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53)] 자치분권의 역사

1987년 6월 항쟁 이후 쟁취한 민주화 목표 중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것 하나가 있다. 바로 지방자치이다. 권력은 서울에 머물러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정치권력과 서울언론이 집요하게 퍼뜨린 덕분이다.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진 지방자치제도, 축소·무시되는 이유는? 

현재의 모든 존재는 과거의 결과물이다. 지금의 나는 태어나서 지 금까지 살아오는 동안의 나이다. 사회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은 선사 이래 한반도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의 축적물 이다. 따라서 한 사물이나 사안의 과거를 보지 못하고, 지금 현재만 본다면 진실을 파악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과거를 파헤치기는 매우 어렵다. 과거의 사실은 알 수 있는 것보다 알 수 없는 것이 많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것보다 기록에 없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지방분권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정하며 실천을 약속했었다. 출처: 이데일리, 2018년 2월 1일 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지방분권이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정하며 실천을 약속했었다. 출처: 이데일리, 2018년 2월 1일 자.

게다가 많은 사람이, 그리고 많은 국가가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는 덮고, 유리한 과거는 과장한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은 찾기도 어렵고 확인하기도 어렵다. 한국의 지방자치도 지금의 현실만 본다면 부실하고 한심할 뿐이다. 그래서 지방자치를 축소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지방자치의 과거 역사를 보다 깊이 파헤쳐 보면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역사적으로 깊은 뿌리를 가진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 뿌리가 부실해지고 절단되면서 국가의 위기가 닥쳤 고, 그로 인해 지방자치가 없는 식민지와 독재정권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를 형식적으로는 복원했지만, 오랜 기간 고착된 중앙집권의 폐습을 버리긴 쉽지 않은 현실이다. 조선왕조와 일제식민지,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형성된 강고한 중앙 집권 통치제도로 인해 지방자치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데 역사를 좀 더 자세히 파헤쳐보면 단순히 중앙집권/지방자치라는 이분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지방자치, 제대로 뿌리 내리려면 역사적 뿌리 제대로 찾아내야 

조선시대에 이미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지방자치 제도가 상당히 오랜 기간 시 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왕조 후기에 접어들면서 지방자치제도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서, 극심한 부정부패와 국가적 분열을 가져왔고, 결국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일제 식민지 치하에서 조선의 지방자치 전통은 철저히 말살되었다. 해방 이후에도 분단과 산업화 과정에서 국가 정체성만 강조되고 지역적 정체성은 억압되었다.

지방자치는 생소한 용어가 되었다. 민주화 이후, 지방자치가 제도적으로 도입되었지만, 지역은 여전히 통치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 자치의 주체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한국사회에 지방자치가 제대로 뿌리를 내리려면 먼저 역사적 뿌리를 제대로 찾아내야 한다. 조선왕조의 경우, 중앙과 지방의 적절한 균형을 중시하고 그에 필요한 제도와 문화를 정착시켰다. 조선왕조는 중앙집권적 왕조체제였지만, 수령(守領)-향리(鄕吏)-사림(士林)으로 구성된 다원적 지역사회 통치구조를 유지했다.

덕분에 중앙집 권에 필수적인 군사력이나 교통, 통신 등의 기술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중앙이 효율적으로 지방을 통제하고 지배했다. 그러나 조선 후기 에 들어 중앙과 지방 간의 권력균형이 깨지면서, 즉 중앙에서 파견된 관료들의 과도한 수탈과 전횡을 막을 수 있는 지방의 견제력이 약해 지면서 민생은 피폐해졌고, 그 결과 외세의 침탈을 이겨낼 힘을 잃고 왕조가 붕괴했다. 일제 총독부의 식민지 지방통치체제는 조선 전래의 다원적 지방통치 제도와 문화를 제거하고, 총독부가 관료와 경찰을 동원해 각 마을 단위까지 속속들이 침투해 통제하는 중앙집권 방식으로 전환시켰다.

중앙정치에 지배되고 중앙의 관행 답습하면 지방자치 신뢰 얻기 힘들어 

전주MBC 2022년 3월 6일 방송(화면 캡처)
전주MBC 2022년 3월 6일 방송(화면 캡처)

일제는 읍면제 행정개편을 통해 수직적이고 인위적인 행정구조를 만들었고, 전통적 자연부락 위주의 생활권 동리(洞里) 자치를 말살시켰다. 형식적으로 일부 지역에서 도회, 읍회, 면회 등의 자치의회를 시 행했지만, 일제의 식민지배를 강화하고 보조하기 위한 형식적 자치에 불과했다. 해방 후, 독재 정권은 일제의 지방통치 방식을 거의 그대로 유지시켰다. 남북 분단으로 인한 국가체제 대립 상황에서 지역 단위의 자치는 거부되었고, 수도가 지방을 일사불란하게 관리하는 식민지 권위 주의적인 지방통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었다.

근대화란 명목으로 중앙정부의 권력이 마을 단위까지 침투해 새마을 운동과 같은 범국 가적 지역사회 운동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러나 지방의 자율과 자치가 부재한 상황에서 중앙의 강요에 의한 지역사회 운동은 정권의 몰락과 더불어 힘없이 종식될 수밖에 없었다. 민주화와 더불어 지방자치가 부활되었지만, 갈 길은 험난했다. 지 방자치를 폄하하고 무시하기는 독재 권력이나 민주 권력이나 큰 차이가 없었다. 지방자치를 통해 중앙집권으로 발생하는 권력 남용과 부조리와 비효율을 견제한다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인식은 민주화 이후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 땅에 지방자치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원인 찾아내고 해결책 모색해야

자료사진
자료사진

보수든 진보든 모두 자신들의 권력을 지방에 분산시키거나 자신들을 견제할 지방정치세력이 등장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정치권에서 지방자치 담론은 사라지고, 대신 지방분권과 균형 발전 등의 공약을 통해 지방의 지지세력을 확보하는 경쟁이 펼쳐졌다. 그 결과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지배되고 중앙의 관행을 답습하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얻기 힘들었다.

주민의 무지와 무관심 속에서 시행된 지방자치는 지방 기득권의 제도화와 중앙정치 의 폐해를 지방에까지 확산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방자치의 폐해보다는, 지방자치의 부실과 부족으로 인한 폐해가 훨씬 큰 사회이다. 지방자치의 과거를 돌이켜 봄으로써, 이 땅에 지방자치가 뿌리내리지 못하는 원인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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