(5/18) 기사이다. 신문사를 넘어 민영방송사도 기업인에 의해 사고 팔리면서 지배구조 문제가 언론계 주요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웃고 넘기기에 위 발언들은 현재 지역 언론이 처한 현실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3%. 지역신문 구독률은 이미 2000년대에 3%대로 내려갔다. 지역방송 시청률도 한 자릿수에 머무른 지 오래다. 지역 언론에서 의제화되는 내용은 공무원과 지역의 오피니언 층 외에 어떤 시민들이 주 독자층인지 파악되지 않는다.
전북 언론사는 5년 만에 150% 증가했다. 전라북도 신문 등록 현황을 보면 2014년 107개였던 언론사 수가 2019년에는 162개로 150% 증가했다. 만 명당 1개의 언론사가 존재하는 셈이다. 전북신문에서는 매일 먹고 살기 어렵다는 아우성으로 가득한데 아이러니하게도 전북 언론사 수는 증가한다.
반면 전북지역에 등록된 17개 전북일간지 중 만 부 이상의 유료독자가 형성된 곳은 단 두 곳에 불과하다. 구독료로 재정을 유지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광고도 없다. 지역신문에서 간혹 나오는 백화점, 향토기업을 제외하고 대기업 광고가 사라진 지 벌써 오래전 일이며 대부분 자사 행사, 특수 관계 회사들의 광고로 지면을 채우고 있는 실정이다. 일명 ‘대포광고’도 채우지 못하는 지역신문 상황에서 언론사는 왜 여전히 블루오션의 영역처럼 남아있는가.
이 과정에서 집중하게 된 것이 지자체 등 공공기관이 지출하는 홍보예산이었다.
전북민언련에서 매년 정보공개 청구해 받는 '전북지역 대언론 홍보예산 분석 보고서'를 보면 전북 광역‧기초‧공공기관 등에서 구독료, 오찬만찬비용, 공고‧광고비, 후원협찬 비용 등이 2016년 약 140억 정도로 매년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지만 이를 지출하는 집행 기준 등은 명확하지 않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은 지자체장의 의중이 감안된 자의적 집행을 가능하게 해 홍보비가 관언 유착의 고리로 작용하게 한다. 즉 적당히 보도자료를 인용해 주고, 지자체의 홍보비만 일정하게 받으면 적은 인력으로 얼마든지 언론사를 운영하면서 기자를 통한 정보획득으로 기타 사업에서 소득을 발생시킬 수 있는 지역 언론의 특수한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시민단체에서 주장하는 지역 방송의 공공성 회복, 방송 사유화 주장이 공염불일 수밖에 없다.
지역 언론계는 이제 언론 촌지, 광고형 기사, 후원협찬 비대화 등 고질적으로 지적 받던 문제 외에 사주의 사업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반영시키려는 내부의 압력이 지역에서 공론화되어야 할 의제를 실종시키는 것 아니냐는 의심과 비판에 직면하게 되었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 지배구조의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넓어졌으나 여기에 대항하거나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내부적 여건은 과거보다 더 나빠졌다.
전북지역 신문사 중 노조가 형성되어 있는 곳은 한 군데도 없거니와 시민들이 보여준 언론개혁에 대한 열망마저 지역 언론은 관심사가 아니라는 것도 어려움을 가중시킨다.
때문에 지역에서 오랜 시간 미디어 비평을 이어온 박주현 대표의 <전북의 소리> 창간이 매우 반갑다. <전북의 소리>는 “성역 없는 감시와 비판을 통해 언론 본연의 역할과 기능에 충실”하겠다며 “지역 이슈에 대한 책임 있는 대안 제시를 통해 상관조정 기능에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을 내비쳤다.
또한 「감시와 비평」 코너는 시작과 동시에 지역 언론에서 침묵하거나 축소되는 여러 의제들을 다루면서 집중된 권력을 해체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미디어 비평지의 역할도 함께 하고 있다.
보도 실태와 한계를 짚는 분석과 동시에 중심과 변방의 구도를 넘어 지역에 희망을 주기 위한 여러 전문가의 칼럼진도 보태지고 있다. 이러한 활동은 시작도 어렵지만 과정도 어렵다는 점에서 많은 응원이 필요하다.
당장 “네가 뭔데”라는 따가운 눈총을 견뎌야 한다. 동료 언론인, 이런저런 지역 내 인사들에게 한 마디씩 듣기 십상이라 웬만한 정신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개선의 빌미를 던지기 위한 노력은 폄하되고 침소봉대 한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한다. 오죽하면 위 <미디어오늘>에 나온 옛 청주방송 기자가 (언론)개혁은 노예 해방보다 어렵다고 일갈했을까.
구태한 관행을 타파하고 그동안 지역 언론의 신뢰를 하락시켰던 사주들의 문제, 취재관행, 각종 일탈들을 고발하고 꾸준히 담론화 하는 지역 내 힘이 필요하다. 지역 언론을 바꾸고 지역사회를 바꿀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고자 하는 <전북의 소리>는 지역 언론이 가져야 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성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 손주화(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