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팬데믹 시대 학교 교육·대학 입시, 어떻게(2)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그 중에서도 대학 입학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했고, 실제 많은 과제를 던져 주었다. 특히 조국 사태에서 가장 큰 논란의 중심에 선 대학 입시의 공정성 문제는 팬데믹 시대, 비대면 입시 평가에서도 중요한 화두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 대학들마다 입시의 공정성을 추구한다며 외부에 공정성을 내세우며 자랑하고 있지만 실상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곳이 많다. 국고 지원 사업비를 받기 위한 꼼수 전략, 또는 불공정 덩어리로 가득 차 있는 사례들이 자주 목격돼 왔다.
그 이유는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국립·사립 등 태생부터 대학마다 성격과 특성이 다르다. 또 추구하는 교육 목표, 인재상, 지향하는 교육 가치와 이념 또한 다르다. 이 때문에 입시의 공정성이 경쟁 대학들과 같다고 강조하며 최고의 전형 평가 가치로 내세우고 있지만 내면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그 무게와 색깔이 제각각이다.
고교생이 ‘논문 스펙'으로 대학 진학?...지금은 통하지 않아
특히 조국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대학들의 입시 공정성이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진 배경에는 공정 대신 불공정의 민낯을 지닌 속성이 강하다는 반증이다.
2019년 8월, 당시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딸 조민 씨의 대학 진학 과정에서 불거진 여러 학교 밖 스펙에 대한 의혹 제기와 관련해 “당시 존재했던 법과 제도를 따랐다 하더라도 그 제도에 접근할 수 없었던 많은 국민과 청년들에게 상처를 줬다”며 사과했다.

딸의 진학에 활용된 인턴십 등의 다양한 학교 외 활동이 자신의 딸이 아닌 일반 학생이라도 가능했겠냐는 비판이 잇따르자 이에 대해 사과한 것이지만 불공정성을 염두에 두었음이 읽힌다.
권력형 프레임에서 촉발된 조국 사태가 결국은 대입 공정성의 논란으로 마무리되는 양태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조국 사태로 공정성이 핵심인 대입 제도에 적잖은 타격을 입힌 것은 사실이다. 재력과 정보력을 갖춘 기득권층의 편법을 가능하게 한 창구로 수시 전형, 특히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이 지목되면서 일각에서는 수시와 학종의 무용론까지 제기했을 정도다.
그러나 당시의 대입 제도와 지금의 대입 제도는 분리해서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국 전 장관의 자녀가 대학에 진학하던 당시와 현재의 입시제도 사이에 약 10년의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국 사태 이후 대입 전형의 공정성과 관련해 논란이 되는 요소 가운데 현재의 대입 제도 하에서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팬데믹 상황에서 달라지고 있는 대입 환경이 공정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 밖 활동' 허위 기재 내용들, 평가자들 검증·확인 왜 못했나?
먼저 조민 씨의 '7대 스펙' 논란은 여전히 학교 현장에선 진행 중이다. 고교 재학 중 수행한 다양한 학교 외부의 활동과 집중적으로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조 씨는 2010학년도 대입 당시 고려대의 수시 입학사정관제전형(현 학생부종합전형) 중 하나인 '세계선도인재전형'에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전형은 학생이 개인적으로 수행한 학교 밖의 활동 및 성과까지도 모두 평가 대상으로 삼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고교 재학 당시 단국대 의과학연구소에서 2주간 인턴 활동을 한 후 작성한 논문에 이름을 올리고, 해당 논문이 대한병리학회에 등재된 점, 공주대 생명과학연구소에서의 인턴십 이후 일본 국제조류학회에 참석해 논문을 발표한 점, 한국물리학회 여성위원회가 숙명여대에서 개최한 여고생 물리캠프에 참석해 장려상을 수상한 점 등이 조 씨가 대학 진학 과정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특별한 ‘스펙’으로 꼽힌다.
조 씨가 고교생 신분으로 달성한 성과가 실제 당락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당시 평가에 참여했던 해당 대학 입학사정관들이 가장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대입 전형들과 달리 입학사정관제전형의 가장 큰 특징은 정량보다 정성평가를 통해 학생들을 선발하기 때문이다.
정성평가 전형에서 '스펙' 확인은 중요 과정
따라서 외부 스펙 증명과 이를 표기한 자기소개서를 평가에 얼마나 반영했는지, 실제로 활동 내역(증명서류 등)은 확인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다. 다만, 당시 많은 지원자들의 외부 활동 내역들에 대한 증명서류 심사와 기록된 내용들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과정을 입학사정관들이 꼼꼼히 체크했는지는 중요한 문제이다.
당시 조 씨가 고려대에 제출한 서류들이 허위로 기재되었거나 모집요강에 위배되는 내용들이 포함됐다면 본인의 잘못이 일차적으로 크지만 대학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부풀려진 기록 내용이나 허위 증명서류를 2명 또는 3명의 평가자들이 확인하지 못했거나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래서 평가에 긍정적으로 반영됐다면 이는 공정성과 타당성에 결함이 있음을 의미한다.
각 대학들이 지향하는 전형의 평가 요소와 평가 방법은 다르지만 공정성이 얼마나 투명하게 반영되고 평가 요소의 타당성과 평가 방법에서의 전문성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바로 결과를 통해 알 수 있다. 따라서 제출된 입시 서류 등이 허위 또는 조작된 것이라면 이를 확인하지 못한 평가자 또는 대학에도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입학사정관제 초기인 당시에는 학교 밖에서 활동한 스펙 내용과 증명서류 외에도 자기소개서에 활동 내역을 표기했었다. 지금은 거의 모든 대학들이 외부 활동 내역과 심지어 자기소개서도 받지 않지만 시행 초기엔 제출했다. 그래서 대학들은 제출 서류에 대한 사실 여부 확인을 본 평가에 앞서 실시했던 게 보편적인 평가 업무로 취급됐었다.
더욱이 입학사장관제 실시 초기엔 영재학교나 과학고, 또는 외고‧국제고에서 내신이 안 좋지만 특정 영역에서 역량이 탁월한 학생들은 상당수가 입학사정관제전형을 통해 대학에 진학했던 때다. 그만큼 외부 활동 내역을 중요시한 대학들은 서류 확인 또한 규명 시스템 구축에 많은 노력과 투자를 했다.
그런데도 이를 확인하지 못하고 규명하지 못했다면 평가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음을 인정한 결과로 볼 수 있다. 학교 내 활동 중심으로 학생부종합전형을 평가하고 있는 지금과 다르지만 당시에는 사교육 개입 요소가 많은 전형들이 있었다. 이 때문에 단계적 폐지가 권고됐을 정도다.
입학사정관전형 이어 받은 학종...학교 외 스펙·자기소개서 대부분 안 받아
그렇다면 줄곧 공정성 논란이 따라 붙은 지금의 학종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일단 현재의 학종에서는 학교 밖 스펙을 전혀 활용할 수 없다. 학종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만을 평가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현재 학교생활기록부에는 학교 테두리 밖에서 수행한 일에 대해서는 전혀 기재할 수 없다. 학교 외 대회 수상 실적은 물론 논문 등재나 도서 출간, 발명 특허 관련 내용, 해외 활동 실적 등 교외에서 행해진 활동은 일절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할 수 없다. 또한 이렇게 학생부에 기재할 수 없는 주요 항목은 자기소개서에도 기재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이만기 유웨이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010년을 전후하여 대학 입시 시장에서 소위 ‘스펙 쌓기’ 열풍이 일었다"며 "그러나 교육당국은 각 고교에 내려가는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요령’, ‘자기소개서 및 추천서 공통 양식’의 지침을 차츰 변경하거나 ‘입학사정관제 운영기준’을 새로 마련하고 입학사정관제 지원 사업 예산을 차등 지원하는 방식으로 사교육을 억제하고 스펙 열풍을 잠재우려고 노력해 왔다”고 말했다.
즉, 과도한 스펙 경쟁을 규제하는 다양한 가이드라인의 도입으로 지금의 학종은 학교 교육과정을 충실히 이수하는 과정에서 학습‧체험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평가하는 기조가 안정적으로 정착됐다는 평가다. 그래서 지원사업 명칭도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으로 개편됐다.
코로나 시대, 비대면 교육 현장에서 공정하고 정확한 학교생활기록부 작성 가능할까?
하지만 코로나 사태를 맞아 비대면 교육이 오랫동안 이뤄지면서 대입 평가의 근간인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이 형식적으로 작성돼 공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입 평가의 중요한 잣대가 자칫 공정하지 못할 위험이 크다는 볼멘 소리가 일선 학교에서 새나오고 있다.
전주시내 고교의 한 진학담당 교사는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서 서로 대면 활동을 하고 교사와 학생들 간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그 속에서 성장 과정과 역량 등을 찾아 기록할텐데 학생들을 자주 보지 못하는 비대면 환경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작성이 더욱 힘들다"고 애로를 호소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공정성, 타당성, 전문성 확보는 대학이 더욱 더 비상이다. 문제는 이런 와중에 각 대학들이 고교 활동 내역들에 대한 서류 평가에 있어서 공정성 외에 타당성과 전문성을 얼마나 빠짐 없이 반영하느냐가 관건이다. 학생들과 자주 면담할 수 없고, 대면 활동이 줄어든 상황에서 작성된 학교생활기록부를 얼마나 신뢰해야 할지 고민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교육이 장기화되면서 대입 평가의 대원칙인 공정성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입학사정관들은 평소 공정성과 전문성 등을 확보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입해 모의 평가와 연구, 실제와 같은 면접 등을 실시하지만 학교생활기록부의 허술한 작성으로 학교마다 차이가 발생한다면 공정성 확보에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계속)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