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지리산 산악철도와 케이블카를 여기서 당장 멈춰라”
‘민족의 영산’, ‘국립공원1호’인 지리산이 개발과 보존을 둘러싸고 연일 시끄럽다. 특히 지리산 권역 자치단체들은 '지역소멸 위기'와 '경제 낙후'를 탈피하기 위해 지리산을 개발 수단으로 여기며 산악열차에 이어 케이블카 추진에 경쟁적으로 나서 환경단체는 물론 해당 주민들의 거센 저항과 반대에 직면했다.
남원시·언론들 “주민 교통·이동권 확보, 관광객 증가...지역경제 활성화” 홍보

먼저 '지리산에 국내 1호 산악열차가 들어선다'는 남원시의 발표와 지역 언론들의 경제유발 효과 등의 보도 이후 찬성보다는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전북지역 언론들은 지난 6월, 전북도와 남원시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에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가 선정됐다”는 발표 이후 “지리산 산악열차가 건설되면 현지 주민 교통·이동권 확보는 물론 관광객 증가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역 일간지들은 “남원시 주천면 육모정에서 지리산 정령치 구간의 왕복 2개 차로 가운데 한 개 차로에 산악용 전기열차 운행이 시작되면 국내 첫 산악열차”라는 점과 “국내에서 열차를 타고 지리산을 둘러볼 수 있어 새로운 관광시대가 열릴 것”이란 경제적 기대감만을 일제히 부각시켰다.
“반대 이유는 한 가지, '지리산 훼손'...남원시는 과장 홍보·불통 행정 멈춰라”

그러나 지리산은 국립공원에 반달가슴곰 등 보호해야 할 동물들이 서식하고 귀중한 환경 생태계가 조성되어 있는 만큼 이를 둘러싼 갈등이 팽배하다. 남원지역 뿐만 아니라 경남 하동군 주민들까지 가세해 지리산 산악열차 건설을 반대하고 나섰다.
국내 1호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훼손될 수 있다는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지역민들이 뭉쳤다.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남원시민연대’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을 이야기하면서 지리산에 이런 관광사업을 조성한다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며 “사업 추진에서도 '불통 행정'을 보이는 산악 열차 주진을 반대한다”고 주장하며 남원시와 맞서고 있다.
앞서 남원시는 지리산에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해 오다 2012년 추진이 사실상 어렵게 되자 2013년부터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으로 방향을 바꿔 추진해 왔다. 당시 이환주 남원시장은 “지리산 국립공원 관통도로를 통행하는 내연기관 차량에서 발생하는 소음과 대기오염 등 환경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산악열차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남원시는 이 외에도 "해마다 11월부터 다음해 3월까지 5개월간 폭설과 결빙으로 차량 통행이 제한되는 산간지역 주민들에게 교통 기본권을 제공한다"는 명분을 내세웠다. 특히 탄소배출 저감으로 ‘국립공원 생태계 보전’, ‘산간벽지 주민의 이동 편의 향상’, ‘관광을 비롯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산악열차 도입 필요성으로 내세우며 사업을 밀어붙였다.

남원시가 2019년 밝힌 기본계획 연구용역에 따르면 2028년까지 남원시 주천면·산내면 일대에 1,102억원을 투입해 길이 13㎞에 전기열차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1단계로 시범노선(고기삼거리~고기댐) 구간 1㎞, 2단계 실용화노선(육모정~고기삼거리~고기댐~정령치) 구간 12㎞이다. 전 구간에 기존 도로(지방도 737호선, 국지도 60호선)를 활용하고, 차량 병행 매립형 궤도(트램)를 사용하며, 무가선 배터리로 전력을 공급하는 친환경 방식이라는 것이다.
왕복 2차선 도로인 이 구간은 산악열차가 들어서면 1개 차선은 궤도를 깔아 열차가 다니고, 나머지 1개 차선은 비상시 일반 차량을 운행할 수 있다. 남원시는 산악열차의 영향을 직접 받는 주민은 주천면 고기리·덕치리 등 4개 마을 181가구, 330여명이라고 밝혔다.
“관광개발이 곧 지역발전인 양 시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

그러나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원회'는 "처음부터 과장된 사업일뿐만 아니라 주민 편의는 고사하고 오히려 통행에 더욱 불편을 초래하고, 해당 구간에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을 비롯한 생태계 파괴가 불 보듯한 사업이기 때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채 남원시청 앞에서 촛불집회를 지난 7월부터 이어오고 있다.
지리산 권역인 전남 구례군과 경남 하동·산청군 지역 주민들도 함께 참여하고 있다. 이들 주민과 지리산생명연대·수달친구들·실상사 등 단체 회원들은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생태복원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친환경 전기열차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관광개발이 곧 지역발전인 양 시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남원시를 비판하고 있다.

특히 "개발을 제한하는 자연공원법이 적용되는 구간이 포함돼 있음에도 시범사업 선정에 탈법적인 부분이 어떻게 용인됐는지 의구심이 크다"며 "10년 동안의 긴 공사 기간에 따른 주민 불편은 언급하지 않은 채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으로 수십 년에 걸친 예산 낭비와 충분한 시민 의견수렴 절차를 무시한 억지스러운 밀실행정 추진으로 지역민 간 갈등 심화와 함께 그나마 유지돼 온 지리산의 생태계는 복원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업 구간에 사는 마을 주민들도 “동절기 도로 통제로 불편을 겪는 주민의 교통 편리를 명분으로 삼는데 지금 이대로가 차라리 낫다”며 “오히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기 전에 해마다 산사태로 도로에 돌과 흙이 떨어지는 데 이 문제부터 당장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계절 만년설로 뒤덮인 스위스 융프라우 등과 비교되지 않은 조건...거짓·과대 광고”

지리산 산악열차 반대 대책위 회원들은 “친환경 사업이라고 하지만 무게가 150톤이나 되는 열차를 운행하려면 대규모 공사를 해야 하는데, 자연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발상”이라며 “사계절이 만년설로 뒤덮인 스위스 융프라우 등과 눈이 점점 오지 않는 지리산을 같은 조건에서 비교하는 것은 거짓·과대 광고”라고 지적했다.
이처럼 지리산권 주민들과의 갈등은 지난 2009년 전북, 전남, 경남 등 지리산권 자치단체들이 케이블카 사업을 추진하면서부터 비롯됐다. 하지만 환경단체들의 반발과 환경부의 제동으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가 어려워지자 2013년 남원시가 산악 전기열차 사업으로 방향을 틀면서 다시 갈등이 점화됐다.
여기에 최근 환경부가 반달가슴곰 보호 등을 이유로 반대한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전남 구례군이 경남 산청군과 손잡고 재추진하고 나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구례군, 산청군과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공동 추진 논의...반대 목소리 커

지난 7월 김순호 구례군수는 이승화 산청군수와 만나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 공동 추진을 논의했다고 일부 언론들이 보도해 주목을 끌었다. 그동안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인접 시·군이 백가쟁명식으로 추진해 오다 환경단체의 거센 반대로 수그러들었다.
그런데 구례군은 “환경부가 10년 전부터 지리산권 4개 시·군이 합의해 노선 하나를 만들라고 요구하고 있다”며 “국가 균형 발전을 위해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이 필요한 만큼 우선 산청군과 협력해 최적의 방안을 환경부에 공동 건의하겠다”고 밝혀 논란에 다시 기름을 부은 꼴이다. 앞서 지난 6월 7일 환경부는 구례군이 지난해 11월 단독으로 신청한 ‘구례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을 반려했다. 공익성·환경성·기술성이 부적합하다는 이유였다.
당시 환경부 관계자는 “구례군은 단독으로 신청했기 때문에 검토 조건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지리산 반달가슴곰 특별보호지역과 케이블카 종착역이 너무 가까워 반달가슴곰 서식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반대 이유로 들었다. 앞서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위원회는 2012년 지리산 권역 4개 지자체(구례·남원·산청·함양)가 각각 신청한데 대해 ‘단일화한 노선을 신청하면 검토할 수 있다’는 조건을 달아 부결한 바 있다.
지리산, 가장 가까운 자치단체들로 인해 멍들고 신음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대표 윤주옥)은 즉각 “지리산 케이블카 사업은 지리산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에 반대한다”며 “구례군은 주변 지자체를 자극해 지리산을 개발하는 행위를 멈출 것”을 촉구했다.
이같이 지리산을 둘러싼 각 지자체들의 케이블카와 산악열차 추진 경쟁을 놓고 찬반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그럼에도 추진 지자체들은 ‘소멸 고위험 지역’ 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란 명분을 내세워 적극적인 추진 의지를 보이고 있다.
지리산이 갈수록 시끄러울 전망이다. '민족의 영산', '한반도의 허파', '어머니의 산'으로 불려온 지리산이 가장 가까운 자치단체들의 경쟁적 개발 위협에 노출돼 멍들고, 신음하는 처지여서 국민적 관심과 보호 대책이 시급하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