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노동브리프-칼럼

<전북의소리>는 노동계의 제반을 조사·연구하며 지역 노동문제를 시의성 있게 발굴하고 의제화하는 계간 <전북노동브리프>와 제휴해 지역 노동계 이슈에 대한 현실 진단과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하기 위해 다양한 글을 고정 게재한다. /편집자 주


연이은 하청 노동자 사망사고, 누구 책임인가?

이양순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이양순 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충남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지고, 심지어 일주일 뒤 같은 발전소에서 또 다른 하청 노동자가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SPC 계열 공장에서는 50대 노동자가 컨베이어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는 2018년 비정규직 청년 김용균씨 사망 이후 6년 만에 다시 일어난 참사다. SPC그룹에서도 2022년 평택 제빵공장 사고 이후 3년도 채 안 되어 시화공장에서 비슷한 비극이 되풀이됐다. 위험천만한 작업을 떠맡은 하청 노동자들이 연이어 목숨을 잃었지만, 정작 원청들은 “우리 책임이 아니다”라는 식이다. 한국 산업현장의 산재 사망은 대부분 이렇게 하청노동자들에게 집중된다.

지난 1월 14일, 금속노조가 취합한 자료에 따르면, 2024년 1월부터 12월까지 한 해 동안 조선소에서 산재 사망사고 20건이 발생해 노동자 24명이 목숨을 잃었고, 이 중 최소 19명은 하청 노동자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창원대 권순식 교수의 연구(2023)에서도 간접고용 노동자 비중이 높은 사업장일수록 산업재해를 더 많이 겪는다는 결과가 나왔고, 해외의 연구에서도 “불안정 고용의 일부 차원, 특히, 동일 작업장의 파견·하청 근로자 일수록 재해율이 높다”라는 사실을 확인해 준다.(Koranyi, 2018)

신자유주의, 위험의 외주화가 만든 구조적 위험 그리고 도덕성 몰락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4월 28일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엄격한 시행을 촉구했다.(사진=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민주노총 전북본부는 4월 28일 오전 11시 고용노동부 전주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산재 노동자의 권리 보장과 중대재해처벌법의 엄격한 시행을 촉구했다.(사진=민주노총 전북본부 제공)

“위험한 일은 남에게 시키자”라는 관행은 신자유주의 시대에 더욱 공고해졌다. 기업들은 효율과 비용 절감 논리 아래 핵심 업무 외에는 외주화하는 게 당연시됐고,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파견직을 쓰는 것이 경쟁력으로 포장되었다. 그 결과 위험은 원청에서 하청으로 흘러갔고, 산재보험료나 안전관리비 같은 비용과 책임도 따라갔다. 원청은 사고 위험을 떨쳐내니 좋겠지만, 그 부담을 떠안은 하청업체들은 살기 위해 인원·장비·시간을 극한으로 줄여가며 작업자들을 위험 속에 내몰고 있다.

문제는 이런 비극이 거듭돼도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치부하며 사회가 둔감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2018년 김용균 죽음에 전국이 분노했지만, 불과 몇 년 만에 같은 발전소에서 또 사람이 숨졌다. 사람들은 더 이상 “산재 사망 OECD 1위”라는 오명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매년 800명 안팎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있지만, 우리의 경각심은 날로 무뎌지고 있다. 마치 고장 난 신호등을 방치하듯, 우리는 일하다 죽는 일을 어느새 ‘일상사’로 받아들이는 듯하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도덕적 마비 상태에 빠져드는 배경을 두고 심리학자 앨버트 반두라의 ‘도덕성 몰락(moral disengagement)’ 개념을 떠올릴 수 있다(Bandura, 2002). 이는 사람들이 자신이나 조직의 잘못으로 타인이 입는 피해를 애써 외면하고 죄책감 없이 합리화하는 심리 기제다. 위험의 외주화 현실을 보면, 원청과 하청, 정부까지 모두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사고가 나면 원청 경영자는 “현장 노동자의 부주의 때문”이라 하고, 하청은 “우린 지시대로 했을 뿐”이라며 발뺌한다. 실제로 2021년 국회 산재 청문회에서 한 대기업 대표는 연이은 산재 사망의 원인을 “작업자 부주의 탓”으로 돌려 공분을 샀다. 이렇듯 책임이 쪼개지고 분산되니 정작 어느 쪽도 미안함을 느끼지 않는다. 현장에서 안전규칙을 어긴 노동자만 탓하고 마는 분위기에서는 누구도 진정으로 뉘우치거나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또 반복되는 죽음의 충격도 점차 무뎌진다. “사고는 일하다 보면 날 수도 있지” 하는 체념이 퍼지면서, 끔찍한 사망 사고 뉴스도 금세 잊혀진다. 심지어 어떤 원청은 하청 노동자를 “소모품” 취급한다. 사고로 사람이 숨져도 “남의 회사 직원이잖아” 하며 애도의 책임조차 느끼지 않는다. 피해자를 나와 상관없는 존재로 여기고, 사고의 결과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러한 태도 속에서 기업 경영진은 양심의 가책 없이 이윤 논리만 되풀이하게 된다. 결국 “위험의 외주화는 인간의 도덕성까지 외주화” 하는 것이다. 원청 기업이 위험을 떨쳐버릴 때, 그 위험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도 함께 밀어냈다. 이런 구조를 깨지 않고서는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공염불이다.

이제는 문제를 뻔히 알면서도 손 놓고 있는 우리의 윤리적 감수성부터 되살려야 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 즉 타자 중심의 윤리가 사회 전반에 필요하다. 나와 상관없는 하청 노동자의 죽음이라 외면할 것이 아니라, 그가 내 가족이고 친구라는 마음으로 분노하고 행동해야 바뀐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도 결국 평범한 사람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질 때 사회적 악행이 계속된다는 경고 아니던가. 지금의 산재 참사가 바로 그렇다.

해외에서는 어떻게 ‘위험의 외주화’를 끊어가고 있는가?

4월 8일 오후 2시 30분쯤 부안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외벽 도장 작업을 위해 물청소를 하던 60대 근로자가 추락해 숨진 사고 현장.(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4월 8일 오후 2시 30분쯤 부안의 한 아파트 15층에서 외벽 도장 작업을 위해 물청소를 하던 60대 근로자가 추락해 숨진 사고 현장.(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가장 절실한 것은 “위험을 외주화하지 못하게 하는 것”, 다시 말해 기업의 직접 고용으로써 책임을 강화하는 것이다. 위험한 업무일수록 하청이 아니라 원청이 직접 책임지고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실제로 독일은 2021년 육가공 업계의 열악한 현실을 바꾸고자 아예 하청을 법으로 금지했다. 그 결과 이 업종 하청 노동자 2만 3천여 명이 한꺼번에 원청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후 안전사고 은폐가 줄고 산업재해 발생이 감소하는 효과가 나타났다. 위험의 외주화를 차단하니 기업이 더 이상 남 탓할 구실이 없어졌고, 스스로 작업장 안전 개선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건설·청소업 등 위험한 분야에 대해 하도급 계약을 2단계 이상 늘리지 못하도록 제한한다. 다단계 하청 고리를 잘라 책임을 희석하지 못하게 하려는 취지다. 또 영국은 기업과실치사 및 살인법(Corporate Manslaughter and Corporate Homicide Act 2007)을 통해 안전관리 소홀로 사람이 죽으면 기업에 연 매출 5~10%에 달하는 막대한 벌금을 물린다. 호주 퀸즐랜드주는 2017년 산업안전보건법을 개정해 산업현장 과실치사죄(Industrial Manslaughter)를 신설했고, 경영진의 중대한 과실로 노동자가 숨지면 최고 20년의 징역형을 선고한다. 이렇게 기업과 경영자에게 끝까지 책임을 묻는 법은 사고를 그저 ‘운 나쁜 비용’ 정도로 치부하지 못하게 만드는 장치다.

우리나라도 2018년 김용균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개정하고,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해 원청 처벌을 강화했다. 하지만 처벌규정은 뒀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에 하청 노동자들의 죽음은 끊이지 않는다. 이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고위험 업종부터 원청이 반드시 직접 사람을 고용하고 관리하도록 의무화하는 방안을 본격 논의해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를 근본적으로 막지 않으면 법의 취지도 공허해진다. 아울러 공급망 전 단계에 연대 책임을 부과하는 제도도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의 첨병인 미국조차 간접적인 영향력만 입증돼도 원청을 ‘공동 고용주(NLRB Joint Employer Rule 2023)’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강화하려던 노력이 있었다. 원청이 책임을 피해 갈 틈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이다. 한편 노동자·시민의 참여와 감시 역시 중요하다. 캐나다가 매년 4월 28일을 ‘노동자 추모의 날(Workers' Mourning Day)’로 지정해 산재 희생자를 추모하듯, 우리도 올해부터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통해 위험을 알리는 노동자의 목소리가 묻히지 않게 공론화하고, 시민들이 일터 안전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로 활용하여야 한다. 위험 앞에 침묵하지 않고 끝까지 따져 묻는 사회적 감시망이 있어야 기업과 정부도 태도를 바꾼다.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위험의 사슬을 끊어야

5월 31일 오전 8시 15분쯤 김제시 황산면의 적벽돌 제조 공장에서 슬레이트 지붕 철거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6m 높이에서 추락했다.(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5월 31일 오전 8시 15분쯤 김제시 황산면의 적벽돌 제조 공장에서 슬레이트 지붕 철거 작업을 하던 60대 노동자가 6m 높이에서 추락했다.(사진=전북소방본부 제공) 

최근 태안화력과 SPC 공장에서 잇따라 들려온 비극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왜 여전히 노동자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는가. 그 죽음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책임을 느끼고 있는가. 위험을 하청에 떠넘기고도 죄책감조차 없는 조직, 그런 사고를 보고도 금세 잊어버리는 사회라면 이미 도덕적 감수성이 마비된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위험의 외주화를 끝내고 인간의 존엄과 안전을 우선하는 일터로 바꿔야 한다. 죽음의 사슬을 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기업이 위험한 일일수록 직접 고용하고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한 생명 한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지키는 일, 그것이 우리가 다음 세대에 물려줄 최소한의 가치다. 우리 사회가 더 이상 ‘괜찮은 죽음’에 무감각해지지 않도록, 이제 모두가 각성하기를 바란다.

▶참고문헌

-권순식. (2023). 고성과작업시스템, 자동화, 간접고용이 산업재해에 미치는 영향. 산업관계연구, 33(4), 1-31.

-Bandura, A. (2002). Selective moral disengagement in the exercise of moral agency. Journal of moral education, 31(2), 101-119.

-Koranyi, I., Jonsson, J., Rönnblad, T., Stockfelt, L., & Bodin, T. (2018). Precarious employment and occupational accidents and injuries–a systematic review. Scandinavian journal of work, environment & health, 44(4), 341-350. 

/이양순(전북노동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위 글은 <전북노동브리프> '2025년 여름호'에도 게재됐으며 <전북의소리> 보도 내용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전북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