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간호사들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한 '간호법'을 둘러싼 의사와 간호사 측 대립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지난달 27일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우세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의료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특히 간호법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 시한이 오는 19일로 다가온 가운데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간호업계가,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의사 및 간호조무업계가 '단체 행동'에 나설 태세를 갖춤으로써 의료계의 갈등과 이로 인한 의료 공백 현실화가 우려된다.
간호협회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할 경우 면허 반납 등 단체 행동”
대한간호협회(간호협회)는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협회에 등록된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시 간호사 단체 행동 여부'에 대한 의견조사를 실시한 뒤 '윤 대통령이 간호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초강력 대응이 필요하다‘는 다수의 내부 결의에 따라 단체 행동에 착수할 예정이다.
앞서 “의사 집단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간호협회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단체 행동 의견조사를 벌인 결과 98.4%가 '적극적인 단체 행동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상태다.
따라서 간호협회는 "의견조사에서 적극적 단체 행동이 결의 됨에 따라 구체적인 행동 방향을 정해 행동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힘으로써 단체 행동의 수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조사의 중간 집계(12일 기준) 결과, 간호사 면허증 반납 운동 참여에 대해 61.5%(4만 6,272명)가 ’동참하겠다‘고 밝혀 간호사들의 이 같은 초강경 대응이 이어질 경우 파장이 클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의사·간호조무사 “대통령, 간호법 거부권 행사하지 않으면 2주 뒤 총파업”
이에 반해 간호법을 반대해온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은 전국 규모의 동시다발 집회를 시작했다. 의사협회, 간호조무사협회, 응급구조사협 회원들은 국회에서 통과된 간호법 제정안이 간호사만을 위한 사실상의 특례법이며, 보건의료와 약소직역의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에서 최근 통과된 간호법의 핵심은 간호사와 전문간호사, 간호조무사의 업무 영역 구분 및 간호사의 활동 범위가 확대된 동시에 간호종합계획 5년 주기 점검 및 3년 주기 실태 조사, 간호사 인권 침해 방지 활동도 의무화했다.
이에 간호사들은 간호법으로 인해 그간 간호사가 떠안았던 불공정한 업무가 사라지는 등 직무 범위가 명확해지고 역할 분담이 확실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간호사 자격 기준이 높아지고 권리 및 의무가 보호되는 대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간호사는 징계가 가능해져 국민 의료 질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의사와 간호조무사 등 반대하는 측에선 간호법이 간호사의 권한을 지나치게 키운다는 입장이다. 특히 간호사 단독 개원도 가능해 의료의 질이 심각하게 떨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간호사가 의사와 같은 권한을 갖게 되므로 의료계 전반에서 충돌이 불가피하고, 의사와 간호사 간의 진료비 차이가 줄어든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따라서 의사와 간호조무사들은 대통령이 간호법에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으면 2주 뒤 총파업을 예고함으로써 간호법을 둘러싼 찬반 양측의 팽팽한 대립이 의료 행위 전반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많은 의료 수요자들은 크게 걱정하는 분위기다.
윤 대통령, 16일 국무회의서 간호법 재의요구 심의·의결 가능성 커
더욱이 정부와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간호법 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간호법이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이어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두 번째 법안이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이 16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간호법 재의요구 건을 심의, 의결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실은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려 사회적 논란이 되는 법안이나 여야 합의가 아닌 일방 처리로 통과한 법안 등을 두고는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원칙을 강조해 왔다.
따라서 간호법이 국회로 넘어오면 다시 본회의에 상정해 재표결을 거치지만 범야권 의석이 가결 요건인 180석을 넘지 않아 표결 시 양곡관리법처럼 부결될 공산이 크게 됐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 다시 시선이 집중되고 있지만 민주당 내부에선 “국회에서 오랜 기간 논의돼 절차에 따라 통과된 법률에 반복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국회의 입법권을 무시하고 국민의 뜻을 거부하는 폭거를 계속하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할 뿐,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료 수요자들 피해 입지 않도록 특단 중재안·대책 마련 시급
민주당은 최근 입장문을 내고 “반복적인 거부권 행사는 국민 뜻을 거부하는 폭거를 계속하겠다는 것”이라며 “국민적 분노와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아울러 민주당은 양곡관리법처럼 재의결 절차를 밟아 부결되더라도 대여 공세를 펼친다는 방침이다.
반면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이 먼저 현재의 중재안에 대한 협상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곧장 재의결 투표로 갈 수밖에 없고 간호법은 자동 폐기되는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 상태다. 따라서 간호법을 둘러싼 갈등과 마찰은 의료계 뿐만 아니라 정치권 정쟁의 한복판에 선 양태다.
이 바람에 애꿎은 의료 수요자인 국민들이 분쟁과 정쟁의 사이에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게 됐다.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특단의 중재안과 대책 마련이 시급한 때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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