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남원 국립공공의료대학원(공공의대) 설립이 사실상 물 건너갈 위기에 놓여 서남대 폐교 이후 지역 정치권과 전북도·남원시 등 자치단체가 펼쳐온 노력들도 물거품이 될 공산이 짙게 됐다.
특히 서남대 폐교 후 공공의대 남원 설치가 후속대책으로 2018년 4월 결정됐지만 각 지역들이 공공의료 공백을 이유로 잇따라 경쟁에 가세하면서 관련 법안만 무여 12개가 국회에 발의된 상황에서 국회 통과가 지지부진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를 위해 의료계와 협상에 나설 예정이어서 남원 공공의대 설립 문제가 새 국면을 맞게 됐다.
보건복지부, 지역 공공의료 해소 위한 ‘의대 정원 확대’ 방침...공공의대 '새국면'

12일 보건복지부는 필수 의료대책의 핵심 방안으로 의대 정원 확대 등을 추진하기 위해 조만간 의료계와 상시 협의체를 가동해 속도감 있게 논의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남과 경남지역 등 의대 설립을 추진하는 일부 자치단체들이 우선권을 주장하고 나서 남원 공공의대 설립 문제가 원점에서 다시 논의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보건복지부는 9일 새해 업무보고를 통해 ‘보건의료의 약자복지 실현, 필수의료 강화’ 정책을 밝히면서 의대 정원 확대를 위해 의료계와 상시 협의체를 추진, 의대 정원 확충과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위해 의료계와 조속히 협의에 나서기로 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와 관련 지난 11일 KBS라디오에 출연해 이 같은 방침을 밝히면서 ”의료 서비스 격차 해소를 위해 의대 정원 확충과 비대면 진료의 제도화를 위해 의료계와 협의를 시작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의 이 같은 새해 업무 방침에는 지난 2018년 서남대 폐교 이후 문재인 정부가 당정합의로 추진했던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한 남원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내용이 제외돼 정부가 사실상 남원 공공의대 설립 추진을 포기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남원 공공의대 설립 유사 법안 12건 국회 계류 중...정부 이를 의식한 듯

더욱이 이번 보건복지부 정책은 그동안 남원 공공의대 설립 법안에 대해 국민의힘이 협조를 거부하는 등 다른 지역들의 공공의대 관련 법안들이 줄줄이 늘면서 윤석열 정부의 기조가 바뀌었음을 증명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공공보건의료대학 설립 법률안은 지난 2018년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이 합의한 가운데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으나 폐기됐다. 이후 21대 국회에서 김성주(더불어민주당·전주병)·이용호(국민의힘·남원임실순창) 의원이 폐기된 법률안을 재차 발의했지만 최근 지역 내 공공의대를 유치하기 위한 지자체들 간 경쟁이 과열 양상을 보이고 있다.
전남 목포·순천·여수, 경남 창원, 경북 안동·포항, 충남 공주, 부산 기장, 인천 등이 의대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각 지자체는 ‘낙후된 의료 인프라 개선’을 명분으로 삼고 있고, 현재 국회에 발의된 의대 신설 관련 법안만 12건이다.
이 중 6건은 특정 대학이나 지역을 명시하고 있고, 여야 할 것 없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들이 직접 나섰다. 지난해 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목포의대 설치 특별법’을 발의한 데 이어 ‘전라남도 내 의대 설치 특별법(민주당 소병철 의원)’, ‘공주의대 설치 특별법(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이 잇따라 발의됐다.
이밖에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은 ‘창원의대 설치 특별법’, 국민의힘 전봉민 의원 등 부산 지역 의원 10명은 ‘한국방사선의대 설립법’을, 국민의힘 김형동 의원 등은 ‘안동의대’ 설치에 관한 법안 발의를 했다. 법안들은 주로 공공의대 설치 예산 등을 국가가 지원하고, 의사 면허 취득 후 10년간 지역 의료기관 등에서 의무 복무하는 조건으로 큰 차이가 없다.
게다가 공공의대 설립 법안에 반대해 온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의 의대 정원 확충 방침에 즉각 반발하고 나서 여전히 의료계가 복병으로 자리하고 있는 점도 남원 공공의대 설립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서남대 의대 정원 49명, 전북대 32명·원광대 17명 배정...전북지역 의대 정원, 강원보다 '열세'

한편 지난 2018년 남원 서남대 폐교로 인한 의과대학 정원 49명은 교육부의 2019학년도 보건의료계열 입학정원 배정에 따라 32명을 전북대 의대에, 나머지 17명은 원광대 의대에 배정한 상태다. 이로 인해 전북의대 정원은 기존 110명에서 142명으로 원광의대 정원은 76명에서 93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그러나 도내 대학 관계자들은 “교육부의 당초 입장에 따라 서남대 의대 정원을 지역 대학에 한시적으로 배정하게 된 것”이라며 “전북은 단 두 곳의 의대에서만 235명을 모집하고 있지만 도세가 비슷한 강원도는 총 4개 대학교에서 269명의 입학생을 모집하고 있을 정도로 열세하다”고 말했다.
앞서 전북지역 대학들은 서남대 의대 편입을 두고 학생 및 학부모들의 반발로 진통을 겪기도 했다. 당시 전북대 및 원광대 학생과 학부모들은 시위를 진행하거나 국민 청원 게시판 등을 이용해 신중한 입장이 필요하다고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남원시 "부지 매입·도시계획시설 등 모두 갗춰 놓고 기다리기만"

이에 지난해 9월 27일 남원시민들과 시의원들은 국회 앞에서 공공의대 설립 법률 통과를 촉구하는 대규모 상경집회를 하는 등 분위기가 고조되었으나 별반 나아지지 못한 채 한해를 넘기고 말았다. 그동안 남원시는 공공의대를 설립하기 위해 부지 매입과 도시계획시설 변경 등 행정 절차를 마친 상태다. 공공의대 설립 건은 관련 법률이 통과되어야 사업을 추진할 수 있지만 현재까지 의사단체 등의 반대로 관련 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위에 계류돼 사업이 멈춰서 있는 상황이다.
민선 8기 출범 이후에도 최경식 남원시장은 “서남대 폐교 이후 전북대와 원광대에 한시적으로 배정된 남원 몫인 의대정원 49명을 원상태로 회복하고, 필수 공공의료 인력 확보와 지역의료 격차 해소를 위한 국립의전원이 반드시 남원에 설립될 수 있도록 공공의대 법률 통과에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와 국회는 먼 발치에서 바라만 보는 형국이다.
이에 대해 지역 국회의원 등 정치권은 “남원 공공의대 설립은 폐교된 서남대 의대 정원을 활용한 것이어서 의대 정원 확충과 상관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문재인 정부에 이어 윤석열 정부에 들어서면서 남원 공공의대 설립 의제는 더욱 퇴색하고 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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