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기상의 전북 문화 이야기(7)

세월은 유수처럼 빠르나 해와 별의 운행은 어김없다. 하짓날 강화도 부근리 주변 고인돌을 답사하면서 고창 천문대 고인돌 배치 원리가 강화도에도 정확하게 들어맞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면서 강화 고려산에서 춤추고 만세부른지가 엊그제인데 벌써 추분이다. 고창 고인돌 가운데 춘추분 일출 방향으로 설계된 도산리, 향산리, 산수리 천제단 고인돌 일출을 보며 다시 가슴이 벅차오른다.
누가 천제단, 천문대, 첨성대 고인돌을 무덤이라 했는가?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가 조선인의 혼을 빼내서 통치하기 쉽게 할 목적으로 친절하게도 만들어 주신 조선의 역사책이 광복 80여 년이 다 되어가는 오늘날도 표지만 한국사이고 알맹이는 총독부 책 그대로다. 이게 우리나라인가? 조선총독부 촉탁 일본 민속학자 도리이류조가 만든 지석묘, 북방식, 남방식이란 용어와 고인돌은 무덤이란 인식을 아직도 답습하는 한국의 학자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해 연구하는가?
고정관념 버려야 고인돌 제 얼굴 볼 수 있다

다행히도 고창문화연구회에서 재능기부로 15년간 고창학 연구에 청춘을 바친 이병렬 박사가 고창 고인돌은 천문원리에 의해 배치되었음을 밝혀내는 인류사적 연구성과를 냈다. 이에 더해 일찍이 고조선의 신지비사(神誌秘詞)가 동이족의 터잡기 원형임을 밝힌 풍수학인 김두규 교수는 고창고인돌 배치원리가 한국 자생풍수의 시원임을 확인한다. 이어서 천문학, 인문학, 지리학, 언론계 등 각계 연구자와 필자가 이병렬의 고창 고인돌 천문배치 원리와 자생풍수 지혜가 한반도 고인돌 배치에 보편적으로 적용된 바탕지식임을 확인하였다.
고창 고인돌의 천문배치 원리는 경주 첨성대, 마야 달력으로 유명한 마야 천문대보다 2천여 년 앞선다. 7세기 중엽 조성된 경주 첨성대는 고창 고인돌 배치원리가 세련된 형태로 그대로 적용되어진 것이다. 고창 고인돌 천제단은 춘추분, 하지, 동지의 일출 방향을 맞추어 설계되었고, 경주 첨성대는 천문학적 설날인 동지 일출 방향을 축으로 삼았다.

고창 고인돌은 세계 최대의 운곡습지 제왕고인돌을 북극성으로 보아 남북축으로 삼고, 춘추분 태양경로인 월암리 고인돌과 도산리 천제단 연결축을 동서축으로 보고 개별 천제단, 첨성대, 천문대 고인돌을 배치하였다. 경주 첨성대를 중심으로 동지 일출선 축에 문무왕릉, 선덕여왕릉, 김유신묘, 옥녀봉, 월성이 연결된다. 고창 고인돌 천문지리 배치 원리의 판박이다.
경주 첨성대는 12개 단으로 12개월을, 365개 돌로 1년을 나타내는 등 보다 세련된 천문학과 8괘 9방 등 주역사상이 적용된 것이다. 황룡사 9층탑을 백제 장인 아비지가 건축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고인돌시대 이후 마한, 백제를 거치며 보다 성숙된 고창 고인돌의 천문지리, 건축지식 축적의 결정체가 경주 첨성대로 보인다.
천문학과 마야달력을 통치기반으로 삼은 마야의 천문대는 고창 송암리, 주산리, 용기리, 성산리, 라성리 등 천문대 고인돌 배치를 그대로 베낀 것이다. 전세계 거석문화에 보편적인 천문원리가 적용된 고창 천문대 고인돌은 지구적 표준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식민유산인 지석묘 무덤타령이라니 역사광복은 왜 이리 어려운가?
겨레의 선인들이 하늘 땅 사람이 사이좋게 살자는 맹세로써 춘하추동에 하늘을 경배하던 천제를 거행한 천제단이 고인돌이다. 경외의 대상인 해와 별을 관측하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고 점을 치던 천문대, 첨성대, 점성대를 모조리 무덤이라 규정한 식민사학의 지석묘라는 누명때문에 고인돌 연구는 근원적 한계에 봉착한다. 지석묘는 하루속히 우리말 고인돌로 바꿔야 한다. 일제식민 유산이며 명백한 오류인 지석묘라는 용어, 무덤이란 고정관념을 버려야 고인돌의 제 얼굴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인을 위한 '한국사' 다시 쓰는 일 '시급'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부족장 무덤이라는 식민사학의 판박이 저주를 벗어던지고, 한국인을 위한 한국사를 다시 쓰는 일이 시급하다. 고창에 와서 신새벽에 굄돌사이로 떠오르는 신성한 태양을 한번만 바라보면 바로 진실을 볼 수 있다. 고창 고인돌에 새긴 별자리 성혈이 실제 고창 밤하늘에 별로 뜨는 신비를 한번만 체험한 한국인이라면 무덤이라 더는 우기지 못하리라.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우리 고문헌자료에 지석묘라는 용어 용례가 애시당초 없었다. 지석(支石), 석상(石床)이란 용례만 확인된다. 대형고인돌 지구에 세운 고창 선운사의 산내암자 석상암이란 독특한 암자명 석상이 바로 천제단 고인돌이란 용례다. 선운산 석상암 천제단 고인돌은 하지 일출적용 고인돌이다. 한국 고고학계도 땅만 파는 개별 고인돌 발굴 일변도 조사연구에서, 전체 고인돌의 배치원리와 방향성, 성혈, 관계성 등을 천문지리, 자생풍수의 새로운 눈으로 학제적 접근을 해야할 때다. 지석묘라는 오류는 솔직히 고백하고 어서 수정해야 한다. 중국에서도 일찍부터 소위 천제단 고인돌 유형은 석상이란 뜻의 석붕(石棚)으로, 무덤류는 큰덮개돌무덤, 대개석묘(大蓋石墓)로 구분하여 쓰고 있고, 한국처럼 싸잡아서 고인돌을 지석묘라고 하지는 않는다.

세계 문화유산 중 누구도 흉내나 복제할 수 없는 최고최고(最古最高)의 문화유산이 높을고창 고인돌이다. 세계 고인돌의 7할을 차지하는 한국, 그 중에서도 마치 고인돌 백화점처럼 천문대, 천제단, 첨성대, 신성 영역 표시 고인돌, 해양식, 대륙식, 탁자식, 기반식, 혼합식, 고창식 등 모든 유형을 다 갖춘 고인돌군은 고창이 고인돌시대 세계 문명 창조의 요람임을 웅변한다. 여기에 고조선의 천문학과 자생풍수의 바탕지식이 고인돌 배치 원리임을 햇빛에 드러내는 학제적인 연구조사를 체계적으로 축적하기만 하면, 세계 6대 문명의 요람 전북 고창을 자리매김할 수 있다.
그 다음에 영국의 스톤헨지 같이, 페루의 나스카 유적처럼 하늘 땅 스토리 옷을 입혀 팔기만 한다면 '고인돌 왕국 한반도 첫 수도 고창'은 고품격의 역사문화관광도시가 되리다. 천년만년 이어져야 할 겨레의 바탕사상 천지인 인문학의 정수가 바로 고창 고인돌에 오롯이 어려있다. 놀라운, 그러나 해와 별을 보듯 명백한 진실이다.
/사진·글=유기상(문학박사·전 고창군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