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진단
케이블카 설치에 이어 산악열차 추진 문제를 둘러싼 논란으로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이 수난을 겪고 있다. 특히 남원시가 추진해 온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이 지난달 24일 국토교통부의 '친환경 운송시스템 시범사업 대상으로 선정되면서 찬·반 논란이 더욱 가열되고 있다.
지리산권 지자체와 주민들, 언론사들 간 주장과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고 있는 형국이다. '환경 파괴'를 이유로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게 나오고 있는 가운데 시범사업 선정 이후 '지역경제 활성화'를 내세워 반기는 지역 언론들과 지자체의 주장이 대별을 이룬다.
지리산 산악열차 백지화 요구 ‘촛불시위’...남원·함양·하동 주민들 함께
그중 지난달 29일부터 시작된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의 백지화를 요구하는 촛불시위가 일주일 가량 계속 이어지고 있어 주목을 끈다.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남원시민연대(집행위원장 한승명)는 이날부터 매일 저녁 7시 남원시청 앞에서 촛불시위를 열고 “산악열차는 희귀 동식물이 사는 지리산 환경을 파괴할 뿐 아니라, 시범사업 이후 투입될 지방비 부담이 시민에게 전가될 수도 있다”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러한 반대 목소리는 지리산권의 다른 지자체들까지 가세하고 있다.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남원시민연대가 주최하고 있는 촛불시위에는 경남 함양군과 하동군 주민들도 함께 하고 있다. 이들은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산악열차 추진 백지화를 위해 함께 촛불을 계속 들 것"이라고 말한다.
앞서 지리산산악열차반대 남원시민연대는 지리산 산악열차 추진을 저지하기 위해 남원시민과 4개 종단 종교인이 모여 지난 21일 남원시청 앞에서 성명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지리산 산악열차는 환경 파괴를 불어오는 사업“이라고 전제하고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에 시범용 산악철도를 놓겠다는 사업으로 많은 사업비 투입은 환경 훼손을 가속시켜 되돌릴 수 없는 상황을 내몰 수 있는 사업"이라고 주장했다.
경남 하동군서도 지리산 산악열차 뭇매...왜?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을 함께 추진해 온 경남 하동군과 산청군 등에서도 이러한 반대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앞서 남원시 외에도 경남 하동군 등 지리산권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있는 지리산생명연대·수달친구들·실상사 등은 지난달 21일 남원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업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생태복원 노력은 하지 않은 채 친환경 전기열차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관광개발이 곧 지역발전인 양 시민들의 눈과 귀를 어지럽히고 있다"며 남원시를 비판했다.
특히 "개발을 제한하는 자연공원법이 적용되는 구간이 포함돼 있음에도 시범사업 선정에 탈법적인 부분이 어떻게 용인됐는지 의구심이 크다"고 주장하며 "산악열차사업 시행기관인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과 주관 연구기관인 한국철도기술연구원, 남원시는 시민에게 책임감 있는 답변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유지돼 온 지리산 생태계 복원, 힘들어지게 될 것”

또한 "산악열차와 부대시설 운영과 관리 비용을 고려하면 투자 대비 수익을 기대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라며 "10년 동안의 긴 공사기간에 따른 주민불편은 언급하지 않은 채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으로 수십 년에 걸친 예산 낭비와 충분한 시민 의견수렴 절차를 무시한 억지스러운 밀실행정 추진으로 지역민 간 갈등 심화와 함께 그나마 유지돼 온 지리산의 생태계는 복원이 힘들어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경남 하동군은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라는 명칭으로 지리산산악열차 사업을 추진하면서 갈등을 빚어 왔다. 공공과 민자사업을 포함해 총사업비 규모가 1,650억원인 이 사업은 지리산 자락인 화개·악양·청암면 산 정상부 일원에 케이블카, 모노레일, 전기열차를 조성하는 방향이다.
하지만 지리산 권역인 하동군이 추진해 온 ‘알프스 하동 프로젝트’는 추진 단계에서 지역 환경단체 등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이에 기획재정부의 원점 재검토 결정과 민간사업자의 포기로 사업은 중단된 상태이며, 하동군은 모노레일(공공) 사업만 추진하고 있다. 앞서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은 지리산산악열차 반대대책위를 구성해 반대 활동을 계속 해왔으며, 하승철 하동군수 당선자는 '재검토'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지리산 산악열차 논란 재점화..."반달곰 등 동·식물 보호돼야"

이러한 반대 움직임은 지리산권을 둘러싼 인근 지자체들로 더욱 확산되는 분위기다. 앞서 지난 6월 초 환경부가 전남 구례군이 신청한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 계획을 반려했다. 반달가슴곰 등 동·식물 보호가 주된 이유였다.
전남 구례군이 지리산 일대 3.1㎞ 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며 낸 국립공원 계획변경 신청을, 환경부가 반려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케이블카 도착지가 반달가슴곰 보호구역과 가까운 만큼 관련 동·식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과 구례군이 단독으로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했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2012년 경남 산청과 함양, 전남 구례, 전북 남원 등 4개 지자체가 각각 케이블카 설치 신청을 하자, 지역 단일화 노선을 정하면 검토해보겠다는 조건부 부결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지역 환경단체는 크게 환영하면서도 구례군과 같은 이유로 남원시와 하동군의 지리산 산악열차 추진도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산악열차 노선이 놓일 지리산 일대는 지난해 환경부가 반달가슴곰 서식지로 판단해 '생태자연도 1등급지'로 지정했기 때문이다.
지리산권역 환경단체·지역 주민들 반대 목소리 더욱 커져
이런 가운데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지난달 24일 ‘산악용 친환경운송시스템 시범사업’ 공모에 남원시의 ‘지리산 친환경 전기열차 사업’을 우선 협상 대상 기관으로 최종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전북도를 비롯한 일부 지역언론들이 크게 환영했다.
향후 남원시와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산악용 친환경 운송시스템 연구개발 검증을 위해 2026년까지 국가연구개발비 278억 원의 예산을 투입, 지리산 일대 고기삼거리~고기댐 구간에 차량기지 및 검수고 건설하고 차량(3량 1편성) 제작 등 시범노선(1km)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시범노선 구축에 그치지 않고 육모정~고기삼거리~정령치에 이르는 13km 구간에 총사업비 981억원을 추가로 투입해 상용운영을 위한 실용화노선을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남원시는 지난 2013년 철도기술연구원과 지리산 산악철도 시범 도입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이 사업을 계속 추진해 왔다.
이처럼 남원시의 지리산 산악열차 사업이 10여 년 만에 가시화되면서 지리산권역 환경단체와 지역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사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지역 언론들은 대부분 찬성과 사업유치에 대한 기대감으로 들뜬 분위기다.
전북지역 일간지들 환경단체 목소리와 전혀 다른 주장
지난달 24일부터 전북지역 대부분 일간지들은 “전국 최초로 ‘산악용 친환경 열차’사업 공모에 남원시가 최종 우선협상 대상 기관으로 선정됐다”며 많은 지면을 할애해 스트레이트와 사설 등으로 보도했다.
전북도민일보는 일반 기사 외에 28일 사설 ‘지리산 산악열차 지역경제 활성화 기대’에서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은 산악지역에서 경제적, 문화적, 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민의 교통 편의를 위해 이 사업을 공모 추진해왔다”며 “국내 1호 산악열차 유치를 위해 강원 태백시와 경남 하동군 등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치열한 경쟁을 벌여 남원시가 최종 대상지로 선정돼 정부 공모사업을 따냈다”고 칭찬했다.
이어 사설은 “지리산 산악열차가 건설되면 현지 주민 교통이동권 확보는 물론, 관광객 증가로 인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남원시는 전기 열차가 상용화되면 1,610억원의 생산 유발과 1,128명의 고용 유발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주로 경제 효과에 방점을 찍었다.

후손에 물려줄 소중한 천혜 자원, 무엇과도 바꿀 없어
사설은 말미에서 “산악열차 건설에 대해 일부 환경단체에서 국립공원인 지리산이 훼손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으나, 전국 지방자치단체 간 치열한 경쟁 속에 남원이 정부 공모사업에 선정된 만큼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사설은 “이 사업은 기존 도로 구간에 레일을 설치하는 형태로 환경 훼손이 발생하지 않고, 전기배터리로 운행해 전기선로가 필요 없고 배기가스, 먼지 등의 오염물질도 발생하지 않는다”고 환경단체 목소리와는 전혀 다른 주장을 펼쳤다.
이처럼 지역의 주요 일간지들은 시민사회단체의 반대 목소리와는 전혀 다르게 지역경제 활성화 주장만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의 환경 보존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후손들에게 대대로 물려 줄 소중한 천혜 자원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팽배한 이유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