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1.
끝내 빈 손 들고 돌아온 가을아,
종이기러기 한 마리 안 날아오는 비인 가을아,
내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나는 또 그대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몰라.
2.
새로 국화잎새 따다 수놓아
새로 창호지문 바르고 나면
방안 구석구석까지 밀려들어오는 저승의 햇살.
그것은 가난한 사람들만의 겨울양식.
3.
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
다짐하고 내려오는 등성이에서
돌아보니 타닥타닥 영그는 가을꽃씨 몇 옴큼,
바람 속에 흩어지는 산 너머 기적 소리.
4.
가을은 가고
남은 건
바바리코우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
때묻은 와이셔츠 깃.
가을은 가고
남은 건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내 휘파람 소리.
첫눈 내리는 날에
켜질
그대 창문의 등불빛
한 초롱.
나태주, 「가을 서한 1」

왜 가을이 되면 우리는 추억의 뒷골목을 헤매는 것일까?
가을이 되면 저는 다음 노래를 무심코 흥얼거립니다. 아니 모든 방송의 음악 프로에서 꼭 이 노래를 틀어주곤 합니다. 가을이 당도하기도 전에 기미만 약간 보여도 들을 수 있는 노래.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서요.” 여기서 ‘편지’는 그리움의 메신저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유독 가을에는 이리저리 휘날리는 낙엽 따라 그리움이 나뒹구는 것인가요. 지나온 세월을 반추하고 회억 속으로 침잠하는 것인가요. 풍덩 빠져들어 헤엄치고 싶던 못물이 청량하고 차갑게 느껴질 때, 하얗게 휘청휘청 바람 타는 강변의 억새들을 배경으로 석양이 뉘엿뉘엿 아쉬움으로 물들 때, 서리 내린 들녘에는 남방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철새들이 분주할 때, 왜, 그립고, 쓸쓸하고, 외롭고, 허전한 것인가요.
왜 가을이 되면 우리는 추억의 뒷골목을 헤매는 것인가요. 특히 지나온 청춘의 이루지 못한 옛사랑을 뒤적거리게 되는 것일까요. 아마도 인간은 시간 혹은 세월의 이끼가 끼게 되면 낡고 닳아지고 헤져서 맑고 투명한 존재성이 훼손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요. 특히 가을에는 내성작용이 활발한 계절이지요. 그 어느 누구나 현재의 자아를 성찰해보면 과거의 자기 존재와 비교하여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더라도 낡고 추레함을 느낄 것입니다. 이 때 자기보상심리가 작용하여 지금보다 훨씬 맑고 투명했던 과거의 자아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리고 오로지 순수하게 그리고 매급시 ‘그대’만을 사랑했던 과거의 자아를 그리워하는 것이겠지요.
그렇습니다. 이 작품의 시인/화자 역시 과거 사랑의 추억을 회상하고 있군요. 폐부를 관통하는 가을바람 속에서 화자는 여전히 ‘빈/비인’ 상태의 가을을 마중합니다. 그러나 가진 것 없어 자유롭고 넉넉한 화자는 ‘마음까지 모두 주어버리고 난 지금’, 또다시 그대에게 무엇을 줄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사랑이란 주어도 주어도 허기진 그 무엇이 남는 불가사의한 것
그래요. 사랑을 해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사랑이란 주어도 주어도 허기진 그 무엇이 남는 불가사의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세상에는 사랑에 인색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사랑에 인색한 사람보다 더욱 불행한 사람은 있는 사랑 없는 사랑을 깡그리 주고 싶어도 사랑의 대상 자체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여하튼 ‘그대’를 그리워하며 맞는 가을에 화자는 소박하게나마 겨울을 지낼 채비를 합니다. 국화잎을 따다 창호를 새로 바르며, ‘그’는 가난한 사랑노래를 조용히 허밍으로 부르네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의 애절한 사랑의 진심이 ‘그대’에게 배달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하여 화자는 다짐합니다. “다시는 더 생각하지 않겠다.”라고요.
그리고 실연의 아픈 상처를 추스르며 내려오는 길목에서 ‘그’는 만납니다. 저 스스로 익어가는 자연의 이름 모를 ‘가을꽃씨 몇 옴큼’을 말이지요. 이 꽃씨는 아마도 화자의 사랑하는 마음을 저장했다가 돌아오는 새봄에 환한 사랑의 꽃을 다시 싹 틔울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람결에 아련하게 흩어지는 희미한 기적소리는 화자의 사랑하는 마음을 멀리멀리 퍼트리는 소리임을 믿습니다.
그 사랑의 부활을 예비하는 거름과 쏘시개는 다름 아닌 가을이 간 뒤에 남는 ‘바바리코우트 자락에 날리는 바람과 때 묻은 와이셔츠 깃’입니다. 예컨대 사랑의 완성을 위해 지불해야만 했던 방황과 절망의 ‘바람’, 열정과 몰두의 흔적인 ‘때’는 허무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씨앗’으로 응결될 것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둥글게 둥글게 설레던 ‘그대 만나러 가는 골목길에서의 휘파람 소리’는 ‘기적소리’로 변하여 바람타고 산 너머 그대 창을 노크할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그리운 소식으로 첫눈 내리는 날쯤엔 그대 창에 바알간 등불 하나 피어오르지 않을 런지요.
내린 가을 길을 침통하게 걷는 실연당한 자들이여. 믿습니까? 사랑은 기어코 돌아오는 것임을. 믿으시기를. /<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양병호(전북대 국문과 교수 ,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