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양병호(시인, 전북대 국문과 교수)

나는 새장을 하나 샀다.

그것은 가죽으로 만든 것이다.

날뛰는 내 발을 집어넣기 위해 만든 작은 감옥이었던 것

처음 그것은 발에 너무 컸다.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녀야 했으니

감옥은 작아져야 한다.

새가 날 때 구두를 감추듯.

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본다.

그러나 그들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는다.

새장에는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이 있다.

그것이 새장을 아름답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새 구두를 샀다.

그것은 구름 위에 올려져 있다.

내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의 한켠에서

나는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내 발을 위로하는 것이다.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것이다.

송찬호, 「구두」


시대별로 유행하는 유머 시리즈가 있습니다. 이 유머들은 시대상을 반영하여 풍자합니다. 70년대에는 참새 시리즈, 80년대에는 최불암 시리즈, 90년대에는 냉장고 시리즈가 유행했지요. 냉장고 시리즈는 아직도 자가 복제 중입니다. 아니 지금은 퀘퀘묵은 유머의 고전이 되었지요.

하여튼 냉장고 시리즈 원본은 다음과 같지요. 냉장고에 코끼리를 집어넣는 방법은? 우선 냉장고 문을 연다. 다음 코끼리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냉장고 문을 닫는다. 이 유머의 핵심은, 문두가 상식적으로 유도하는 발상을 해답에서 어처구니없게 전복하는데 있습니다. 이 유머 시리즈가 소통되던 시대에 우격다짐의 부조리가 판치는 사회를 풍자한 일종의 넌센스 유머이지요. 나아가 이 유머는 변형 증식합니다. 예컨대 전두환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식은? 이회창이, 김대중이, 노태우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방식은? 을 통해 당대 정치 현실을 날카롭게 풍자하고 야유하는 거지요.

전공과목 대입한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식’에 관한 유머, 놀랍고 기발

말 나온 김에 대학 전공을 대입하여 변형한 ‘냉장고에 코끼리를 넣는 방식’에 관한 유머를 소개합니다. 냉장고를 적분하여 늘린 다음, 코끼리를 미분하여 넣는다(수학과). 코끼리에게 냉장고를 먹인 뒤 코끼리의 입을 뒤집는다(위상수학과).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시킨다(연극영화과). 닭을 고문하여 코끼리라는 자백을 받고 넣는다(경찰행정학과). 시험관 코끼리를 배양하여 넣는다(분자생물학과). 얼음에 갇힌 맘모스 화석을 채취하여 얼음 구조물 자체가 고대문명의 냉장고란 설을 발표한다(고고학과). 코끼리를 햄으로 가공하여 넣는다(식품공학과). 고무로 냉장고를 만든다(재료공학과). 타잔의 고함소리가 나는 스피커를 냉장고 내부에 부착한다(동물행동분석학과). 냉장고 밖에 있는 코끼리를 정이라고 하고 빈 냉장고를 반

이라고 한 뒤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해 합으로 지양한다(서양철학과). 냉장고 안에 내가 들어간 뒤 냉장고 밖이 냉장고 안이고, 냉장고 밖이 냉장고 안이라고 생각한다(동양철학과). 블랙홀에 냉장고를 넣고 코끼리를 넣는다(천문학과). 알코올을 다량 섭취해 코끼리가 닭으로 보이면 그 때 넣는다(화학과).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이라는 책을 보고 넣는다(문학정보학과). 아이에게 강아지를 코끼리라고 가르친 뒤 넣게 만든다(유아교육과). 코끼리의 집을 냉장고라고 부르는 법을 제정한다(법학과). 사람들을 최면상태에 빠뜨려 코끼리가 냉장고에 들어갔다고 믿게 한다(심리학과). 대학생들의 시대와 현실에 반응하는 풍자정신이 놀랍고 기발합니다.

물론 이러한 상식을 뒤집는 유머는 상상력에 충격을 주고, 세상의 불합리와 부조리를 통렬하게 풍자하는 재미를 주지요. 그런데 이 유머가 이 작품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요? 이 작품의 시적 대상은 ‘구두’입니다. 구두는 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하여 신고 다니는 신발의 종류이지요. 그러나 이 시에서 구두는 그런 일상의 용도와 기능이 아닌 인생관, 가치관, 사유의 틀, 상상력 등으로 의미가 변주되어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새것을 만나면 적응기간이 필요

화자는 ‘날뛰는 발’을 집어넣기 위해 ‘구두’를 삽니다. 그것은 ‘새장’ 혹은 ‘감옥’입니다. 왜냐하면 발이 구두에 갇히는 것은 사유나 생활방식이 체계화 혹은 도식화되는 것으로 비유하여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화자는 처음에는 발과 구두가 맞지 않아 한동안 ‘덜그럭거리는 감옥’을 끌고 다닙니다. 무엇이든지 새것을 만나면 적응기간이 필요하듯이 말입니다.

이제 어느 정도 새로운 ‘구두/가치관’이 익숙해지면, ‘구두/새장에 모자나 구름을 집어넣어’ 봅니다. 그러나 그 구두/새장은 ‘언덕을 잊고 보리 이랑을 세지 않으며 날지 않’습니다. 그래요. 우리는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새로운 가치나 질서에 대해 처음에는 어색하고 불편해 합니다. 그러다 그것이 자기의 삶을 밀고 가는 익숙한 가치체계로 자리 잡으면 쉽게 안주하지요. 나이가 들면서 기성의 체계에 익숙해져서 새로운 체계를 받아들여 개신하기보다 안주하는 보수적 태도를 갖기 쉽지요. 오로지 ‘조그만 먹이통과 구멍’에 의지하여 바깥 세계와 소극적으로 소통할 뿐이죠. 새로운 것에 겁먹고 불안해하며 기성의 것만을 스스로 만족해하는 딱딱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죠.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정신의 탄력을 잃고 고집스러운 노인이 되는 것이죠.

‘어떻게 인생을 사느냐’에 대한 해답이 불현 듯 떠오를 수도

그러나 이 시의 화자는 헌 구두를 버리고 오늘도 새로운 구두를 삽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름 위에 올립니다. 그래서 그 ‘구두는 아직 물에 젖지 않은 한 척의 배’가 됩니다. 그리고 물에 젖지 않아 가볍고 자유로운 그 구두에 ‘한때는 속박이었고 또 한때는 제멋대로였던 삶’을 태웁니다. 그 다음 신천지를 찾아 어디로 가도 길이 되는 바다의 뱃길을 따라 항해를 떠나는 것이죠. 세상은 쉽게 낡고 헤지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면 인식과 사유의 낡고 헤진 구두를 미련 없이 버리고, 구름 혹은 배와 같은 새 구두를 장만해야 합니다. ‘가끔씩 늙고 고집 센 발을 위로하’기 위하여. 그래요. 나이가 들수록, 생각과 육체가 딱딱하게 낡아갈수록 “오래 쓰다 버린 낡은 목욕통 같은 구두를 벗고/ 새의 육체 속에 발을 집어넣어 보는” 일을 일부러라도 자주 하며 살아야지요.

결코 새로 산 구두에 발을 깎아 맞춰 신지는 마시기를. 그리고 코끼리를 냉장고에 집어넣는 방식을 화두로 삼아 인생이나 삶에 대해 오래토록 생각해보세요. 잘 하면 ‘어떻게 인생을 사느냐’ 또는 ‘어떻게 사랑을 하며 강퍅한 이 세상을 건너갈 수 있느냐’에 대한 해답이 불현 듯 떠오를 지도 모르잖아요.

/<사람과 언론> 제5호(2019 여름). 

/양병호(전북대 국문과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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