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이슈 진단
미디어 비평 전문 매체인 ‘미디어오늘’이 법조 출입 기자단의 ‘카르텔’을 깨기 위한 법적 소송에서 승소함으로써 고질적 병폐이자 오랜 관행으로 이어져 왔던 관공서 등 출입처 기자단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한국 언론계의 적폐로 지적받아 온 출입 기자단의 폐쇄성과 배타성, 카르텔 등이 이번 기회에 사라질지, 서울은 물론 각 지역의 관공서 출입 기자단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출입 기자단 '폐쇄성', '배타성', '카르텔' 문제로 지적
미디어오늘의 19일 보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강우찬 부장판사)는 이날 미디어오늘이 서울고등법원을 상대로 한 ‘출입증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 판결에서 “피고(서울고법)가 원고(미디어오늘)에 대하여 한 기자실 사용신청 및 출입증발급신청에 대한 거부 처분을 취소한다”고 선고했다.
재판부는 지난 8월 20일 1차 변론기일에서도 “신청이 거부된 이유가 무엇인지가 이 사건 핵심이다. 적절한 답변이 없다면 처분 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 “‘기자단에서 자율적으로 정했으니, 기자단이 원고를 안 받아줘서 어쩔 수 없다’ 이런 답변이라면 용납이 안된다”고 밝혀 사실상 미디어오늘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앞서 미디어오늘과 뉴스타파, 셜록 등 3개 언론사가 지난해 12월 서울고등검찰청과 서울고등법원에 출입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하면서 소송은 시작됐다. 당시 서울고법은 “출입기자단 가입 여부와 구성은 기자단 자율에 맡기고 법원은 관여하지 않는다. 출입기자단 가입은 기자단 간사에게 문의하라”고 밝혔다.
이에 3개 언론사는 “사실상 법원이 기자실 사용 허가와 출입증발급 권한을 출입기자단에게 위임한 것이다. 그런데 법원이 출입 기자단에게 이 권한을 위임할 법적 근거가 없다. 법원의 거부 처분은 법률 근거 없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3월 행정소송에 나섰다.
이번 판결은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 뉴스타파가 서울고등검찰청검사장을 상대로 진행 중인 출입증 발급 등 거부처분 취소소송뿐만 아니라 대부분 지방자치단체와 관공서들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기자단, 자의적 구분일 뿐 아무런 실체 없고 기자들과 출입처의 유착 관행화하는 악습"
이번 판결과 관련해 이정환 미디어오늘 편집인(대표이사)은 “기자들이 다른 기자들의 기자실 출입 여부를 투표로 결정하는 관행에 법원이 제동을 건 것으로, 기자단이 다른 언론사에 그걸 어디까지 허용하고 말고 결정을 할 권한이 없다는 의미”라고 미디어오늘을 통해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애초 기자단이란 조직이 출입기자들의 자의적 구분일 뿐 아무런 실체가 없기도 하고 기자들과 출입처의 유착을 관행화하는 악습이었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는 판단”이라며 판결을 반겼다.
그는 또 “법원과 검찰뿐만 아니라 정부와 공공기관은 모든 국민들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고 그건 메이저 언론사와 마이너 언론사뿐만 아니라 블로거와 유튜버에까지도 투명하고 공평하게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는 의미”라며 “미디어오늘뿐만 아니라 모든 언론에게 동등하게 정부 부처의 브리핑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확보했다는 데 이번 판결의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기자단에 가입해야 출입증 발급 가능?..."폐쇄적 운영"
그동안 법조 기자단은 폐쇄적으로 운영돼왔다는 지적을 받는다. 3명 이상의 기자로 구성된 팀이 6개월 이상 법조 기사를 보도해야 기자단 가입 신청이 가능해 소규모 언론사나 프리랜서 기자에겐 불가능한 조건이다. 이 조건을 충족하면 서울중앙지검 기자단, 대검찰청 기자단, 서울중앙지법 기자단, 대법원 기자단의 3분의2 이상의 ‘정성적’ 동의를 얻어야 기자단 가입이 가능하다.
이렇게 기자단에 가입해야 출입증 발급이 가능하다. 또한 신청한 판결문을 받기까지 기자단은 몇 시간이 걸리지만 비(非)기자단은 보통 2주일가량 걸리며, 일부 재판의 경우 법조기자단 소속 기자만 노트북을 쓸 수 있다고 할 정도라니 얼마나 배타적이고 폐쇄적인가.
20년 전 상황, 아직도 변하지 않은 취재 시스템
필자는 이번 판결을 보면서 20년 전의 일이 문득 생각났다. 2002년 필자는 지역의 한 국립대에서 ‘지방자치단체 기자실 존폐 논쟁에 관한 연구 -취재보도 시스템의 변화와 대안을 중심으로-’란 제목의 석사학위 논문을 발표했다. 현직 지역언론사 기자이면서 주언야독(주간에는 언론활동 야간에는 대학원 공부)하며 이 같은 논문을 쓰겠다고 하자 주변에선 만류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도교수 등의 조언과 지도로 마침내 논문이 완성됐다.
노무현 정부가 막 들어서던 참이었다. 지방자치단체 기자실 존폐 논쟁이 취재 및 보도 시스템에 어떤 변화와 대안을 요구하고 있는지, 실증적으로 고찰하기 위해 연구를 진행한 결과는 의외였다.
연구를 위해 전북도청을 비롯한 전북도교육청, 전북지방경찰청, 전주시 등 전북지역 전 시군 출입기자들과 해당 기관의 공무원직장협의회 및 공보실 소속 직원, 일반 공무원들을 선정해 설문조사와 심층 인터뷰를 병행 실시했다.
공무원 92.3% "기자실에 대해 평소 불편한 감정"
조사결과, 언론인들의 69.2%가 여전히 보도자료에 의존하고 있었고, 언론인 응답자 중 75.0%는 거의 매일 기자실을 들르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전북지역 언론사 기자들의 기자실 및 보도자료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또 공무원들 가운데 92.3%는 기자실에 대해 평소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다고 응답했으며 67.3%는 기자실이 불필요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출입처 기자실 운영제도 개선에 대해 공무원들 가운데 절반 가량인 51.7%가 브리핑 룸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37.1%는 폐지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무원들은 기자실 폐지에 대한 주된 이유를 ‘출입기자들의 권위주의와 고자세 때문’이라고 76.7%가 응답했으며, 기자실 운영비를 신문 또는 방송사가 부담해야 한다고 대부분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당시 논문에서 필자는 지역언론들이 급변하는 취재 환경에 대응하고 출입처 중심에서 기능 중심 또는 팀제 배치 등 다각적인 취재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했다.
또한 지역 주재기자들에게 무리한 광고와 독자 확보를 요구해서도 안 될 것이며 출입처에서 취재 원칙을 지킬 수 있도록 각 지역언론사들은 특단의 관심과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기자들도 고도의 전문성과 윤리성, 자기 부과적 책임성이 어느 때 보다 요구되는 시점인 만큼 자기 계발과 성찰을 통해 부가가치가 높은 뉴스와 정보를 주민들에게 알리도록 현장 중심의 취재 활동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아울러 공무원직장협의회 등 자치단체 공무원들도 기자실 폐지 문제를 감정적 상황대처에서 벗어나 기자단 및 출입처와의 관계를 합리적이고 건전한 방향으로 재정립 시켜 나갈 필요성있다는 점도 강조했었다.
그런데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얼마나 바뀌었을까? 필자가 당시의 상황을 되돌아보면 지금과 별반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아쉽게도 서울뿐만 아니라 지역에서도 각 관공서 및 기업체들의 출입 기자단은 더욱 공고한 카르텔을 형성하며 습속이 관행처럼 굳어진 상태라고 봐도 과언은 아닐 듯하다. 이 때문에 지금도 일부 지자체 출입 기자단의 폐쇄성과 배타성에서 기인한 비위 행태들은 주민들과 공무원들을 가끔 불편하게 한다.
기자실 출입 소송 판결이 갖는 의미 매우 커
돌이켜보면 2001년 3월 29일 인천국제공항 중앙기자실에서 촉발한 출입 기자단 문제는 법정으로 비화돼 당시에도 '기자단과 공항 측이 출입 기자실 출입이나 취재를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결정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출입 기자단의 카르텔은 깨지지 않고 오히려 굳건해졌다.
여기에는 출입 기자단과 출입처의 담합, 기자단 외에 협회 및 모임 형태 등의 조직들도 출입 기자단의 힘을 실어주는 데 크게 한몫했다. 이 때문에 여전히 정부 부처와 주요 공공시설물의 기자실은 기자단 일원이 아니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없다.
이번 미디어오늘 판결에서 법원은 “기자실은 기자들이 그 행정재산에 관한 배타적 점유 사용권을 주려는 것이 아님은 명백하다”며 “기자실 사용허가 및 출입증 발급허가는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의 청사관리관인 피고의 업무여서 출입기자단의 판단에 이를 맡길 수는 없고, 피고 스스로 재량권을 행사하여 결정하여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국유재산 관리청(서울고법) 스스로의 결정이 아닌 제3자(기지단)에게 미루는 것은 법치행정의 원칙상 허용될 수 없다” 며 구체적이고 명확한 근거를 제시했다. 그런데 그동안 왜 이러한 병폐가 지속돼왔을까?
이번 판결문을 뜯어보면 의미는 명확하다. 관공서 기자실은 공물에 해당하고 청사 내 질서유지 등 근거를 따져 출입을 원하는 매체의 출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존 기자단 투표를 통과한 매체만이 기자실 출입증 발급과 출입이 이뤄지고 보도자료와 판결문 입수, 법원 취재 편의를 받으면서 사실상 기자단 밖 매체의 취재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가 굳어져 왔는데 이에 대해 철퇴를 내린 것이다.
기자실 출입 여부 판단 주체가 해당 기관에 있기 때문에 출입 기자단의 가입 투표 절차나 승인(허락)의 절차가 필요없게 됐다. 기자실 출입 요건이 강화될 순 있어도 지금처럼 출입 권한을 일방적으로 기자단에 위임하고 기자단이 행사하는 관행이 더 이상 통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도 각 지역에서는 관공서의 오랜 병폐로 지목돼 왔던 출입 기자단과 출입처의 유착, 정보의 카르텔이 여전히 상존하고 있다. 주민들의 알 권리 해소를 위한 언론의 취재 방해도 이 때문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사라지지 않는 '출입처-기자단 카르텔' 왜?
전북지역에서도 출입처와 기자단의 카르텔은 오래된 관행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 2011년 익산시청에서는 출입 기자단에 포함되지 않은 기자들이 기자실 문에 아예 대못을 박아버리기도 했다. 시청의 공보 지원을 출입 기자단만 누리는 상황이 누적되자 일부 언론사 기자들이 기자실 문에 못을 박고 출입을 막는 사건이 발생했다.
또 지난해 3월에는 김제시가 코로나19 상황을 브리핑하는 자리에 기자단의 특정 언론사들만 출입을 허용하고 인터넷 언론사 등의 출입 및 취재를 제한해 따가운 비난을 받은 적도 있다. 인근 지역도 마찬가지다. 2013년 충남도청 신청사 기자실에서는 기자실 출입을 막는 기자와 취재하려는 기자 간 몸싸움이 벌어져 경찰이 출동한 일도 벌어졌다.
전주시 신년 기자회견장 취재 제한, 논란 자초

이처럼 주민 혈세로 운영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공간을 점유하며 정보를 독점하는 행위는 언론의 취재 제한은 물론 주민의 알 권리 침해와 관언 유착의 고리라는 비판을 줄곧 받아왔다.
전주시청에서는 올들어 새해 벽두부터 새해 시정 방향과 비전을 언론을 통해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한 신년 기자회견장에 특정 언론사들로 구성된 출입기자단 소속 기자들만 허용하고 그렇지 못한 기자들의 취재를 제한했다. 이 때문에 명백히 언론의 자유를 제한한 행위라는 비난이 일었다.
[해당 기사]
일부 언론인들은 "기자단 소속이 아닌 언론사와 일부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은 회견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되돌려야 했다”며 “전주시가 신년 기자회견장에 일부 언론의 출입 막아 품격을 떨어뜨렸다”고 일제히 비판했다.
"기자실 출입 결정 권한 행사하면서 지자체 광고 배분 창구로 전락"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미디어오늘의 이번 판결을 계기로 기자단이 언론 활동을 방해해선 안 된다는 기본 원칙이 확인 된 것”이라며 “앞으로 어떻게 기자단이 취재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인가 하는 논의가 이뤄지는지 전북에서도 살펴볼 일”이라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미디어오늘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방자치단체 출입 기자단의 관행도 이번 기회를 통해 바로잡아야 한다”며 “지역 기자단은 기자실 출입 결정 권한을 행사하면서 지자체 광고 배분 창구로 전락한 지 오래다”고 지적해 각 지자체 기자단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달라지고 있다.
이제라도 출입 기자단을 내세워 지자체를 압박해 자기들끼리 광고 수익을 나눠갖거나, 기자단 가입이 마치 광고와 협찬 등을 수주하기 관문으로 통하는 관행은 사라져야 한다. 정부 부처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들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출입 기자단 운용 원칙을 다시 세우고 잘못된 관행을 타파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나가야만 한다. 지역언론이 건강해지는 길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