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 항소심 재판 방청 연대 후기[3편]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3월 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은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사진=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3월 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자들은 "정당방위를 인정할 것"을 촉구했다.(사진=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우리가 ‘생존자’라는 말을 선택한 까닭은? 

4월 9일 오전 10시, 항소심 재판부는 선고 날짜를 정했다. 1심에서 검찰은 징역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이 공소를 그대로 유지할 예정이다. 책방토닥토닥 두 책방지기는 이날도 방청할 예정이다. 방화자, 피의자, 교제폭력 피해자, 피고인, 생존자. 그녀를 지칭하는 용어들은 이보다 더 많다.

우리는 그 중에서 ‘생존자’라는 말을 선택했다. 그리고 또래라는 점에서 마음이 더 가는 것도 사실이다. 생존자 A와 동시대를 살아온 우리는 8년 전, 위로와 연대라는 두 단어 위에 책방을 쌓았다. 지금 생존자 A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비록 직접적으로 마음을 전할 수는 없지만, 차가운 재판장이 더 많은 이들의 연대 방청으로 따뜻해질 수 있다면 좋겠다. 멀리 광주여성의전화는 생존자를 후원하는 모금을 최근 시작했다. 형편상 많이 후원할 수는 없지만, 조금이라도 보탤 생각이다. 그녀는 기초생활보장 급여로 생활할 정도로 평소에도 형편이 어려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좋은 책을 팔고 세상과 연대하겠다고 결심했다. 종종 우리의 활동을 보고 주변 지인들은 “후원이라도 받아!”라고 조언한다. 책방 문을 닫고 다니는 걸 보며 걱정하는 말이다. 그런데 후원보다 더 값진 것은 책방에서 책을 사는 것이다. 당신이 산 책, 토닥을 응원하는 이들이 사는 책들이 더 많은 좋은 책을 책방에 들여놓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더 많은 책을 팔고 또 소개해야겠다. 생존자 A를 보며 마티 출판사의 책, <맨발로 도망치다>가 떠올랐다. 이 책은 우에마 요코라는 연구자가 가족과 애인의 폭력을 피해 밤거리를 떠도는 10대 여성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이다. 요코는 거리에서 스즈노라는 여성을 만난 일화를 대화 형식으로 소개한다. 스즈노는 남자친구의 폭행을 피하기 위해 바보처럼 행동하는 것을 “지혜”라고 말했다.

“무섭긴 했지만, 사람이 오랫동안 맞고 살다 보면 점점 지혜가 생겨서, 어떻게 말해야 되지, 내가 바보처럼, 바보가 된 것처럼 하면 상대가 깜짝 놀라서 멈추는 거예요. (웃음)” - 90페이지

많은 이들이 각자의 쪽지를 건넬 수 있었으면

생존자 A도 그랬다고 한다. 최근 언론에서 공개한 경찰 조서를 보면 그녀는 “가만히 있어야 덜 맞아요. 그게 제일 덜 맞는 거예요.”라고 답했다.

한편, 아픈 아이를 보기 위해 병원을 갈 때면 짙은 화장으로 폭행의 흔적을 숨기며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던 미즈노. 병원에서 한 간호사는 미즈노에게 자신의 번호와 함께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쪽지를 건넨다. 하지만 미즈노는 단 한 번도 그 쪽지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폭행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 쪽지를 수첩에 끼워 매일 가지고 다녔다. 그리고 때때로, 울고 싶을 때 그 쪽지를 읽었다.

“울고 싶을 때에는 소리 내서 마음껏 울어요. 울고 나면 왠지 힘이 날 테니까.” - 91페이지

생존자 A가 펑펑 울던 항소심 재판장, 수십 년 쌓였던 고립감이 무너져내리던 그 순간, 우리는 그녀에게 어떤 쪽지를 건넬 수 있을까. 말 한마디일 수도 있고, 방청석의 작은 몸짓일 수도 있다. 그것이 정말로 도움이 될지 모르더라도, 부디 많은 이들이 각자의 쪽지를 건넬 수 있었으면 좋겠다.(끝)  

/문주현(책방 '토닥토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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