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57)] 해방과 지방자치
·해방 후 대한민국은 일제 식민 지배의 잔재를 제대로 정리하지 못했다. 분단과 독재 상황에서 일제강점기 군인과 관료로 활약했던 인물들이 국가지도자로 부상했고, 독립운동에 몸을 바쳤던 애국지사들과 그 후손들은 희생의 대가를 보상받기는커녕 제대로 인정도 받지 못했다. 일제의 앞잡이에서 애국자로 변신한 사람들은 과거의 행적을 감추고 위선적인 ‘반일선동’ 정치를 폈다.
민주화 이후에야 비로소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청산하려는 작업이 본격화되어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같은 정부 기구가 설립되었다. 한일 간 대등한 관계에서 정상적인 외교 관계가 정립되고, 일본과 문화적인 교류도 시작했다. 종군위안부 문제처럼 독재정권 시절 외면했던 일제 만행 들이 다시 부각되면서, 일본 정부의 사과와 사죄를 받아내기도 했다.
일제 강요 중앙집권적 관료, 경찰제도...한국 고유 통치문화로 굳어져

그럼에도 일본 우익세력이 과거 식민지 만행을 부인하는 발언을 하는 이면에는 한국 사회가 아직 식민지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것에 대한 경멸감도 들어있다. 일본의 식민지 덕분에 철도와 항만 같은 산업적 기반을 갖추었고, 60년대 산업화 발전도 일본의 도움 덕분이었다는 것이 일본 우익들의 주장이다. 한국인들이 겉으로는 반일 감정을 표출하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식민지 시절 이식된 일본 문화를 잘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방 후 독재정권 하에서 대한민국은 일제 강점에 의해 제거된 전통문화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들이 강요한 문화를 새로운 전통으로 만든 경우가 적지 았다. 예를 들면, 일본의 엔가가 해방 후에는 국민가요로 수용되고 국악의 전통은 대중문화에서 사라졌다. 일본에서는 군국주의 유산이라 제거한 구습들이 한국에서는 전통문화가 되기도 했다.
군사독재 시절 애국가 제창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국민 의례, 군복과 큰 차이가 없는 검정 교복 착용, 교사와 학생 간의 권위주의적 전통, 고학년과 저학년 간의 엄격한 선후배 위계질서 등 식민지 시절 교육문화가 한국 고유의 교육문화로 탈바꿈했다. 일제가 강요한 중앙집권적 관료, 경찰제도도 한국 고유의 통치문화로 굳어졌다.
아직도 일본 우익들이 식민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이유

일본은 17세기에도 막부에 이르러서야 영주체제에서 국가체제로 통합한 나라로, 지방자치의 전통과 문화가 뿌리 깊은 국가였다. 군국주의 시절에도 일제는 본토에서는 자치의 전통을 유지했지만, 한반도에서는 철저한 중앙집권 관료주의를 실시했다. 조선총독부는 관료와 경찰을 동원해 각 마을 단위까지 속속들이 통제하면서, 조선사회의 전통적 자연부락 위주의 생활권 동리(洞里) 자치를 말살시켰다.
해방 후 독재 정권은 일제의 지방통치 방식을 거의 그대로 답습했다. 남북 분단을 핑계로 자율과 자치는 거부하고, 수도가 지방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는 식민통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국 한국의 고유한 지배체제가 되었다. 1991년 지방 자치 선거가 부활할 즈음, 역사학자 서중석 교수는 “지방자치를 30년간이나 폐지한 것은 국민 대중의 정치의식에도 영향을 미쳤고, 파시즘적 군사문화를 온존시킨 중요 요인이지만, 민주주의를 외치는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라고 우려했다.
그의 우려는 현실로 되었고,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중앙집권체제를 견고하게 유지하는 민주주의 국가, 일제강점 통치방식을 토착화시킨 반일국가라는 모순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도 일본의 우익들이 식민역사를 왜곡하고 대한민국을 비하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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