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길따라 인생따라'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내 어린 시절

매일 책만 읽고 있는 나에게

아버지는 말했다.

“너는 강태공이 될라고 그러냐.

책에서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아무 말 없이 책장만 넘기는

내 귓전에 들리던

긴 한숨 소리.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제 자리를 못 잡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고 있는 나를

가만히 바라보시기만 했다.

걱정스럽던

그 눈빛에서 묻어나오던

침묵 속의 그 소리!

“책에서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아버지는 조금 이른 나이에

내가 책을 써서 자리를 잡는 것,

지켜보지도 못하신 채

훌훌 먼 곳으로 길 떠나셨다.

문득 그 시절이 생각나서

먼 곳을 응시하며

“아버지! 책 써서 밥은 먹고 삽니다.”

말씀드려도

보이지 않는 허공에서

아무 말도 없으신 나의 아버지.

...

선각산은 구름 속에 있고.

/신정일(길 위의 인문학 우리 땅 걷기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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