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11)

사람들은 무엇 하러 사는가? 아름답고 행복하게 사는 게 인류의 공통 목표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세상을 아름답게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일이 인문학이 해야 할 구실이다. 요즘 뉴스를 보는 국민들이 나라 걱정하느라 피곤하다. 민생을 팽개치고 공천 밥그릇에만 눈독들인 정치꾼들의 저질 막말 싸움을 언제까지 두고 볼 것인지?
밥상머리 가정 교육이 사라지고, 교육현장의 주역인 선생님들이 소위 가진자들의 갑질놀이에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다. 인문소양이 부족하고 기본 인성도 못갖춘 사람들이 높은 자리와 돈을 탐내고 앉아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사회의 수많은 병폐들은 인성교육, 인문학 상실에서 왔다고 보여진다. 돈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숫자사회, 천민자본주의의 병폐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법·인생을 생각하는 법 배우는 '문사철'...모든 학문의 '기본'

대학의 설립 목적이 진리탐구와 문사철연구에서 출발했는데도, 취업률 숫자로 칼질하여 문사철과 예술관련 학과부터 없앴으니 대학의 기본을 상실해버렸다. 사람살이의 기본이 무너진 것이다. 세계적 축구스타 손흥민을 키운 아버지 손웅정 씨는 그의 성공비결을 기본과 인성교육 중시라고 말한다. 천민자본주의 후유증으로 중병이 든 한국 사회 병폐 치유의 근본 처방은 가정과 사회의 인성교육, 문사철 교육의 기본부터 시작하는 일이다.
인문학이 밥 먹여 주나? 동양사상의 원천인 주역은 "천문으로 때의 변화를 살피고 인문으로 천하사람들을 아름답게 교화해야 한다"고 한다. 재미과학자 강성중은 <한국과학기술 백년을 말한다>에서 문학, 철학, 예술이 발달하지 않고서 과학기술만 발전한 나라는 없다고 단언한다. 상상하고 창조하는 법, 인생을 생각하는 법을 배우는 문사철이 모든 학문의 기본이다.
문학이 밥 먹여 주는가? 천억원 상당의 길상사 재산을 기부한 김영한 보살은 이 큰 돈이 사랑하는 백석시인의 시구 하나 값어치도 못 된다고 했다. 천억의 큰 돈보다 시 한 수 값어치를 높게 보는 사람의 품격이 인문학의 덕이다. 필자가 고졸 9급 공무원으로 십여년간 주경야독하며 7급 시험, 행정고시에 도전하던 고난의 시절에 나를 살려준 것도 시구 하나였다.

궁핍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 사이에서 지쳐서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책상머리에 써 놓은 시구를 보며 다시 기운을 내곤 했다. "사나이 뜻을 세워 고향을 떠났거든 학문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도 돌아가지 않으리라(男兒立志出鄕關 學若不成死不還)"는 한시가 나를 살려준 14자 부적인 셈이다. 인문학은 사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하는 무한한 힘이 있다. 문사철이 사람다운 사람살이의 기본으로 익혀야할 교양임에 틀림없다.
고인돌 시대 한반도의 문명 수도였던 고창이 오늘날 다시 문화 수도를 꿈꾸려면, 마땅히 기본인 인문학의 수도를 목표로 해야 한다. 필자는 인문학 365일이란 정책으로 군민들께서 생활 속에서 인문학을 즐기도록 다양한 프로그램과 독서운동을 벌였다. 책 읽는 도시협의회 감사를 맡아 군민 독서운동에 힘을 쏟았다.
'책풍', 고창의 숨겨진 자랑

다행히 고창에는 이미 뜻있는 인문학 선구자가 열정적인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신림면의 책이있는 풍경, 책풍의 촌장 박영진 평론가와 해리면 책마을해리의 이대건 선생이다. 두분이 고향에 오셔서 자비로 문학공간 제공과 다양한 인문학 재능기부를 하면서 군민들께 무한한 문화향유 기회를 주시는데 대해 박수갈채를 보낸다.
책풍의 박영진 촌장이 11번째 인문학콘서트와 <사랑의 인문학 번지점프하다> 출판기념회를 연다는 기쁜 소식이다. <창비40주년특별상>으로 등단한 문학평론가 박영진 촌장은 젊은 시절 사업에 실패하고 어렵던 시절에 자신을 살려준 책에 보은하는 마음으로 책풍을 시작했다 한다. 다시 사업에 재기하여 번 돈을 모두 투자하여 4만여권의 장서와 다양한 독서, 휴게, 창작 공간을 12년째 자비로 운영하며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이런 공로로 대한민국 신지식인대상, 문화예술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책풍이 있는 곳은 방장산 기슭 신선봉과 노적봉 사이 용추골에 있다. 도선국사유산록이라는 풍수예언서에 용이 여덟개 발톱을 모으고 하늘로 오르는 형세의 용취팔각이란 천하대명당이 있다고 한다. 용춧골의 땅이름이 여기서 유래한다. 인문학당 책풍이 곧 한국의 인문학 잠룡들의 놀이터가 되었으니, 인문학의 등용문 대명당이 된 것이다. 고창사람 보다도 다른 지역 문인들에게 더 알려지고 사랑받는 책풍이야말로 고창의 숨겨진 자랑거리다.
'인문학'의 맑은 힘으로 탐욕과 오만 씻어내는 일, 국가 개조·지방 살리는 '기본'

개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쓰라는 게 돈이라는데, 어렵게 번 돈을 이렇게 귀하게 써야만 사람의 무늬결대로 아름답게 사는 삶, 인문학적 삶이란걸 몸소 보여주시는 고창 공음출신 문학평론가 박영진 촌장님께 경배를 바친다. 이리도 아름답게 헌신하고 재능과 돈을 나누고 기부하는 박영진 선생과 책풍작가들, 회원들, 인문학을 사랑하시는 아름다운 군민들께서 함께 손잡고 울력하니, 사람농사 잘 짓는 인문학 수도 고창은 멀지 않으리라.
세계 속에 한류를 알리는 케이팝이 선발대라면, 진정한 한류의 끝판왕은 홍익사상이나 인문교화 같은 한국의 아름다운 사상과 문사철이 되어야 마땅하다. 도시보다 월급을 더 준다해도 시골병원에는 못 오겠다는 의사들은 돈으로 고칠 수 없다. 시골과 농촌의 가치를 되찾는 눈도 인문학으로 떠야 한다. 지역소멸 대책의 기본은 우리사회의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다. 인문학의 맑은 힘으로 탐욕과 오만의 마음 밭을 씻어내는 일이 국가 개조, 지방 살리기의 기본이 되었으면 좋겠다.
/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