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동조합위원장 인터뷰
“내 생각에는 그냥 사기다. 회사는 문제를 자꾸 노사 간의 갈등 문제처럼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하고 있다.
그냥 어떤 사기꾼이 회사를 없애면서 노동자들 다 날리고, 자기는 돈 빼서 나가려고 하는 걸 우리가 발목 잡은 것뿐인데 마치 노사분규, 아니면 노노 갈등 이런 거로 프레임을 자꾸 만든다. … ”
서리가 내린다는 절기 ‘상강(霜降)’이 시작된 10월 23일 금요일. 오후 5시에도 어둑어둑한 하늘이 가을의 마지막을 알리고 있는 가운데, 국회 정문 앞 작은 비닐 천막에서 강한 구조조정 바람에 맞서고 있는 박이삼 이스타항공 조종사노조위원장을 만났다. 박 위원장은 지난 10월 14일부터 이곳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그날은 이스타항공이 직원 615명에 대한 대규모 정리해고를 단행한 날이다. 이스타항공의 미지급금은 직원들에 대한 체불임금 314억 원 포함, 1,700억 원에 달하는 상황. 미지급금이 빌미가 돼 제주항공과의 인수합병도 무산됐다.
박 위원장은 이와 관련 이스타항공의 고의적 임금체불·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단순히 항공업계 구조조정이 아니라, 다수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사기 사건이라는 것이다. 다음은 박 위원장과 나눈 대화 내용을 일문일답으로 정리한 것이다. /편집주
지난 6월, 무더운 여름날 정복을 입고 기자회견을 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벌써 찬바람을 맞는 계절이 됐는데 상황은 오히려 악화된 모습이다.
“그렇다. 4월에 투쟁 시작할 때는 ‘다음 달이면 끝날 것 같아’. ‘다음 달이면 (일)할 수 있을 거야’, 이렇게 한두 달을 버텼다. 그런데, 조금 전에 4대 보험이 상실됐다고 통보가 왔다.”
2월부터 임금 체불이 발생한 것으로 아는데 직원들은 어떻게 생활하는가?
“아르바이트밖에 할 게 없다. 대다수는 편의점, 모델하우스 이런 데서 일하고 있다. 남자들이 문제다. 남자들은 나이도 있고 특히나 조종사들은 다 40대, 50대고 하니까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택배, 건설현장 말고는 없다.”
국내선·국제선 운항 중단은 3월부터로 아는데, 왜 임금체불은 2월부터 발생했는지?
“고의적인 임금 체불이다. 1월 한 달간 6일밖에 못 쉬고 비행을 했다. 비행을 96시간 하고 아침에 코피가 나기도 했다. 그 정도로 비행을 했는데 2월에 갑자기 급여가 안 나온다. 이게 정상적인가. 공정위 기업결합심사 통과하려고 임금 체불을 발생시킨 거다.
제주항공과 이스타항공이 합치려면 공정위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경쟁업체 같은 업종은 결합이 안 된다. 예외조건 에 인수되는(매각되는) 회사가 완전한 미지급상태일 때라는 규정이 있다. 완전한 미지급, 그래서 임금체불이 발생한 거다.”
“이스타 항공은 제2의 삼양감속기”
회계 부정 의혹도 제기했는데…
“회사가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영업이익이 30% 증가를 했다. 그래서 완전 자본잠식도 면했다. 2019년도는 2018년도에 비해 매출이 2.5%밖에 감소를 안 했는데, 영업적자가 마이너스 790억 원이다. 이것도 이해할 수가 없다.”
적자의 원인을 뭐라고 보는지?
“과거에 삼양감속기와 KIC가 그랬다. 이런 기업들을 없앨 때, 돈을 어딘가에 빌려주고는 못 받는 거로 결손처리를 한다. 삼양감속기는 돈을 빼먹고 폐업시키고, 완전히 망하기 직전에는 배당금 800%를 가져갔다.
이스타항공도 똑같다. 내 생각에는 그냥 사기다. 이 와중에 회사는 문제를 자꾸 노사 간의 갈등 문제처럼 만들려고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다. 그냥 어떤 사기꾼이 회사를 없애면서 노동자들 다 날리고, 자기는 돈 빼서 나가려고 하는 걸 우리가 발목 잡은 것뿐인데 마치 노사분규, 아니면 노노 갈등 이런 거로 프레임을 자꾸 만든다.”
정부도 관련이 있다고 보는기?
“이걸 국토부가 몰랐겠나. 원래 운항 중단하면(재무구조가 어떻길래 운항 중단을 하는지) 국토부가 나와서 조사를 한다. 근데 가만히 있었다.
고용노동부도 임금 체불 발생하고 희망퇴직 받고 구조조정을 하는데 가만히 있었다. 제주항공이 인수하면 끝난다고 생각한 거다. 임금 체불은 범죄인데 범죄행위를 묵인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다.”
“고용만 유지해 달라, 비용이 문제라면 두 달 쉬고 한 달 일하는 방식으로..."
사태 해결을 위해 어떤 요구를 하고 있는가?
“우리가 요구하는 안은 되게 낮은 수준의 요구안이다. 노동자가 자기 임금을 다 지키려는 것도 아니고, 고용을 전부 유지하겠다는 것도 아니다. 회사를 점거해서 농성을 한 것도 아니다. 체불임금 일부 반납해줄 수 있다. 대신 고용만 유지해달라. 그게 비용이 문제라면, 두 달 쉬고 한 달 일하는 방식으로 순환 무급휴직을 하겠다. 대신 고용유지지원금 정부 제도 안에만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 이게 우리의 요구다.”
정부 차원에서 원하는 해결방안이 있다면?
“이 회사가 자체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가망성은 없다. 정부가 유동성 지원을 해야 한다. 이제까지 이스타항공은 수많은 LCC들과 메이저 항공사들이 유동성 지원을 받을 때 한 번도 못 받았다. 동급 다른 항공사 에어부산 같은 곳은 970억 정도 지원했다. 그 정도라도 지원을 해달라.”
항공산업이 어려운데, 이스타항공이 비전이 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항공산업 살리겠다고 기간산업 안정기금을 40조 원 쌓아놓고 있다. 7.3% 이자율이다. 어느 기업이 빌려 가겠나. 그런 돈 쌓아놓지 말고, 이참에 코로나 시국을 같이 넘길 수 있게 동기종 회사들을 묶어서 한시적 국유화하는 방안도 있다. 플라이강원은 벌써 임금체불 발생했고, 티웨이도 매물로 나온 상태다. 정부가 들어와서 관리하다가 코로나 끝나면 재매각하면 된다. 노동자의 고통 분담이 필요하면 하겠다.”
곧 상황이 괜찮아질 것으로 보는지?
“내년 11월이나 돼야 괜찮아진다. 그래도 국내선은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고, 지금 좌석 점유율이 93% 이상 유지되고 있다. 순환 무급휴직을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쉬는 사람은 회사에서 월급을 주는 게 아니라 정부에서 고용유지지원금을 받는 거기 때문에. 국내선 영업하는 만큼만 영업이익을 봐서 직원들에게 임금을 주라는 얘기다.”
“선택적 노동존중 계속되면 노동에 희망 없어”
정부와 정치권에 하고 싶은 말은?
“노동존중이라는 말, 코로나 시기에 단 한 개의 일자리도 잃지 않겠다는 말. (코로나 19시기에)기업이 책임져야 할 도리는 노동자의 일자리를 보전해주는 거라고 문재인 대통령이 얘기했다.
그 약속을 지켜라. 정치권은 선택적 노동존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자기네들과 이해관계가 있으면 그 노동자들은 이슈화시켜서 손을 잡고, 자기네들과 이해충돌이 있으면 버리는 그런 거다. 정치라는 게 그런 거라면, 우리나라에서 노동존중 찾기는 어렵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이 투쟁의 의미를 뭐라고 보는지?
“이 나라의 젊은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이다. 단식도 실려 가야 끝날 것 같다. 국감 끝나면 농성장을 청와대 앞으로 옮기려고 생각 중이다. 방법도 바꿔보고 여러 가지를 또 해볼 거다.”
[인터뷰 후기]
한편, 박이삼 위원장은 이 인터뷰를 마친 지 6일 후인 10월 29일 오전 몸 상태가 악화돼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이송됐다. 무기한 단식에 돌입한 지 16일째, 그는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하고 있었다.
/이고은 시민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