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근의 지리산 문화대간(74)

"소리꾼은 철들기 전까지는 청중소리를 하며 놀고, 철들고 나면 자기소리를 하고 논다."

소리꾼들 중에는 소리를 풀어먹고 사는 이가 많았다. 관중 앞에서 소리를 하고 공연료를 조금씩 받아 사는 동안 자신의 소리가 인기가 생겨나면 수입도 많아졌다. 그러한 소리꾼들은 대중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소리를 하며 살다가 나이가 들고 인기가 사라지면 뒷방 소리꾼으로 전락했다.

반면 자신의 소리 완성을 위해 평생을 수련하며 살던 소리꾼들은 틈틈히 생겨난 소리청의 공연에 참가하여도 자신의 소리만을 고집하며 불렀다. 그러다가 생활이 궁핍해질 때 관중이 모인 곳에 가서 소리를 해야 할 경우에도 자신의 소리 스타일을 지키며 공연을 했다. 당연히 관중들은 쉽게 자리를 뜨게 되고 별 수입 없이 소리판을 접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 일화 하나는 이렇다. 지리산 소리꾼이 장날 열리는 소리판에 가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그날은 관중도 많았으나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몰라도 자기 혼자만 그 소리판에서 공연을 하게 되었다. 다른 소리꾼들의 장날공연처럼 자신의 소리가 끝날때까지 관중들이 자리를 지키며 추임새판에 들어 끝까지 함께 할 것이라고 믿고 온 힘을 다해 소리를 했다.

그런데 얼마되지 않아 관중들은 모두 일어나서 떠나 버리고 딱 한 사람만 남아서 자신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 소리꾼은 자신의 소리를 알아주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니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끝까지 소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해가 질때까지 소리를 하고 마쳤다.

소리판을 끝낸 그 소리꾼은 자신의 소리를 끝까지 들어준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자신의 소리를 알아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회답을 했다. "저는 명창님의 소리가 뭣인지 몰른디 왜 명창님의 소리판이 끝날때까지 앉아 있었냐면 명창님께서 깔고 앉은 돗자리가 제것이라서 그것을 가져갈려고 기다렸응개로 감사하다는 말은 다시 가져가시지라우"라고 했다.

그 소리꾼은 그 뒤로 속세를 떠나 소리 수련후 제자들만 키워내는 선생 소리꾼이 되었다. 시골 속담에 여자가 철이 들때면 시집을 가고 남자가 철이 들때면 눈을 감는다는 말이 있다. 철들 나이가 되면 늙어 죽는다는 남자들처럼 소리꾼들이 자신의 소리에 늦게 눈이 뜨이면 또랑 광대가 되고 말았다.

일찍 철들어 생겨난 소리가 동편제와 서편제다. 동편제 탯자리 남원은 과거 일찍 철들었던 고을이었고 그 유산이 문화도시다. 백성의 아우성이 응원인지 탄핵인지 구분 못하는 철들지 않은 고을 원님의 출현은 소년급제보다 더 큰 재앙이고 그것은 존재만으로도 고을 쇠락의 촉매제다. 

/글·사진: 김용근(지리산문화자원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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