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법원 판결문서 드러난 '선거 브로커' 암약 실태

"피고인 B는 공동주택 관리 및 경비 청소 용역업체인 ‘주식회사 H’를 운영하며 직원들을 G정당 당원으로 가입시키고 I단체, J단체 등 지역 내 시민사회단체 대표로 활동하는 사람이고, 피고인 A는 K시의회 시의원을 역임한 아버지 L, D시의회 시의원인 누나 M 등을 통해 전북지역 내 다수의 정치권 인맥을 보유하고 있으며 위 ‘주식회사 H’에서 영업이사(부사장)로 재직하는 사람으로,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인맥과 사회적 지위를 기초로 다수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운동에 관여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다."
6·1 지방선거에 출마한 전주시장 예비후보에게 선거를 도와주는 대가로 사업권과 인사권 등을 요구한 이른바 '선거 브로커' 사건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브로커들 중 기소된 2명에 대한 법원의 실형 선고 판결문 내용 중 일부다.
‘선거 브로커 사건’ 판결문 보니...다양한 직업군, 촘촘한 지역 사회 인맥 활용

<전북의소리>가 13일 입수한 지난달 17일 전주지방법원 제11형사부에서 열린 공직선거법 위반 판결문(선고 2022고합151 판결)에 따르면 6·1 지방선거 과정에서 전주시장 선거 브로커 사건과 관련된 브로커들의 인맥은 지역 사회의 다양한 직업군이 개입돼 활동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특히 이들은 지역 내에서 촘촘하게 얽혀 각종 사업권과 행정의 인사권에도 관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노종찬)는 8월 17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된 전직 전북환경운동연합 대표 한모 씨(65)와 더불어민주당 전북도당 당직자 출신인 김모 씨(53) 등 2명 모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이들은 지난 지방선거를 1년 여 앞두고 전주시장 출마를 준비하던 이중선 전 청와대 행정관에게 선거운동을 돕겠다고 제안하며 당선을 전제로 인사권과 공사 사업권을 요구한 혐의로 기소됐다.
그런데 전주시장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선거 브로커 개입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이들은 이미 알려진 시민사회단체 대표와 공동주택 관리 및 청소 용역업체 운영 외에도 정당, 언론사 및 각종 단체 등에 적을 두고 활동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이들의 주변에는 막강한 정치권의 인맥들이 포진돼 있어서 그동안 선거 브로커 사건 이후 시민사회단체 등이 공개한 관련 녹취 파일에 등장하는 정치권 인사들과의 연루 의혹을 더욱 뒷받침해주고 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K시의회 시의원을 역임한 아버지 L, D시의회 시의원인 누나 M 등을 통해 전북 지역 내 다수의 정치권 인맥을 보유하고 있으며 ‘주식회사 H’(공동주택 관리 및 경비 청소 용역업체)에서 영업이사(부사장)로 재직하는 사람”으로 선거 브로커 중 한 명을 지칭함으로써 선거 브로커의 가족들이 지방의회와 매우 밀접한 관련성이 있으며, 정치권과도 인맥의 연결고리가 촘촘하게 얽혀 있음이 드러났다.
또 판결문에는 “피고인들은 위와 같은 인맥과 사회적 지위를 기초로 다수의 전국동시지방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선거운동에 관여한 경험이 있다”고 밝힘으로써 이들 브로커들은 비록 이번 지방선거에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다른 선거 과정에도 개입했음을 시사했다.
“당선되면 기업체들에게 지역 내 건설사업 관련 인·허가권 등 이권 보장을...”

또 선거 브로커들의 녹취 파일 공개 내용 중 일부는 판결문과 일치했다. 판결문은 "(선거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당선되면 향후 기업체들에게 지역 내 건설사업 관련 인·허가권 등 이권을 보장해주고, 피고인들이 운영 및 근무하는 ‘주식회사 H’를 통해 P과 Q이 준공할 공동주택의 관리권 등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적시했다.
이밖에 판결문은 “누구든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 또는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되고, 이를 지시 권유 요구하거나 알선하여서는 아니된다”면서 그러나 “피고인 A는 아버지인 L을 통해 지역 내 건설업체 중 주식회사 P(이하 ‘P’)를 알고 있음을 기화로, 피고인 B는 배우자의 친척 동생이 주식회사 Q(이하 ‘Q’)의 계열사 주식회사 R의 대표이사임을 기화로, P과 Q로부터 선거자금을 받아 C의 위 선거운동에 사용한 다음, 그 대가로 C이 D시장에 당선되면 향후 위 기업체들에게 지역 내 건설사업 관련 인 허가권 등 이권을 보장해주고, 피고인들이 운영 및 근무하는 ‘주식회사 H’를 통해 P과 Q이 준공할 공동주택의 관리권 등을 취득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 “피고인 A는 2021년 5월 중순경 전북지역 S건물 2층 ‘사단법인T’ 사무실에서 C에게 ‘이권을 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선거를 돕지 않는다. 돈을 주든지 자리를 주든지 해야 한다. 내가 Q, P에서 돈을 받아 올 수 있다. 기업체들로부터 돈을 받아와서 너 대신 조직을 운영하는 데 쓰겠다. 대신, 기업체들에게는 대가를 줘야하니 네가 D시장에 당선되면 향후 D시에서 진행하는 건설공사 사업권을 주기로 하라’라는 취지로 말하였다”고 덧붙였다.
또한 “피고인 B는 2021년 5월 중순경 위 ‘사단법인T’ 사무실에서 C에게 ‘선거를 하는데 누가 사람 좋다고 도와주는 것이 어디 있냐. 본인 취직자리를 주든지, 자녀 취직을 시켜주든지, 사업 도움을 주든지, 이익을 줘야 선거에 이길 수 있다. D시에는 35개동이 설치되어 있어 각 동을 책임지는 동책 6~7명, 총 200여명의 조직을 구성해야 한다. 한 달에 50만 원씩 주는 사람 200명을 만들어서 계속 주면 이길 수 있다. 내가 Q에서 돈을 받아다가 너의 선거운동에 사용할 테니, 네가 D시장에 당선되면 Q에 향후 D시에서 진행할 건설공사 관련 사업권을 보장해라’라는 취지로 말하였다”고도 밝혔다.
수주 경쟁 치열한 지역 주택·건설업체들, 정치권·시민사회단체·언론사·각종 단체 등과 결탁...선거 개입

이 외에도 “피고인들은 공모하여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을 요구하였다”고 밝힌 판결문은 “누구든지 선거운동과 관련하여 금품 기타 이익의 제공 또는 그 제공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그 제공을 약속하여서는 아니 되고, 이를 지시 권유 요구하거나 알선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강조하며 두 피고인에게 각각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또 눈길을 끄는 대목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 관련 이익 제공 요구 범행의 엄단 취지, 범행의 경위와 내용 및 그 결과에 비추어 피고인들에 대한 비난 가능성이 매우 높고 죄질도 불량하므로 피고인들을 엄하게 처벌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판결문은 피고인들의 법률상 처단형의 범위를 “피고인 A는 징역 1월∼7년, 피고인 B는 징역 1월∼10년 6월”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6·1 지방선거 기간에 지역 사회를 뜨겁게 달구었던 선거 브로커 사건의 녹취 파일에 등장하는 당사자들 중 지난달 실형을 선고 받은 2명에 대한 법원의 판결문을 종합하면, 선거 브로커들의 활동이 올 지방선거에서뿐만 아니라 그동안 많은 선거 과정에서도 광범위하게 암약해 왔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또한 타 지역에 비해 열세한 경제력, 취약한 기반임에도 업체 수의 과다 난립으로 공사 수주경쟁이 치열한 지역 주택·건설업체들이 지방의회 등 정치권과 시민사회단체, 언론사, 각종 이권 단체 등과 결탁해 선거에 관여하거나 직접 개입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지방의원 이해충돌 더욱 엄격히 적용하고 겸직 조사 확대 필요”

특히 이번 판결문에서 선거 브로커의 핵심 인물이 지방의원으로 활동하는 가족들과 밀접한 관계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가뜩이나 지방의원 겸직과 이해충돌 방지법 논란이 심각한 상황에서 지방의원들의 겸직에 대한 전수조사가 다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는 “선거 브로커들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1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브로커들이 가족들의 자금과 인맥망을 활용해 이득을 취하려한 사실들을 거론했다”며 “브로커의 가족 관계인 한 지방의원은 노후 아파트 지원 기준을 기존 20년에서 10년으로 줄이고, 지원 금액은 늘리는 개정안을 제출하고, 브로커 의혹이 나왔을 때는 동료 의원들에게 결백을 눈물로 호소했을 정도였다. 시민들의 권한을 위임받은 의원으로서 참으로 부적절한 행동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지방의원들의 이해충돌 관련 조항들이 더욱 엄격하게 적용되어야 한다"면서 "지방의원들의 겸직에 대한 조사도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전북도의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40명의 전북도의원들 중 전체 75%인 30명이 겸직 신고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중 ‘보수를 받는다’고 밝힌 겸직 의원은 8명(27%)으로 겸직기관·단체의 직위는 숙박업, 세무사, 학원, 임대업, 여행사, 농업, 각종 업체 대표 등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지난 7월 28일 겸직신고를 마쳤으나 보수는 정보보호법에 따라 공개되지 않고 있다.
한편 지난 6월 10일 전주시민회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지역 선거판을 뒤흔든 '선거 브로커 사건'의 녹취록 일부를 SNS를 통해 공개했다. 특히 이 녹취록에는 현역 국회의원과 기초단체장 당선인 이름이 다수 등장해 파장이 거셌다.
공개된 녹취록 내용은 A4용지 22장 분량으로, 두 명의 남성이 대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특히 녹취록에는 브로커들이 선거를 돕는 대가로 예비후보에게 인사권과 사업권을 요구하거나, 실명이 공개된 현역 국회의원 및 자치단체장들이 브로커와 연관이 있다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