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조선의 글쟁이들

옛날 사람들은 어떤 글을 썼을까? 한글이 있는데도 한문으로 글을 썼던 그들. 왠지 조선시대 선비들의 글을 생각하면 우선 고리타분하고 어렵다는 생각부터 하게 된다. 그게 요즘 사람들의 생각이다. 그래서 옛글 하면 어렵다는 선입견 때문에 선뜻 손을 내밀지 않는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결론은 사상과 철학을 논하는 담론을 제외하곤 의외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글은 사람이다.

글 속엔 글을 쓰는 이의 삶과 정신이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글을 통해 그 사람을 이해했고 알려고 했다. 물론 글과 실제 삶이 이율배반적인 경우의 사람도 있지만 글을 통해 우리는 시대를 파악하고 그 사람을 알게 된다.그렇다면 조선에서 글쟁이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사람들은 어떤 글을 썼을까. 그들은 얼마나 언행일치의 삶을 살았을까. 지금을 사는 사람들은 가끔 이런 것들이 궁금할 법도 하다. 그런데 이런 궁금증을 조금은 해소시켜 줄 수 있는 책이 있다.

<조선의 글쟁이들>(민효 지음/왕의 서재)이다.‘조선의 지식인으로 산다는 것’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주류 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평생 떠돌이 삶을 살았던 비운의 천재 김시습, 조선 최고의 글쟁이고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연암 박지원부터 수백 권의 저서를 남긴 다산 정약용, 천재이면서 불행한 삶을 영위했던 허균과 허난설헌 남매, 당대 철학의 거봉이었던 이황과 이이, 정철과 강희맹 등 열네 명의 글쟁이들의 글과 삶을 조명해 놓고 있다. 그런데 이들의 글 쓰는 방식이나 글에 대한 생각은 그들이 사는 시대를 아파하면서도 많이 달랐다.

시대를 아파하는 글을 썼던 두 사람, 박지원과 정약용

연암 박지원과 다산 장약용. 동시대에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도 둘의 문체는 많이 달랐다. 연암은 사대부들의 전통적인 고문(古文)을 버리고 해학적인 소설식 문체를 사용하였다. 연암은 그 특유의 문체를 통해 당대 양반들의 허위의식을 신랄하게 풍자하고 비꼬았다. 이런 연암의 문체를 정조는 패관잡서(稗官雜書)라 칭하며 문체반정을 도모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정조의 뜻을 잘 따르는 인물이 갓 정계에 입문한 다산이다. 연암보다 25년 후에 태어난 다산은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의 시’가 바른 글이고 시라면서 연암의 글을 두고 “오직 음탕한 곳에 마음을 두고 비분한 곳에 눈을 돌려 혼을 녹이고 애간장을 끊는 말들일 뿐”이라며 비판하기도 했다.

사실 연암은 벼슬살이를 거의 하지 않아 정치적 부침이란 게 없었다. 그러나 다산은 정조의 총애를 받다 정조의 붕어 후 순조 때 신유박해로 집안이 멸문지경에 이르게 된다. 다산도 이때 겨우 목숨을 유지한 채 강진으로 유배를 떠나고 그의 유배생활은 18년이란 긴 시간 동안 이루어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유배생활 기간 대표적인 저서인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수많은 책들이 저술되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문체를 사용했지만 백성을 이롭게 해야 한다는 공통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글쓰기에 있어서 박지원이나 정약용은 살아 있는 글을 쓸 것을 주장했다. 실학 사상가답게 글이란 백성의 삶을 살찌우는 데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쓰기 자체로도 사회 개혁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글이란 현실에서 효용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연암과 마찬가지로 다산도 <여유당전서>에서 양반 사회의 모순을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드러내기도 했다."나의 소망이 있다면 온 나라 안이 모두 양반이 되는 것이니, 곧 나라 안에 양반이 없어지는 것이다."양반이면서 양반이 없어지는 사회를 원했던 다산, 그는 왜 이런 소망을 꿈꿨을까.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가 목격한 것은 백성들의 힘듦이었다. 수탈당하고 억압당한 백성들을 보며 다양한 표현으로 백성들의 아픔과 지배 권력층의 횡포를 비판했다.

호랑이가 어린 양을 잡아먹고는

입술에 붉은 피 낭자허건만

호랑이 위세가 이미 세워졌는지라

여우 · 토끼 · 호랑이를 어질다 찬양하네

그의 시를 보면 헐벗고 굶주리며 억압 받아 아파하는 농민들의 참상을 노래한 글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시에 대한 다산의 인식은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현실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은 글이 진정한 글이라고 말한다.

조선의 페미니스트인 허난설헌, 그녀는 절망에 울었다

결혼과 함께 여성으로서, 인간 존재로서의 삶도 망가진 조선의 한 여인이 있다. 허난설헌이다. 그녀는 소설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교산 허균의 누이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허난설헌을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나오는 일명 '규원가'라는 가사를 지은 여인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그녀의 문학과 삶은 잘 모른다.

어린 시절 어떤 삶을 살았고, 그녀의 문학이 얼마나 대단한지 거의 모른다. 조선에 태어난 자체가 불행이었고, 여자로 태어난 자체가 불행이었다고 말하는 허난설헌은 한마디로 비운의 여인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녀는 입버릇처럼 자신은 세 가지의 한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한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

그녀가 얼마나 자신의 운명에 절망하고 비통해 했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사실 허난설헌의 불행은 결혼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유로운 분위기의 집안에서 자란 허난설헌은 남동생 허균과 함께 서얼 출신인 손곡 이달로부터 시를 배웠다. 손곡은 삼당시인의 한 사람으로 당대의 최고의 시인으로 정평이 난 인물이다. 당시 허균과 허난설헌은 이달에게 시뿐만 아니라 그의 자유로운 사상도 함께 배웠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행복은 결혼과 함께 산산이 깨져버렸다.

그녀는 15세쯤 김성립과 결혼을 했지만 남편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만두고 시어머니의 구박을 당해야 했다. 능력이 변변치 못한 김성립은 그녀에게 정을 못 붙이고 방탕한 생활과 기방 출입을 일삼았다. 시어머니 또한 며느리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런 현실 속에서 그녀가 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 글 쓰는 일이었다. 그녀의 시중엔 남편에 대한 실망감과 분노를 표현한 게 있다.

이승에서 김성립과 이별하고

지하에서 두목지를 따르리

이승에서나마 불행한 삶을 마치면 저승에서나마 당나라의 시인 두목지와 함께 하겠다는 노래인데 당시 허난설헌의 마음이 어떠한가를 상상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허난설헌의 불행은 여기서만 그치지 않았다.

어린나이의 아들과 딸을 먼저 떠나보내고 뱃속의 아이마저 유산하게 된 것이다. 그런 현실을 시로 표현하기도 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을 잃었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네.

슬프고 슬픈 광릉 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마주보고 있구나.(하략)

사랑하는 자식을 잃은 어머니 허난설헌, 그녀가 기댈 곳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글 쓰는 일만이 그녀의 삶의 도피처였고 기댈 곳이었다. 그녀는 시 속으로 도망쳤다. 현실에서의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신선과 같은 삶을 꿈꿨다.

그녀는 시를 통해 인간계와 신선계를 끊임없이 오고가며 현실에서 이룰 수 없었던 사랑, 소망, 갈등, 애증, 한의 감정들을 정화시켰다.

여섯 폭 비단 치마 노을에 끌고

완랑을 불러 난초 밭으로 오르네.

피리소리 잠깐 새 꽃 사이에 그치니

그 사이 인간의 일 만년이 흘렀네.

부용 같은 꽃다운 나이 스물일곱에 이승을 하직한 허난설헌. 그녀의 시를 서애는 한나라와 위나라의 여러 문장가들보다 빼어나고, 그 나머지들도 당나라 시대 문장이 융성했을 때 지어진 시만큼 우수하다고 칭찬을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남녀 차별이라는 시대상황에 희생을 당한 희생양이었다. 자유로운 삶을 꿈꿨지만 자유를 얻을 수 없는 새장 속의 새로 살다가 삶을 마감한 시인이었다.

옛글이지만 옛글이 아닌 글들

<조선의 글쟁이들> 속엔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글쟁이들의 삶과 사상, 철학과 문학이 작품과 함께 글쓴이에 의해 이야기되고 있다. 이들은 삶 속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만들어냈지만 삶 자체는 대부분 평탄치 않았다. 천재였던 김시습과 이달은 평생 떠돌이 삶을 살았다. 유몽인과 허균, 박지원은 경직된 유교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자 했으며 글로써 그들의 세상을 만들고자 하기도 했다. 허난설헌은 조선 사회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자체가 비극이었다.

이들 대부분의 삶이 이방인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들은 척박한 현실 속에서도 자신만의 향기를 내는 글을 썼다. 또 글이란 게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생각해 볼 것들이 아닌가 싶다. 옛글이지만 옛글이 아닌 것. 지금 읽어도 지금의 글보다 더 향기가 있고 아픔이 있는 글들. <조선의 글쟁이들>을 읽어가다 보면 새롭게 느낄 수 있다.

/김현. <사람과 언론> 제2호(2018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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