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큐레이션] 2023년 5월 17일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자 우려와 실망이 크다. 특히 국정 운영 2년 차에 접어든 윤 대통령이 양곡관리법에 이어 거듭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 무시’와 '협치 거부'라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윤 대통령은 16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간호법 제정안 재의요구안을 심의ㆍ의결한 후 낮 12시 10분께 이를 재가했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이 간호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킨 지 20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의료계 갈등은 더 극한으로 치닫는 모양새다. 당장 간호협회 등은 사상 처음으로 단체 행동으로 '준법투쟁'을 예고한 상황이어서 의료 수요자들의 불안감이 확산되는 분위기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간호협회 “반드시 정치적 책임 묻겠다”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도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16일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도 제20회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대통령실 제공)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는 반응 속에 대한간호협회(간호협회) 소속 간부와 간호사들, 각 대학의 간호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이날 “간호법 제정 약속을 파기한 윤석열 대통령에게 반드시 정치적 책임을 묻겠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그간 국민의힘과 정부,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등이 간호법에 대해 취해 온 태도를 보면 충분히 예상됐던 상황이다. 복지부는 간호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난달 27일 "보건의료계가 간호법 찬반으로 크게 갈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야당 주도로 간호법이 의결돼 매우 안타깝고 현장 혼란이 우려된다"고 밝힘으로써 법안에 '부정'의 방점을 이미 찍었다. 

이어 15일 거부권 건의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한 조규홍 장관도 '의료 직역 간 갈등'을 부각시키며 “이 같은(거부권 건의) 선택이 불가피했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국회에서 다수가 동의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법안 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취임 1년여 만에 두 번째 행사했다는 점에서 우려와 불신이 크다.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연이어 이어진 셈이다. 지난달 4일 초과 생산된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첫 거부권을 행사한 지 불과 43일 만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 모두발언에서 “이번 간호법안은 유관 직역 간의 과도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간호 업무의 탈 의료기관화는 국민들의 건강에 대한 불안감을 초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불안감이 직역 간 충분한 협의와 국회의 충분한 숙의 과정에서 해소되지 못한 점이 많이 아쉽다”고 덧붙였다.

대통령 공약, 불과 20일 만에 거부권 행사...“국회 다수 결정 무시”

대한간호협회와 사회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대한간호협회와 사회시민단체들로 구성된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윤석열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를 규탄했다.(사진=대한간호협회 제공)

이처럼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간호법은 국회 본회의에 재상정될 운명에 놓였다. 재적의원 과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 경우 법안은 최종 확정되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다시 행사할 수 없다. 하지만 부결되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윤 대통령이 최초로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은 국회 본회의에서 최종 부결됐다. 

그러나 앞서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은 지난달 27일 간호법 제정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한 이후 불과 20일 만에 거부권이 행사된 데 대해 “간호법 제정안은 의료법에서 간호사 관련 내용을 분리해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규정하고 처우를 개선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이며 간호사의 활동 범위에 지역사회를 포함하는 내용도 포함돼 있는 대통령 자신의 공약이자 국회와 국민 다수의 결정”이라며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이날 박광온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지금 윤 대통령에게 국민통합의 리더십은 찾을 수 없다”며 “간호법은 윤 대통령 대선 공약이자, 국민의힘 21대 총선 공약”이라고 지적했다. 또 “간호법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정부·여당이 갈등 중재와 합의 처리를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묻는다”며 “오히려 거부권 행사 명분을 쌓기 위해 국민 분열을 선택했다”고 비판했다.

간호협회와 간호법 제정 추진 범국민운동본부는 이날 국무회의 직후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을 규탄했다. 김영경 대한간호협회 회장은 "우리의 마지막 기대였던 대통령마저 결국 어리석은 자들의 선동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작금의 현실에서 우리는 공정하고 상식적이지 못한 불의한 정치인과 관료들을 2023년 총선기획단 활동을 통해 단죄하고 파면하는 투쟁을 전개할 것을 선언하는 바이다"고 밝혔다.

“17일 오전 기자회견 통해 간호법안 거부권 행사 대응 계획 발표”

대한간호협회 홈페이지 초기화면(갈무리)
대한간호협회 홈페이지 초기화면(갈무리)

아울러 간호협회는 17일 오전 기자회견을 통해 간호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한 대응 계획을 발표한다고 이날 밝혔다. 윤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에 맞서 간호협회는 “윤 대통령이 약속을 파기했다”며 “단체 행동이 불가피하다”고 준비하고 나선 상태여서 주목된다. 간호협회는 최근 실시한 자체 설문 결과, 이번 사태에 대해 '적극적인 단체행동이 필요하다'는 데 회원 98.6%(10만 5,191명 중 10만 3,743명)가 찬성한 상태다. 이 때문에 단체 행동은 어떤 형태로든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면허 반납을 비롯해서 처방·시술 등 의사 업무를 대신하는 PA(진료보조) 간호사들이 현행법상 불법인 이 행위들을 중단하는 단체 행동이 예상된다. 여기에 간호사 업무 외 의료활동은 하지 않겠다는 '준법투쟁'에 들어갈 경우 수술실 등 의료현장에서 상당한 혼란이 빚어질 전망이다. 이에 반해 대한의사협회·대한간호조무사협회 등 13개 보건복지의료연대는 이날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간호법 제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환영하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의료연대는 간호법의 명칭을 '간호사 처우법'으로 바꾸자는 당정 중재안을 간호협회가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간호협회는 간호법의 핵심은 처우 개선이 아니라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명확히 하는 데 있다는 입장이어서 팽팽한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과 정의당 등 야당은 윤 대통령이 정당한 입법권을 무시했다는 입장이어서 추후 재의요구안을 다시 표결하더라도 정쟁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야당 “국회 입법권 철저히 무시한 행태, 민주주의 중대한 도전” 

민주당 등 야당은 “간호법은 신종 감염병 대응과 치료·돌봄, 요양 등 국민들에게 보다 폭넓은 간호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여야가 모두 함께 발의했던 법이고, 국회에서 오랜 시간 정당한 논의 절차를 거쳐 통과된 법률”이라며 “그럼에도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철저히 무시한 행태”라고 비난하고 나서 험한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이날 민주당은 '의원 일동'의 입장문을 통해 “본인들 입맛에 맞지 않는 법에 대해서는 계속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이고, 이것만으로도 이 정권이 얼마나 독선적인 정권인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며 “간호법은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이 직접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대선공약이었음에도, 본인들 스스로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심각한 자기부정이자 국민기만이고, 스스로 후안무치한 정권임을 선언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의 거짓과 위선에 맞서서 국회에서 당당하게 간호법 재의결을 추진함으로써 국민과 했던 약속을 끝까지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정의당도 이날 윤 대통령의 간호법 제정안 거부권 행사에 대해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배진교 원내대표는 이날 의원총회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국회에 대한 거부, 협치에 대한 거부"라며 "윤 대통령의 국회 입법권 부정을 좌시하지 않겠다. 헌법과 국회법이 정한 대로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의를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통령 거부권 68번째...윤 대통령 두 달 만에 연거푸 2회 기록

한편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를 요구하면서 역대 68번째 대통령 ‘거부권’ 사례로 기록됐다. 국회 입법조사처 등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지난 4월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관리법 개정안까지 현재까지 모두 67건의 법률안이 국회로 돌려 보내졌다. 이로써 윤 대통령은 두 달 만에 연거푸 두 차례 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기록됐다.

역대 대통령들 가운데 재임 중 가장 많은 거부권을 행사한 대통령은 이승만 전 대통령으로 총 45개의 법안을 국회로 돌려보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기간 16년 중 총 5차례의 거부권을 행사했다. 이 밖에 노태우 전 대통령이 7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6건, 박근혜 전 대통령 2건, 이명박 전 대통령 1건 등 순으로 뒤를 이었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전 대통령의 경우 재임 중 거부권을 한 차례도 행사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이후 법안이 폐기가 된 사례가 그렇지 않은 사례보다 더 많았다. 역대 대통령들의 거부권 행사 법안 67건 중 폐기된 법안은 윤 대통령의 ‘1호 거부권’ 법안인 양곡법을 포함해 34건으로 집계됐다. 나머지 33건의 경우 법률로 최종 확정됐다. 이 가운데 법률로 확정된 법안의 경우도 25건 만이 원안대로 재의결됐고, 6건은 수정 의결, 2건은 대통령의 재의요구 철회를 통해 확정됐다.

민주화 이후를 기준으로 할 경우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후 국회 재의결을 통해 법률로 최종 확정된 사례는 단 1건에 불과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오는 25일로 예정된 국회 본회의에서 대통령이 거부한 간호법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다시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이유이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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