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부활시대(13)] 국가와 지역의 역할 분담
세계적 전염병만이 아니라 자연재해도 국민 각자 사는 지역에 따라 체감온도가 다르다. 2020년 여름의 기록적 홍수는 특히 섬진강 유역의 국민에게 많은 피해를 주었다.
물난리로 삶의 터전을 잃은 화개장터 상인과 주민들에게는 수해방지 대책이 무엇보다도 절실하지만, 큰 수해를 겪지 않은 서울 시민들에게는 한강 변 도로 통행 가능 여부가 더 큰 관심사였다.
사실 재난구조와 구호는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자치 단체가 주도적으로 수행해야 한다. 대부분 재난은 특정 지역에서 발생하고, 지역적 특성이 재난구호에 매우 큰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장 효과적인 재난구조 기구는 해당 지역의 자치 단체 이다. 그 지역의 지리나 상황을 가장 잘 알고, 구호에 필요한 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재난구호 사례가 그것을 입증한다. 2001년 9월 발생한 뉴욕 테러 사건은, 3000여 명의 생명을 일시에 앗아간 대형 재난이었지만, 뉴욕시 정부가 혼란을 최소화하며 잘 수습했다. 연방정부 차원에서 무기력하게 대응한 부시 대통령 보다, 사고 현장 구조와 수습을 맡은 뉴욕시장이 더 대통령답다는 인상을 미국인들에게 남겼다.
반면 1,833명의 생명을 앗아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에 대한 미국 정부의 대응은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강력한 태풍으로 인해 지방정부마저 재난구호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연방정부가 재난구호를 맡았기 때문이다. 현지 실정을 모르는 연방 공무원들이 와서 재난구호를 주도하다 보니 손발이 맞지 않고, 많은 시행착오를 일으켰다.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재난구조 시스템 만들어야

한 나라 안에 함께 사는 공동운명체로서, 국가적 과제에 대해선 국민 모두가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지만, 지역에 따라 우선 해결해야 할 사안이 다르다는 점은 그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2016년 북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배치한 사드 미사일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된 전 국민의 관심사였다.
그러나 같은 국민이지만 사는 지역에 따라 입장이 크게 달랐다. 사드 미사일이 배치된 경북 성주와 김천 지역주민들에게는 그 어느 문제보다도 중요한 지역 현안이었지만, 서울이나 수도권 거주 국민에게는 자신들과는 직접적 연관성이 적은 외교 국방 현안이었다.
범죄예방과 치안도 국가가 담당하는 역할이지만 이 역시 지역 간 차이가 확연하다. 예를 들면, 국내 체류 외국인 증가와 그로 인한 범죄 증가에 대한 우려는 전국적인 현상이지만, 이 역시 지역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다르다. 코라나 바이러스 이전 제주도는 급증하는 중국인 관광객으로 인한 범죄증가, 물가 상승, 자연파괴 등으로 지역주민의 삶의 질은 물론이고 지역 정체성 마저도 심각한 위기에 당면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다른 지방자치 단체들은 중국 관광객을 적극 유치하기 위해 많은 예산과 인력을 투자했다. 국가적으로 당면한 위기는 그것이 자연재해이던, 국토방위 문제이던, 치안 문제이던 지역사회에 따라 그 정도나 영향이 다르기 마련이고, 그래서 해결방식도 지역사회마다 달라진다.
물론 중앙정부의 역할이 중요하긴 하지만, 결국 지역의 문제는 지역에서 해결해야 한다. 내 집의 문제를 옆집 사람이 해결해주지 못하듯, 내 지역의 문제도 그 지역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울사람들이 제주의 치안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고, 경주의 지진피해 복구를 부산사람들이 주도할 수 없다. 재난 현장의 상황을 신속히 파악하고 효율적인 구조활동을 벌일 수 있는 정부조직 구조는 중앙정부보다는 지방정부가 주도하는 재난구조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에는 지역사회가 당면한 위기를 극복할만한 지역별 대응 체제가 제대로 갖추어지지 못했다. 우선 지역주민들에게 신속하고 소상하게 지역사회에서 발생한 자연재해나 흉악범죄를 알려주는 효율적인 경보체제나 언론체제가 없다. 2020년 코로나 바이러스 대응책으로 자치 단체별로 재난경보 문자전송 시스템을 가동했지만, 보다 상세하고 신속한 지역 정보를 얻기는 어려웠다.
지역 문제들, 중앙에서 해결해주길 기대...이런 민심을 정치인들은 이용

국무총리나 질병관리본부장은 연일 TV 뉴스 화면에 나오지만, 내 지역의 방역을 책임지는 시장이나 보건소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2020년 여름 역대급 장마와 홍수를 겪으면서 대다수 국민은 서울 한강 잠수교가 물에 잠겼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정작 자기가 살고 있는 곳엔 어디가 수해 위험이 있는지, 실제 수해를 입었는지는 알기가 힘들었다.
디지털 첨단시대에 살지만 재난 관련 뉴스는 등잔 밑이 어두운 봉건시대와 다름없었다. 그러다 보니 위기가 닥치면 근거 없는 소문과 유언비어가 지역사회에 난무해 주민 불안을 가중시키고, 신속하고 효율적인 대응을 어렵게 만든다.
공동체의 위기 극복에 필수적인 소통과 여론 수렴 과정도 부재하여, 위기가 발생하면 문제해결 방식을 두고 지역주민들 간의 오해와 갈등이 증폭된다. 대부분 지역 위기 상황들은 해결되기보다는 미봉된 채 넘어가고,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는 지역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그 기반이 더 취약해진다.
지역의 위기를 지역 스스로 해결할 역량이나 경험이 없다 보니,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지역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타 지역 즉, 중앙을 바라보고 중앙에서 해결해주길 기대한다. 이런 지역 민심을 정치인들은 이용한다.
자기 지역 문제도 제대로 해결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중앙 정치 무대에 나가서 지역의 문제는 물론이고 국가적 문제도 해결하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러나 그들의 약속과 반대로 지역사회는 더욱 부실해지고, 지역 간의 갈등을 더욱
증폭되고, 국가적 위기 대처 능력은 더욱 약화된다.
진정한 민주국가는 건강한 지역사회의 집합체이다. 국민이 국가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만큼 지역에 대한 관심과 자부심을 가질 때 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국가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장호순 교수의 저서 <지방부활시대>에서 필자의 동의를 얻어 발췌해 연재한 글입니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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