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58)] 민주화와 지방자치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도화선이 된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는 민주주의가 저절로 정착되는 것이 아니라 시련과 저항을 통해서 완성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그런데 지금의 지방자치가 민주화 투쟁의 산물,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6월 민주항쟁의 결과물이란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는 아직도 자치와 분권을 민주주의의 필수요소임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도 국민 생활 크게 지장 받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 덕분

6월 항쟁에 직면했던 당시 노태우 정권은 소위 6·29선언을 통해 성난 민심을 가라앉혔다. 6·29선언에는 대통령 직선제, 기본권 보장, 언론자유 보장, 정당 활동 보장, 지방자치 실시 등 8가지 대국민 약속이 담겨 있었다. 6·29선언의 대국민 약속 중 아직도 미완의 과제로 남은 것이 지방자치이다. 대통령 직선제, 기본권보장, 언론자유 보장, 정당 활동 보장 등은 현실화 되었지만, 지방자치는 아직도 지지부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1995년부터 민선 자치를 시작하고, 노무현 정부가 한때 지방분권을 강력히 추진했지만, 서울사람들의 완강한 반대와 저항으로 사실상 좌초되었다. 이후 이명박과 박근혜 정부에서는 지방자치나 지방분권은 정치적 슬로건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래도 2016년 광화문 촛불시위와 2017년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혼란 상황에서 나라가 지탱되고 국민 생활이 크게 지장을 받지 않는 것은 지방자치 덕이라 할 수 있다.
당시 정치적 격동기에서 청와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중앙 행정부의 경우, 사실상 마비 상태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지방정부 차원에서는 행정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 서울시가 지하철을 정상운영한 덕에 평화적 촛불시위가 가능했고, 다른 지방정부 대민서비스 업무도 차질없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촛불혁명을 성공적으로 완수한 대한민국이지만 민주주의 국가 중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중앙 행정부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이다. 거의 모든 행정부 조직을 중앙이 지휘하고, 지방은 그 휘하에서 명령을 받고 실행하는 구조이다.
지역 간 경제적 불균형, 권력의 중앙집중 오히려 더 반민주적으로 심화

세금도 예산도 거의 모두 중앙정부가 좌지우지한다. 외교나 국방처럼 국가적 사안이 아닌, 즉 교통, 범죄, 치안, 주택 등 지역이 관리해야 할 사안도 중앙정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한다. 도로나 철도 등은 건설교통부가, 범죄와 치안은 검찰과 경찰이 주도한다. 그리고 그 정점에 청와대와 대통령이 있다. 자연 대통령이 제왕처럼 군림할 수밖에 없다.
지방자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결코 제왕적 대통령이 나올 수 없다. 대통령으로서 국가를 대표하지만 왕처럼 군림할 수는 없다. 한국에도 지방자치가 제대로 정착되었다면, 박근혜 정부 시절의 권력형 비리, 즉 청와대가 세무조사를 위협하고, 올림픽 이권을 챙기고, 연기금으로 재벌에게 특혜를 주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지방자치가 작동하는 나라에서는 세금도 지방정부가 걷고, 올림픽도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공무원 연기금도 지방정부가 관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처럼 대통령 중심제 국가인 미국에는 문화체육부 같은 연방 정부 부처는 아예 존재하질 않는다. 연방 국세청이 있긴 하지만, 개인과 법인 소득세만 걷을 뿐이다. 나머지 세금은 거의 모두 주 정부나 지방정부에서 거두어 쓴다. 2015년 미국 정부가 걷은 세금 6만 5,000조 달러 중 절반은 연방정부가, 나머지 절반은 지방정부가 거둬들였다. 반면 한국은 전체 세금의 20%만이 지방정부 세수이다.
6월 항쟁으로 표출된 민주주의 열망, 아직 결실 맺지 못해
자연 세금을 걷는 국세청장이나 예산을 편성하는 기획재정부장관의 권한이 막강하고, 그들을 지휘하는 대통령의 힘은 더욱 막강하다. 중앙정부의 집중된 권한을 지방정부로 분산시키지 못한다면 누가 다음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다고 하더라도 그 역시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할 것이고, 그 주변에는 권력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인물들이 몰려들 것이다.
1987년 6월 항쟁은 군사독재를 퇴진시켰다. 덕분에 지금의 대한민국은 군사 쿠데타나 계엄령을 걱정하는 나라는 아니다. 그러나 6월 항쟁으로 표출된 민주주의 열망이 아직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지역 간 경제적 불균형이나 권력의 중앙집중은 오히려 더 반민주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권력을 분산해 권력의 독점과 남용을 예방하는 지방자치가 그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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