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종의 '역사칼럼'

텍스트의 형이상학적 추상성, 이것이 『중용』의 장점이자 약점이었다. 청나라 학자 이불(李紱)은 주희의 학문적 관점을 비판했다. 우선 그는 『중용』의 편차부터 문제 삼았다.

『중용』은 본래 한 편의 잘 구획된 글이 아니었다. 그래서 주희는 이를 6개의 큰 단락으로 분류하고, 다시 33장으로 세분했다. 주희의 단락 나누기에도 수긍하기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텍스트 자체가 본래 애매하게 되어 있었다. 어디서 끊고, 어떻게 이어 붙이는 것이 좋을지는 학자마다 입장이 다를 수 있었다. 이불만 그런 게 아니라, 상당수 유학자들이 이 문제로 고심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원만한 해결책은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주희의 주석 및 해설도 기대처럼 완벽하지 않았다. 이불이 가장 큰 문제로 제기한 것은 ‘비은費隱’에 관한 주희의 해설이었다. 주희는 비費를 쓰임(用)이 한없이 넓은 것으로 해석하고, 자사의 본뜻이 그러했다고 단정했다. 즉 자사는 만물의 쓰임(用)이 무한하다고 보았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불은 이 구절을 하필 자사의 본뜻이라고 확신할 근거가 전혀 없다고 반박했다. 게다가 비費라는 한 글자를 쓰임이 한없이 넓다고 해석한 사례가 과거의 문헌에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요컨대 주희는 언어학적 오류를 범했다는 결론이었다. 이 밖에도 이불은 주석서의 여러 곳에서 주희의 해석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이불만 그런 생각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명‧청시대 중국에서도 조선에서도, 많은 학자들이 주희의 주석과 해설이 과연 정당한지 의심을 품었다. 이규경의 입장은 복잡 미묘했다. 한편으로 그는 이불의 견해에 공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도 주희의 『중용』 주해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입장이었다. 꽤나 애매한 태도였다. 이규경은 왜 그랬을까.

주희의 학설에 대한 노골적인 비판과 도전이 그에게 가져올지도 모르는 부정적인 결과를 두려워한 것 같다. 알다시피 조선에서는 주희의 견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주희는 실로 과감한 학자였다. 그는 『대학』을 주해할 때, 원문에 없는 글귀까지도 스스로 지어서 채워 넣었다. 이 때문에 『대학』은 본문을 상당히 왜곡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규경 같은 선비들은 그 사실을 명확히 알고 있었다.

『대학』에 비하면 주희의 『중용』은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원문에는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텍스트 자체의 신빙성은 높았다. 이규경은 주희의 『중용』에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내용상으로도 지리멸렬한 대목이 거의 없어, 큰 폐단이 없는 편이라고 변호했다. 그럼에도 주자의 단락 나누기에는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몇 군데는 손질하는 편이 차라리 낫겠다는 의견이었다.

조선의 주류 선비들은 조선이 망한 뒤까지도 주희의 주장을 일점일획도 의심하지 않고 철저히 신봉했다. 그들에게 주희는 신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이규경은 주희의 『중용』 해설에도 다소 간의 수정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런 생각을 과감하게 내세우기가 곤란했다. 때문에 그는 이불과 같은 청나라 학자를 끌어들여 자신의 방패막이로 삼은 것이 아니었을까.

이쯤에서 이야기를 정리해보자. 흥미로운 한 가지 사실이 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올랐음을 부정할 수 없다. 주희의 『중용』에는 상당한 난점이 잠복해 있다는 것이다. 조선의 선비들은 그런 문제를 과연 어떻게 다루었을지 궁금해진다.

※출처: 백승종, <중용, 조선을 바꾼 한 권의 책>(사우, 2018; 세종 우수교양도서 선정) 

/백승종(역사학자, 전 서강대 사학과 교수, 현 한국기술교육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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