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의 진범으로 몰린 피해자가 22년 만에 경찰의 사과를 받고 법적 책임을 묻지 않기로 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24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피해자 최모(37) 씨는 서울고등법원 민사부 중재를 통해 잘못된 수사를 한 당시 익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이모 씨의 사과를 받고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했다.
살인사건 진범 무혐의...최씨 젊은 나이에 10년 억울한 옥살이

지난 2000년 당시 나이 16세였던 피해자 최씨는 경찰과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살인범 누명을 쓰고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최씨는 앞서 지난해에도 살인사건 진범을 무혐의 처분한 검사의 사과를 받고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해준 바 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몰려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최씨는 지난해 12월 사건 당시 진범을 잡고도 무혐의 처분한 현직 부장검사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해 이목을 끌었다.
[해당 기사]
익산 약촌오거리사건 진범에 무혐의 내린 검사, 15년 만에야 사과...지체된 정의의 대가는?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피해자, 현직 검사 사과 한마디에 소송 취하?...'싸늘’
피해자 최씨 측은 지난해 12월 15일 서울고법 민사20-3부(부장판사 김영훈·홍승구·홍지영) 심리로 열린 손해배상 소송 변론에서 "피고 김모 검사에 대한 소송을 취하해달라"고 밝혔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은 2000년 8월 익산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목격자였던 최씨는 범인으로 지목돼 어린 나이에 징역 10년을 확정받았다. 김모 검사는 최씨를 직접 수사하고 기소한 검사는 아니지만, 2006년 진범을 조사하고도 무혐의 처분을 내려 최씨의 억울함을 밝혀내지 못했다.
피해자, 검사 사과 한 마디에 소송 취하...그러나 당시 경찰관은?

10년 옥살이를 마치고 2010년 출소한 최씨는 재심을 통해 무죄 선고를 받았지만 진범은 뒤늦게 구속 기소돼 징역 15년을 확정받아 복역 중이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과 또 다른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억울한 사연이 깃든 사건들로 재심을 통해 모두 결과가 뒤집혔다. 그럼에도 정작 사건을 처분한 검사의 사과는 처음이란 점에서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최씨 측은 불법 감금하고 폭행했다는 의혹을 받았던 당시 익산경찰서 소속 경찰관 이모 씨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이어왔다. 이에 대해 이씨 측은 “원고가 무고한 옥살이를 한 것은 죄송하지만, 소송자료를 아무리 모아봐도 (불법감금이 있었다는) 최씨의 진술에 따라 사실관계를 파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최씨 측은 “가혹행위가 있었음은 관련 형사판결에서 인정됐다”고 반박했다.
이씨 측 대리인은 “진범이 잡혔고, 최씨가 무고한 옥살이를 한 것에 대해선 죄송하게 생각한다”면서도 “이씨가 불법 감금이나 가혹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는 대신, 최씨 진술뿐이다”고 맞섰다. ‘허위 자백’에 대한 책임은 없다는 주장이지만, 앞서 1심 재판부는 이씨를 비롯해 당시 익산경찰서 소속 경찰들의 가혹행위를 인정했다.
1심은 국가로 하여금 "최씨와 가족들에게 16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하며 "김 검사와 이씨에게 각각 20%를 국가와 공동 부담하라"고 판결했다. 국가는 이후 "책임을 통감한다"며 항소를 포기해 배상 판결은 확정됐다. 그러나 나머지 배상액 중 이씨의 부담 비율을 결정할 항소심이 진행돼 왔다.
거짓 수사로 10년 옥살이...무너진 사법부 정의

하지만 처음부터 사법기관의 잘못된 수사와 기소 등으로 1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도 현직 검사의 사과 한마디에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할 수 있느냐는 의구심과 따가운 눈총이 쏟아졌다.
특히 수사 진행과정을 복기해보면 억울한 누명을 벗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경찰과 검사, 판사와 국선 변호사 등 모두가 외면함으로써 아쉬움이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수사기관은 2003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첩보를 입수해 용의자를 붙잡고도 물증이 없다는 이유로 검찰은 사건을 마무리했다.
더구나 김 검사는 당시 이 용의자를 불기소 처분했으나, 결국은 진범으로 드러나 2018년 징역 15년형이 확정됐다. 만기 출소한 피해자 최씨는 2013년 경찰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로 자백했다며 재심을 청구한 끝에 2016년 11월 무죄를 선고받았지만, 가족들이 재심을 청구하지 않았더라면 고스란히 묻힐 뻔했다.
다행히 최씨와 가족은 이후 국가와 이씨·김 검사 등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내 1심에서 승소했다. 그런데 피해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취하하기로 한 현직 김모 부장검사는 2006년 진범에 면죄부를 준 장본인이었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사건, 전북지역 대표적 재심 사건...검·경, 깊이 반성하고 성찰해야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사건과 삼례 나라슈퍼 강도치사 사건은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로 모두 재심 사건으로 더욱 유명하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무고한 시민들이 옥살이를 한 대표적 사건들이다.
뒤늦은 사과와 반성이 있었음에도 결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닌 두 사건은 특히 사법부의 올바르지 못한 수사와 판단, 지체된 정의가 얼마나 많은 약자들에게 고통과 피해를 가져다주는지 뼛속 깊이 새기며 두고두고 반성하고 성찰해야 할 사건들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