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49)] 건강한 언론과 지역사회

지역에 필요한 뉴스를 신속하고 공정하게 제공하는 지역신문은 건강한 지역사회의 필수조건이다. 안타깝게도 대한민국에는 그러한 건강한 지역신문의 역사가 일천하다. 그나마 지역사회에서 인정받고 성장하고 있는 신문사들은 규모가 영세한 풀뿌리 지역신문들이다.
그런데 지역신문의 뿌리가 깊이 박힌 구미 국가에서 조차도 지역신문의 위기를 맞고 있다. 2016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 작품상은 한 지역신문사의 탐사보도 과정을 다룬 <스포트라이트(Spotlight)>에게 돌아갔다. 미국의 카톨릭 교회 사제들이 오랫동안 은밀하게 아동들을 성폭행하고, 그 사실을 조직적으로 은폐해온 사실을 파헤치는 신문기자들의 활약상을 다룬 영화였다.
신문기자, 미국 최악의 직업 중 하나로 전락
카톨릭 신자가 많은 보스톤 지역에서 카톨릭 사제들의 비행을 파헤치는 기사는 당사자들의 저항과 압력은 물론이고, 독자들로부터의 비난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보스톤 글로브>는 2003년 이 탐사 기사 시리즈로 미국 최고 권위의 언론 상인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스포트라이트>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하자, 많은 미국 언론들 이 신문의 기능, 특히 권력 집단에 대한 비판감시 기능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 영화라고 호의적 논평을 쏟아냈다. 영화에서 주인공으로 묘사된 월터 로빈슨 기자는 좋은 언론 보도가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특히 언론 외에는 대신 말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의 삶을 어떻 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 잘 보여주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영화 <스포트라이트>에 등장한 진실과 정의를 위해 분투하는 신문기자들의 모습과 실제 미국 신문기자들의 모습은 차이가 많다. 미국의 인터넷 구직 사이트 Careercast.com의 좋은 직업 순위를 보면 신문기자는 200개 직업 중 최하위인 200위였다.
좋은 직업의 순위를 결정하는 요인은 작업환경, 급료, 업무 스트레스, 미래전망 등이었다. 신문기자와 더불어 최악의 직업 10개로 선정된 직업은 벌목공, 직업군인, 교도관, 택시기사, 소방관, 우체부, 방송기자, 사 진기자, 요리사 등이었다. 신문기자가 미국 최악의 직업 중 하나로 전락한 것은 신문사들의 경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여준 탐사보도, 먼 옛날 일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신문사와 경쟁하는 다양한 뉴스매체가 등장했고, 독자와 광고주가 줄어든 신문은 경비 절감을 위해 기자와 직원을 줄였다. 미국 신문의 기자 수는 1980년대 중반 이후 줄곧 2007년까지 55,000명 선을 유지했으나, 이후 급격히 감소하여 2015년에는 32,000명으로 줄었다. 신문사의 인력감소는 자연 뉴스의 질적 저하를 가져왔고, <스포트라이트>에서 보여준 탐사보도는 먼 옛날 일이 되었다.
퓰리처상을 받은 <보스톤 글로브>조차 신문기업의 위기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독자와 광고주 감소로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모회사 <뉴욕 타임스>는 2013년 <보스톤 글로브>를 7,000 만 달러에 매각했다. 20년 전 <뉴욕 타임스>가 지불한 가격 11억 달러의 6.3%에 불과한 액수였다. 2014년 <보스톤 글로브>는 보스톤 마라톤 폭탄테러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보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다시 한번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미국 지역신문들,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급격히 몰락한 원인은?
그렇지만 독자의 감소세는 줄어들지 않았다. 2002년 468,000부에 달하던 발행 부수가 2015년에는 115,000부로 줄었다. 수백 년간 미국의 뉴스 시장을 장악해온 미국 지역신문들이 디지털 시대를 맞아 급격히 몰락한 것은, 경쟁보다는 독과점에 익숙한 시장환경 탓이었다. 19세기 후반에는 각 지역마다 여러 개의 신문이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20세기 중반부터 대부분의 지역에서 한 두 개의 신문이 뉴스와 광고를 독과점하는 형태로 굳어졌다.
그러나 20세 기 초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지역신문의 독과점 체제는 인터넷에 의해 붕괴되었다. 종이신문을 유료구독하던 독자들은 무료 인터넷 사이트로 옮겨갔고, 신문광고의 주 고객이던 지역의 서비스 유통사업자들을 구글의 검색 광고에 빼앗겼지만, 지역신문사들은 마땅한 대안이나 활로를 찾지 못했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