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최복현의 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 말이 있다. 살아가면서 즐거운 일이 있냐고? 그때 난 말한다. 즐거운 일이 뭐가 있겠는가. 고달프고 부대끼면서 사는 거지. 그러면 또 질문을 한다. 인생의 푯대를 세워줄 만한 책이 있었냐고? 그러면 난 또 대답한다.
그런 책 없다고. 어떤 이는 무슨 무슨 책을 읽고 감명을 받았다느니, 인생에 큰 도움이 됐다느니 하는데 창피하지만 난 그렇지 못하다. 좀 둔해서 그런지 아님 정서가 부족해선인지 몰라도 정말이지 난 그런 게 없다. 다만 살아가면서 뭔가 꽉 막힌 기분일 때나 절망적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댈 때 내가 찾은 것이 책인 건 분명하다. 책을 통해서 심리적 안정을 찾기도 하고, 가끔은 삶의 방향성을 잡아가기도 했다. 그렇지만 내 인생을 울릴 만한 책이 있나 생각해보면 없다고 하는 게 맞다.
내 책읽기는 잡식성이다. 이것저것 읽는다. 그것도 한 번에 여러 권의 책을 놓고 읽을 때가 많다. 이 책 읽다 싫증나면 저 책 읽고, 저 책 읽다 다시 따분해지면 이 책 읽는 식이다. 어떤 땐 전혀 다른 책을 섞어 읽기도 한다. 소설 한 권, 시집 한 권, 인문학 서적 한 권, 여러 권의 책이 책상 위나 방바닥에서 노니는 모습을 보고 혼나기도 하지만 내 책읽기 습관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그렇게 책을 읽다 보면 좋아하는 책, 읽고 싶은 책을 만나기도 하고 그럴 땐 그 무엇보다 즐겁고 하루를 알차게 보냈구나 하는 뿌듯함으로 자위를 하기도 했다.
“유일한 스승이고 멘토는 사람이 아니라 책이었다”
사실 난 책을 많이 읽지 못했다. 초등학교 땐 전래동화 몇 권 빼곤 읽은 적이 없다. 중학교 들어와선 주로 만화책과 무협지를 탐독했다. 무협지에 빠져 있을 땐 새벽닭 소리가 울 때까지 읽다가 토막잠 한숨 자고 학교를 가곤 했다. 그리고 학교에 가선 꾸벅꾸벅 졸면서도 읽다만 무협지의 다음 대목이 궁금해 안절부절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선 무협지와 만화책을 뚝 끊어버렸다.
돌아보면 나의 책읽기 방식은 기준이 없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엔 더 그랬다. 사람들이 고전이라고 떠들어대는 책은 읽어보지도 못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친구들이 니체와 러셀, 톨스토이와 헤밍웨이를 읽을 땐 그저 강 건너 불구경 하는 정도의 관심 밖이었다. 그러다 나이 들면서 철든다고 때늦게 책을 읽기 시작했다. 책읽기 철이 든 것이다.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책은 내 삶의 방향에서 멘토 역할을 했다. 또 힘을 돋아주는 역할도 했다. 사람보다는 책을 통해 내 길을 찾아갔고 삶의 기준을 잡아갔다. 나만이 아니다. 22편의 고전을 분석한 <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의 저자 최복현도 그랬다고 말한다.
중학교 과정부터 대학과정까지 독학으로 공부한 저자에게 유일한 스승이고 멘토는 사람이 아니라 책이었다고 한다. 그는 늘 책을 읽었고 책속에서 길을 찾았고 지금은 그 덕에 작가 흉내를 낼 정도가 되었다고 겸손해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읽었던 책 중에서 교훈이 될 만한 작품들을 정리하여 선보인 책이 <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이다.
이 책에 실려 있고 분석하여 내놓은 작품들은 대부분 한 번 정도 읽어봤던 작품들이다. 요즘 아이들이 중학교 정도 다니면 읽었을 작품도 많다.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렸던 작품들인 큰 바위 얼굴(호손), 마지막 잎새(오 헨리), 이방인(까뮈))도 보인다.
또 한때 베스트셀러 목록에 들어 있던 작품들, 사람들의 시간을 저축이라는 명목으로 빼앗아가는 시간도둑들과 도둑맞은 시간들을 사람들에게 찾아주는 어린 소녀 모모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담은 ‘모모(미하엘 엔데)’, 예전에도 그렇지만 지금도 역시 진행형인 자본주의 잔인함을 고발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을 다시 한 번 바라보게 하는 ‘세일즈맨의 죽음(아서 밀러)’, 인간의 삶과 죽음, 사랑과 미움 등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생각을 던져주는 소설로 제임스 딘 주연으로 영화화 되어 더 유명해진 ‘에덴의 동쪽(존 스타인벡)’, 고등학교 때 국어선생님이 꼭 읽어보라 추천해 읽어봤던 고전 모파상의 '비계덩어리'와 에밀 졸라의 '목로주점'도 저자의 목록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지금도 가끔 꺼내 읽는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이란 책도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몇 가지 단계를 거쳐 쓴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먼저 책의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야기하여 흐릿한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던 내용들을 또렷하게 드러냈다. 그런 다음 내용을 분석하고 그 내용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을 자신의 삶과 현실에 적용시켜 풀어놓았다. 그리고 책의 작가 소개를 하고 있다.
청소년 시절의 독서는 그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또 작품이 쓰인 배경이나 작가가 살았던 환경이 어떤 형태로 작품에 영향을 미쳤는지, 작품 속에 용해되어 있는 작가의 사상이나 사조 등은 물론 현대인이 어떻게 살아가야 되는가 하는 생각거리도 주관적이면서도 상당히 객관적으로 풀어냄으로써 읽는 독자들에게 작품을 새롭게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요즘 청소년들은 책 읽을 시간이 없다. 책을 읽고 싶어도 시간이 없어 읽지를 못한다. 아니 책 읽는 시간은커녕 또래 친구들과 어울리고 뛰어놀 시간도 부족하다. 아침에 일어나면 부스스한 눈을 하고 학교로 향한다. 정규시간이 끝나면 밤늦은 시간까지 자율학습을 하고 다시 독서실과 학원으로 향한다. 늘 시간에 쫓기면서 생활한다. 늘 시간에 쫓긴다고, 학습공부를 해야 한다고 책을 아니 읽힐 수는 없다. 왜냐하면 청소년 시절의 독서는 그 사람의 일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에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달라질 수도 있다. 무슨 책을 읽고 감동을 받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달라지기도 한다. 그만큼 청소년기에 읽는 책은 중요하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어떤 책을 권해 줄 것인가를 고민해야만 하고, 그들 또한 좋은 책을 골라 읽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어떤 책이 좋은 책이고 안 좋은 책인가 선뜻 말할 수가 없다. 또 추천하기도 어렵다. 그런 면에서 최복현의 <책 숲에서 사람의 길을 찾다>는 하나의 길라잡이가 될 수 있다.
이 책의 책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면 책속에서 무얼 찾고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책 속엔 다양한 인생이 들어있다. 독자들은 그 다양한 인생을 바라보면서 지금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깨닫게 된다. 이는 청소년들이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를 말해주는 이유기도 하고 저자가 이 책을 쓴 연유기도 하다.
/김현(<사람과 언론> 제5호(2019 여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