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41)] “지방방송 꺼라”
지방방송은 오래 전에 이미 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송권력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탓이다. 지방의 뉴스와 여론을 전달하는 지방방송 의 부활은 지방부활의 선결조건이다. 시중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 “지방방송 꺼라”라는 말이 있었다. 중요하지 않은 잡담이고 소음이니 중단하라는 뜻이다.
표현의 근원은 명확히 파악하기 어렵지만, 한국 사회에 방송의 전국적 네트워 크가 완성된 시기에 시작된 말인 듯싶다. “지방방송 꺼라”라는 표현 이 일상적인 용어가 되었다는 말은 지방사람들도 그것을 사용했음을 의미한다. 지방사람들이 애초에 강하게 거부하거나 불쾌해했다면 일 상적인 표현으로 인식되지 못했을 것이다. “지방방송 꺼라”라는 표현 을 통해 서울사람들은 물론이고 지방사람들조차도 지방방송을 무시 하고 외면했음을 알 수 있다.
지방사람들조차 지방방송을 무시하고 외면

그렇다면 지방사람들조차 지방방송을 무시하고 외면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의 지역방송은 지상파 방송사들이 담당하는데, KBS, MBC와 SBS 3대 네트워크가 독과점 시장을 구성하고, 서울의 방송이 지방 지방방송은 오래 전에 이미 꺼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방송권력이 모두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탓이다.
지방의 뉴스와 여론을 전달하는 지방방송의 부활은 지방부활의 선결조건이다. 방송을 통제, 관리하는 수직적 형태이다. 일제에 의해 방송이 국내에 도입된 이후에도 달라진 바가 거의 없는 서울 중심 방송체제이다. 전국방송은 물론이고 지방방송마저도 지방사람들이 아닌 서울사람들 이 운영하다 보니, 늘 지방의 필요와 이익보다는 서울의 필요와 이익 이 우선되는 방송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다수 시청자가 지방사람들 이고 시청료 대부분을 지방사람들 주머니에서 나오지만 지방방송 프 로그램은 최소의 비용과 인원으로 만들게 했다. 자연 지방방송 프로 그램은 부실할 수밖에 없었고, 지방사람들마저도 지방방송을 외면하 게 만들었다. 2021년 기준으로, 지방방송은 KBS 지역국 20개, MBC 지방계열 사 16개, SBS를 포함한 12개의 지역민방사로 구성되어 있다.
방송의 중앙 집중과 지방 소외는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전략 일환
세 종류의 체제 모두 지역방송사가 중앙방송사의 광고영업과 프로그램 공급에 의존한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없다. 이러한 중앙방송의 지역방송 지배구조는 일제 식민지 시절 비롯되어 군사독재 정권을 거치며 공고해졌다. 민주화 이후 사회 각 부문에서 권위주의 잔재를 청산했지만 방송구조는 식민잔재가 고스란히 유지되었다. 방송의 중앙 집중과 지방 소외는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 전략의 일환이었다.
식민지의 언론자유를 적극 탄압한 일제였지만, 방송 매체는 오히려 적극 권장했다. 방송을 활용해 한반도 식민지배를 공고히 하고 전쟁 선전과 물자동원에 활용하기위해서였다. 1927년 조선 총독부는 사단법인 형태로 경성방송국(JODK)을 개국해, 재한일본인들로 하여금 방송에 접근할 수 있게 했다. 1930년대 들어 한인 청취자들이 늘자 JODK는 조선어방송과 일어방송을 분리하고, 지역방송 국을 늘려 나아갔다.
1935년 부산을 시작으로 해방 전까지 평양, 청 진, 함흥, 원산, 대전, 마산, 춘천, 청주 등 주요 지방도시 18곳에 방송국을 설치했다. 물론 지역의 자율성은 차단된 채 중앙의 방송을 중계하는 것이 당시 지역방송의 주된 역할이었다. 해방 직후 남한의 10개 지역방송국은 서울의 경성방송국을 중심으로 미군정청 공보부가 직접 관할했다. 미국식 상업방송 포맷이 도입되고 방송전파를 통해 미국의 대중문화가 유입되었지만, 방송제도는 일제 식민지 시절의 중앙집중적 관료주의 방송체제를 존속시켰다.
디지털 시대, 중앙과 지방 간 격차 해소는커녕 오히려 중앙집중 심화
이승만 정부는 방송을 아예 정부 직제에 포함시키는 국유화를 단행했고,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국영방송 KBS를 중심으로 전국적 홍보망을 확보했다. 부정부패를 구실로 부산문화방송과 서울문화방송을 강제 탈취하며, 갓 싹트기 시작한 지역방송의 뿌리도 제거했다. 박정희 정권은 1960년대 중반부터 민간 방송의 형태로 새로운 지역방송국을 허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지역방송국은 중앙 집 권세력과 그들과 연계된 지방정치인들과 기업가들이 장악하면서, 중앙과 지방 기득권층의 정치적, 경제적 이익을 상호 도모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 군사독재 시절 지역방송은 편성, 인사 등 거의 모든 부 문에서 자율성을 상실한 채, 중앙방송의 중계소 기능을 발휘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 1980년 언론 통폐합에 따라 지역방송은 더욱 철저한 중앙의 통제하에 놓이게 된다.
MBC는 지역의 21개 MBC 가맹사 주 식을 51% 이상 인수하여 계열화하고, 나머지 민간 지역방송은 KBS에 흡수되었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정권이 퇴각하면서 “지역민방”이 다시 등장했다. 민주화 더불어 추진된 지방자치에 부응하려면, 지역언론으로서 지역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 덕분이다. 1991년 SBS가 수도권을 방송권역으로 개국했고, 1995년 에는 부산, 대구, 광주, 대전, 1997년에는 인천, 청주, 진주, 울산, 1999년에는 강원민방과 제주방송이 개국해 지역민방이 11개 로 늘어났다.
중앙과 지방 간 방송 불균형 해소하기 위한 대책, 끝내 제시되지 못해
그러나 군사독재정권이 만들어 놓은 KBS와 MBC 지역방송의 예속 구조는 그대로 유지되었고, 지역민방도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제일 먼저 개국한 서울 SBS가 후발 민방 사업자 의 키스테이션(Key Station) 역할을 하면서 지역민방 역시 중앙 과 지방의 종속구조가 재현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진입하면서 산업경쟁력 위주의 방송정책이 추진되면서, 중앙과 지방 간 격차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중앙집중이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민주화 이후 방송구조 개편과 방송법 개정을 두고 끊임없는 논란이 이어졌지만, 중앙과 지방 간의 방송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대책은 제시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제정한 통합방송법은 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의무에 ‘지역사회의 균형 있는 발전’을 명시했지만 지역 방송의 종속구조를 개선하려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방송위원회 내부에 지역방송발전위원회를 구성해 지역방송의 위상 강화, 지역 여론 형성과 지역 정보 개발, 지역 밀착형 프로그램의 확대 등을 약속했지만 역시 실현된 것은 없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8월에는 지역방송발전위원회가 법정기구로 공식 출범했으나 방송의 쇠퇴와 위축을 막는데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다.
※이 글은 필자의 저서 <지방부활시대> 중에서 필자 동의를 얻어 발췌한 일부 내용임.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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