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거액의 회삿돈 횡령·배임과 공직선거법 위반 등으로 사회적 물의를 야기한 ‘이상직 게이트’를 수사 중인 전주지검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옛 사위 특혜 채용 의혹으로 수사를 확대하면서 전 정권 인사들과 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수사가 확대일로를 치닫고 있다. 이런 가운데 참고인과 증인들의 잇단 진술·증언 거부가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며 난항을 겪고 있다. 

특히 검찰이 문 전 대통령의 사위였던 서모 씨의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사건과 관련해 전주지방법원이 아닌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공판 전 증인신문’을 열었으나 참고인의 증언 거부로 진술 청취에 사실상 실패함으로써 이번 수사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이로 인한 정치적 부담 또한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전주지검, 문 전 대통령 딸 부부 '해외 이주 지원' 관련 수사 확대…증언 거부, 증인신문 ‘실패’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전주지방검찰청 전경.

전주지검 형사3부(부장검사 한연규)는 9일 서울남부지법에서 문재인 정부 청와대 행정관으로 근무했던 신모 씨를 상대로 공판 전 증인신문에 나섰다. 신씨는 당시 청와대에서 문 전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했다. 신씨는 문 전 대통령 딸 다혜 씨 부부의 2018년 태국 이주 과정에서 실질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번 의혹의 '키맨'으로 알려졌다. 

앞서 전주지검은 지난달 9일 신씨 주거지를 관할하는 서울남부지법에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 신청서를 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공판기일 전 증인신문은 범죄 수사에 없어서는 안 될 사실을 안다고 명백히 인정되는 사람이 출석이나 진술을 거부할 때 검사가 공판기일 전에 판사에게 한 차례 증인신문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청구서엔 증인의 성명·직업·주거지, 피의자·피고인의 죄명과 범죄 사실 요지 등을 표시하게 돼 있다.

이에 서울남부지법은 지난달 12일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이상직 전 의원, 박석호 타이이스타젯 대표, 조현옥 전 청와대 인사수석 등에게도 기일 통지서를 보냈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은 공판기일 증인신문에 나가지 않겠다는 방침을 일찌감치 내비쳤다.

판사는 증인신문 기일을 정할 때 피고인·피의자 또는 변호인에게 이를 알려 증인신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피의자 등에게 증인신문 기일을 통지했지만 피고인·피의자가 반드시 이날 법정에 출석해야 할 의무가 있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피의자들 중에서 이날 신문에 참여한 사람은 이상직 전 의원뿐이었다. 배임·횡령 등 혐의로 현재 수감 중인 이 전 의원은 이날 전주교도소에서 영상 중계를 통해 화상으로 참석했다. 신씨는 2018~2020년 문 전 대통령 딸 다혜씨 가족의 태국 이주를 도운 핵심 인물로 거론되지만, 참고인 조사를 수차례 거부했다고 검찰은 전제했다. 

앞서 검찰은 여러 차례 참고인 조사를 요청했지만 신씨가 응하지 않아 신씨의 주거지 관할인 서울남부지법에 공판 전 증인신문을 청구했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수사는 전주지검에서, 증인신문은 서울에서 이뤄진 것이다. 그러나 이날 신씨는 법정에 출석했으나 ‘증언 거부’로 일관했다. 검찰이 정식으로 소환 통보한 적도 없는 데다 자신이 피의자로 전환될 수 있어 검찰의 기록도 보지 못한 상황에선 진술할 수 없다는 취지로 거부했다.

검찰 “참고인 조사 불응” 전제 78개 질문 쏟아냈지만 '빈손’

법원 마크.(자료사진)
법원 마크.(자료사진)

서울남부지법 형사2단독(한정석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공판 전 증인신문에서 신씨는 '이상직 전 국회의원과 22회 전화와 메시지를 발신한 사실이 있느냐', '민정비서관 특감반에서 친인척 내용을 보고한 사실이 있느냐', '이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전 대통령 등과 연락한 사실이 있는지' 등 78개의 검찰 질문을 받았으나 모두 증언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신씨에게 당시 다혜 씨 부부의 이주 경위와 이주 과정에서 지원한 인사가 윗선에 상황을 보고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증인신문에서 ‘대통령 친인척 관련 업무를 보고한 상급자가 누구인지’에 대해 집중적으로 물었다. 특히 검찰은 이와 관련 "조국 당시 민정수석이냐, 임종석 비서실장이냐"며 신씨에게 물으며 문 정부 핵심 인사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했지만 신씨가 '증언 거부'를 통해 증인신문에 줄곧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면서 검찰은 사실상 '빈손'으로 신문을 마치게 됐다.

이날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반드시 진술을 확보해야 하는 주요 참고인으로 지목된 신씨가 여러 차례 참고인 조사에 불응해 재판에 앞서 증인신문을 청구했다”며 “신씨가 범행에 가담했다는 것이 아니라, 다혜 씨 부부 관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구체적인 정보를 취합하고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취지”라고 밝힌 뒤 재판부에 “신씨가 정당한 증언 거부 사유 소명 없이 진술을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부과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앞서 이 전 의원은 지난 2018년 3월 중소벤처기업진흥공단(중진공) 이사장에 임명된 지 4개월 후인 그해 7월 항공업계 경력이 전무한 서씨를 자신이 실소유주로 있는 타이이스타젯 전무이사로 취직시킨 바 있다. 이에 검찰은 항공업 경력이 전무한 서씨가 타이이스타젯 임원으로 취업한 건 이 전 의원이 중진공 이사장으로 임명된 것에 대한 대가성으로 의심하고 광범위한 수사를 이어오고 있다.

전 정권 인사들 줄소환 조사, 임종석·조국 등 ‘진술 거부’...야당 “정치 보복” 비난 고조

검찰은 지난 2017년 말 열린 청와대 비공식 회의에서 중진공 이사장으로 이스타항공 창업주인 이 전 의원을 내정했다는 의혹 등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최근까지 최수규 전 중기부 차관과 홍종학 전 중기부 장관, 김우호 전 인사혁신처장, 김종호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백원우 전 민정비서관, 주영훈 전 경호처장, 유송화 전 춘추관장, 조현옥 전 인사수석, 임종석 전 비서실상, 조국 전 민정수석 등 문재인 정부 시절 청와대 인사들을 줄줄이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했다.

하지만 임 전 비서실장과 조 대표 등이 검찰 조사에서 진술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검찰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게다가 이번 증인신문에 출석한 신씨 역시 검찰의 참고인 조사 요청에 불응해오다 이날 공판 전 증인신문에서도 일체의 진술을 거부해 ‘진술 및 증언 거부’가 새 변수로 등장했다.

검찰은 이날 “어떠한 부당한 의도를 갖고 질문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인 의혹이 있는 사건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려는 것인데 증언 거부에 정당한 사유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처럼 진술·증언 거부가 계속 이어질 경우 수사의 장기화는 물론 난항이 예상된다. 그에 따른 정치적 부담도 커질 전망이다.

더구나 문 전 대통령 측근 인사들과 야당 의원들은 “전임 대통령을 직접 겨눈 수사가 '국면 전환용'”이라며 “'항공사 특혜 채용 의혹 사건'이 고발된 지 3년이 넘도록 지지부진하다 갑자기 속도를 내는 것은 먼지털기식 수사이자 모욕 주기, 정치 보복”이라고 비난의 목소를 높이고 있다.

게다가 최근 서울중앙지검이 김건희 여사를 제3의 장소에서 비공개 조사를 한 게 논란이 됐던 만큼, 문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조사 시기나 방식을 두고 형평성에 위배된다는 비판이 거세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의혹 사건에는 '감사의 표시'라며 면죄부를 줬고,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은 몇 년째 결론을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전형적인 '내로남불식 수사'란 지적이 높다. 따라서 수사가 지연될수록 부담은 정부·여당과 검찰 쪽이 더욱 클 것으로 보인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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