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학자로 위장한 역사 왜곡 조작 기술자들의 농간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분연히 일어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전라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짐한다.”
‘전라도 천년사’ 역사왜곡 논란이 뜨겁다. 일제 식민사관 등 역사왜곡 시비가 불거진 이후 재검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광주·전남지역에서 커지고 있다. 시민사회단체와 언론,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예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마저 나온다. 왜 그럴까?
‘전라도 천년사’ 누가 기획했고,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전라도 천년사’는 전라도 정명 천년(2018년)을 기념하기 위해 고려 현종 9년(1018년)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기록할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후 현종 이전의 역사도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에 따라 ‘전라도 오천년’으로 확대됐다. 모두 34권으로 총서 1권과 전라도 고대부터 현대까지 6개 시기별 통사 29권, 전라도 도백 인명사전 등 자료집 4권으로 구성됐다.
사업비 26억원에 참여 인원만 600여명에 달하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애초 지난해 발간 예정이었지만, 일본이 고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설의 근거로 쓰인 ‘일본서기’를 차용해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전북도가 주관하여 전남·광주 등 호남권 3개 광역지자체가 2018년부터 5년 동안 ‘전라도 천년사’ 편찬 사업을 추진한 ‘전라도 천년사’는 역사, 문화, 예술 등 분야별 전문가 213명이 집필진으로 참여해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34권, 1만 3,559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전라도 오천년 역사를 편찬했다.
시민사회단체 2일부터 전북도청 앞에서 6일간 밤샘 농성...“전면 폐기” 주장

그러나 식민사관과 역사왜곡,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수용한 것으로 드러나자 ‘전라도 천년사’의 폐기와 재논의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인근 광주와 전남에서 높게 일기 시작했다. 지난 2일부터 전북도청사 앞에서 6일간 밤샘 시위를 전개해온 광주·전남, 그리고 전북 일부 시민사회단체 대표단이 8일 농성을 해산했지만 이들의 요구와 입장은 변함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호남지역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라도오천년사바로잡기500만전라도민연대(상임집행위원장 박형준. 공동집행위원장 김영광·양경님, 전라도민연대)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북도의회 부의장, 전북도청 문화관광국장, 정무보좌관 등과의 면담을 통해 ▲‘전라도 천년사’ 집필본 이의 신청기간의 연장 ▲검증 방법의 공개화 ▲전북도지사와의 면담 ▲‘전라도 천년사’ 전면 폐기 등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전라도민연대는 이어 “면담에서 전북도청 관계자들이 '전라도오천년사연대'의 요구 사항을 수렴하고 3개 지자체(전북, 광주, 전남)와 협의하여 조만간 그 결과를 통보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6일간 전북도청에서 투쟁해온 단체는 이날 낸 입장문에서 “줄기차게 요구해온 우리들의 요구에 대한 기관의 원론적인 답변이었지만 처음 공개적인 자리에서의 협의였고 전북도 행정기관의 공식적인 면담에 의미를 두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단체는 "학자로 위장한 역사 왜곡 조작 기술자들의 농간에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분연히 일어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역사’, ‘전라도의 자랑스러운 역사’를 바로 세우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지난 7일 열람 기한이 종료된 ‘전라도 천년사’에 대한 이의신청이 모두 78건으로 밝혀지자 전라도민연대는 "총 34권 1만 3,559페이지의 방대한 분량을 2주간의 짧은 열람 기한과 이의신청만으로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며 이의신청 기한 연장 및 다양한 이의신청 방법, 검증 방식의 공개 투명성을 촉구해왔다.

앞서 광주·전남지역 국회의원, 광주광역시의회, 전남도의회, 호남향우회, 역사정상화전국연대 등도 잇따라 서울 여의도 국회와 광주지역 등에서 성명서 발표와 기자회견을 통해 ‘전라도 천년사’의 식민사관과 역사왜곡을 규탄하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전라도 천년사, 광주·전남 우롱하고 모욕한 심각한 역사 오류·왜곡...전면 폐기하라”
이에 전북도와 광주시·전남도는 천년사 e북을 지난달 24일부터 2주간 공개키로 결정했다. 논란과 반발이 거세자 ‘선 공개 후 발간’ 방식으로 선회한 것이지만 이를 놓고도 시간적 여유가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시의회는 최근 “2만쪽에 이르는 방대한 규모의 사서를 단 2주 동안 공개하고 각계의 의견을 수렴, 오류를 바로잡겠다는 발상이 놀라울 따름”이라며 공람 기간 연장 등 공정성 담보를 요구했다.
전남도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조선총독부 식민사관도 모자라 중국의 동북공정까지 추종해 전남을 왜놈의 땅으로 만들려는 전라도 천년사는 폐기해야 한다”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전남도의회는 4일 “최근 공개된 ‘전라도 천년사’가 전남을 우롱하고 모욕한 심각한 역사 오류와 왜곡이 있어 전면 폐기하라”고 강력히 촉구했다.

강성희·오은미 “‘전라도 천년사’ 졸속 편찬...재논의 촉구”
이처럼 일제 식민사관적 표현으로 인해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던 ‘전라도 천년사’ 편찬이 지역 시민사회와 학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어 심히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전북에선 진보당 강성희 국회의원(전주을)과 오은미 전북도의원(비례대표)는 8일 성명을 내고 ‘전라도 천년사’의 재논의를 촉구했다.
이들은 "사학자 개인의 기록이 아닌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기록으로서 ‘전라도 천년사’는 역사 주권과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한편, 전라도민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을 높이 세우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면서 “특히 윤석열 정권의 친일 매국 외교와 더불어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 없이 역사 왜곡과 재침야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일본 위정자들의 행태가 노골화되고 있는 이때, 거액의 국민 세금을 들여 편찬한 역사서가 오히려 이들의 망언에 힘을 실어줄 우려가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들은 “학계에서조차 진위가 의심되고 있는 일본 역사서의 내용을 적극 차용하는 등 역사왜곡 논란이 일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심각한 재검토가 필요하며, 사회적 합의가 우선이 되어야 할 것”이라며 “아무리 전문적 영역이라 하지만, 역사를 개척하고 민족의 앞날을 책임져 나갈 미래 세대들을 위해서라도 올바른 관점에 입각한 역사기록은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전북 정치권, 침묵하고 있는 현실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아가 방대한 역사 편찬자료를 단 2주라는 짧은 기간에 공람토록 하는 것은 졸속편찬이라는 오명을 씻을 수 없게 할 것이며, 의견제출 방법을 공식적 접수가 아닌 담당자 개인의 이메일을 통해 제출하도록 한 것은 불통편찬의 사례로 남게 될 것”이라고 밝힌 이들은 “역사문제가 순수한 역사문제로만 될 수 없는 오늘, 전북 정치권이 이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전라도 천년사’ 편찬위원회는 도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공람 기간의 충분한 연장, 공식적인 방식으로의 의견 수렴방식의 전환, 쟁점 내용에 대한 대중적 검증과 공개토론회 등을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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