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교육정책연구소 '일제 잔재 현황 연구 보고서' 공개

전북지역 일선 초·중·고등학교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교가와 학교 표식에 일제 잔재가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심지어 욱일문과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교표를 사용하고 있는 학교가 21개 학교에 달해 충격적이다.

전북지역 대학이어 초·중·고교들도 친일 잔재 교가, 교표 그대로...충격 

12일 전북교육정책연구소(소장 최은경)는 전북지역의 학교 내 일제 잔재의 현황을 파악하고 기초 자료를 구축·정리하기 위해 조사한 '일제 잔재 현황 연구 보고서'를 공개했다.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제공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제공

'학교 안 일제 잔재-어디까지 알고 있나요?'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는 전북지역 초·중고 교사 6명, 정책연구소 파견교사 2명, 담당 연구사 등 9명이 TF팀을 구성해 지난 1월부터 6개월여 동안 진행해 왔다.

이번 연구는 전북의 초·중·고교를 대상으로 친일 인물·교가·교표·교목·교화·교훈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석물 및 건축물, 학교문화 및 용어에 대해 조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런데 조사 결과가 놀랍다. 일부 학교들의 교가는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친일 인명사전에 의해 친일 인물로 분류된 작곡가가 작곡하거나 군가풍·엔카풍 멜로디를 포함한 학교들이 다수 발견됐다. 

'조국에 바쳐, 이 목숨 다하도록'...교가 가사에 일제 잔재 그대로 

특히 '조국에 바쳐', '00학도', '이 목숨 다하도록'과 같은 일제 군국주의 동원 체제에서 비롯한 비교육적인 표현이 포함된 교가들도 있었다.

교가는 전북지역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전북지역 대학들이 친일 인물들이 만든 노래를 교가로 지금도 부르고 있다는 따가운 비판이 지난 3.1절을 앞두고 다시 제기됐었다. 민족문제연구소 전부지부에 따르면 전북대와 전주교육대, 군산대 등 주요 국립대가 모두 해당된다는 점에서 충격을 주었다.

전북대와 군산대는 작곡 또는 작사가가 친일 인명 사전에 등재된 인물이며 전주교대와 원광대는 교가의 작곡·작사가 모두 친일 인명 사전에 등록됐거나 친일 정황이 짙은 인물로 나타났다.

[관련 기사] 전북 주요 대학들 친일파 작사·작곡 '교가' 수십년 그대로

전북지역 초·중·고교와 대학들의 교가가 친일 인물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입학·졸업식, 학위 수여식 등에서 지금도 불리고 있는 것은 학교들이 그동안 '친일 잔재 청산'을 말로만 외쳐왔음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이에 대해 전북도교육청 측은 "25개교를 청산 대상 교가로 선정한 가운데 2019년 10개교가 학교구성원의 동의를 얻어 교체 작업을 진행했고, 나머지 학교들은 올해 교가 교체 작업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보다 교표에서는 1순위로 욱일문·일장기·국화문·벚꽃 문양의 학교가 21개교로 조사됐다. 욱일문과 일장기는 일제 강점기 군사 마크로 사용됐고, 벚꽃문과 국화문은 일본 황실에서 사용된 마크로 현재도 일본 황실 및 훈장에서 계승되고 있다.

전북지역 학교들이 사용하는 교표 중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교표들(제공: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전북지역 학교들이 사용하는 교표 중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교표들(제공: 전북교육정책연구소)

욱일문·일장기·국화문·벚꽃 문양 학교 21개교 

전쟁과 경기에서의 승리를 상징하는 2순위 ‘월계수’ 모양은 75개교에 달했고, 3순위는 1순위와 2순위의 유사 형태로 41개교, 4순위는 맹수·맹금류·방패 등 군 관련 29개교 등으로 조사됐다. 

또 일제 잔재로 규정한 가이즈카 향나무, 히말라야시다, 금송을 교목으로 지정한 학교는 91개교로 집계됐다. 학교 부지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일제 강점기 석물이나 건축물도 조사됐다. 

군산 발산초등학교의 옛 일본인 농장 창고, 전주 풍남초등학교와 전주초등학교의 봉안전 기단 양식, 일부 학교의 충혼탑 등이 대표적이다. 일제 잔재로 남아 있는 학교 현장·행정분야 용어와 학교문화는 교육 구성원 모두가 지속적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부분으로 지적됐다.

그럼에도 이들 건물 가운데 일부는 이미 해당 자치단체에서 문화유산으로 지정해 체험학습지와 관광 명소로 이용되고 있어 문제점으로 대두됐다. 

이번 조사 결과, 학교 내에서 사용되고 있는 개선 대상 용어로는 시정표(→시간표/일과표), 시건장치(→잠금장치), 납기(→내는 날), 신입생(→새내기), 절취선(→자르는 선), 졸업 사정회(→졸업평가회), 내교(→학교 방문) 등 학교 현장에서 자주 사용되는 용어들로 지적됐다.

도내 학교들 중 월계수를 사용한 교표들. /뉴스1
도내 학교들 중 월계수를 사용한 교표들. /뉴스1

'차렷·경례' 같은 군대식 인사 표현도 바꿔나가야 할 일제 잔재

또 역대 학교장이나 기관장 사진 게시는 외부 공간에 게시하거나 차렷·경례 같은 군대식 인사 표현도 바꿔나가야 할 일제 잔재로 꼽혔다.

이와 관련 연구진들은 '일제 잔재 관련 조례 제정, 역사 교육 등 교육청 차원의 행·재정적 지원', '학교 안 일제 잔재 관련 석물이나 건축물 현황 파악 및 교육적 활용', '일제 잔재 인식 교육을 위한 프로그램 개발 및 찾아가는 지원단 운영' 등을 제안했다. 

최은경 전북교육정책연구소장은 “그동안 교육 공동체의 노력으로 많은 부분이 청산되는 상황이지만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일제 잔재의 의미에 대해 인지하고 생활 속에도 교육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 중요하다”면서 “이번에 발간된 연구 보고서 책자는 전북의 각 학교, 교육지원청, 직속기관과 국회도서관 등 외부기관에도 전달해 활용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한편 전북교육정책연구소는 이번 연구 성과를 토대로 전북지역 학교의 일제 잔재 현황을 주제로 한 포럼을 오는 9월 말 개최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증대된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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