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 항소심 재판 방청 연대 후기[1편]
현재 재판 중인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은 우리 사회의 교제폭력 피해자(약자)들이 지속적으로 폭행에 노출된 채 부당한 침해로부터 보호받지 못하는 근본적인 문제점들이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때문에 교제폭력에 시달리다 집에 불을 질러 남자 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피고인에게 '정당방위'를 적용해야 한다는 각계의 목소리가 높다.
이에 지난해 5월 군산에서 벌어진 교제폭력 방화사건 관련 항소심 재판 방청 연대 후기를 3회에 걸쳐 소개하기로 한다. 이 사건의 내막과 재판 진행 과정, 연대의 필요성 등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 글은 전주시에서 책방 '토닥토닥' 대표를 맡고 있는 문주현 씨(전 참소리 편집인)가 기고해 왔다. /편집자주

법정에서 만난 '교제폭력 피해자'이자 '방화 피의자'
4월 2일 오후 2시 20분, 전주지방법원 201호 법정.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 항소심 재판이 열렸다. 100여 명의 페미니스트 활동가들과 시민들로 가득찬 법정 안은 조용했다. 판사는 차분히 국선 변호인이 제출한 변론 요지를 읽어나갔다.
그 내용은 이랬다. 교제폭력 피해자이자 방화 피의자인 피고 A(여성)는 작년 5월의 어느 날, 외진 곳에 위치한 파트너 B(남성)의 집에서 심각한 폭행을 당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분노와 공포 속에 불을 냈다. 그것은 감금 수준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자, 소방관의 구조를 요청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다. 그녀는 119에 직접 신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날의 화재로 파트너 B는 사망했고, A는 건조물방화치사 혐의를 받고 있다. A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반성하고 있으며,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어의 여지도 있다는 내용도 덧붙었다.
판사가 변론 요지를 읽는 동안, A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마스크를 쓴 얼굴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 고요한 자세에서 오랜 시간 쌓였을 피로와 긴장이 느껴졌다. 판사는 변론 요지를 한 줄씩 읽으며 A에게 확인했다. 그러나 A의 반응은 늦었다. 묻는 말에 바로 답하지 못했고, 판사의 말이 끝난 뒤에도 반응이 없었다. 변호사가 다시 내용을 설명해주고 나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A는 B의 장기간 폭력으로 청력이 손상되어, 판사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묻고 답하고, 다시 묻고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됐다. 천천히 흘러가던 시간 속에서 법정은 긴장과 집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판사가 탄원서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하면서, 분위기는 바뀌었다.
4,360명의 탄원서, 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방청인들...생면부지의 '연대'
“매 맞는 아내 증후군과 관련된 소견서를 제출하였고, 성폭력예방치료센터를 비롯한 시민 4,360명이 탄원서를…”
판사의 말이 끝나기도 전, A는 갑자기 오열하기 시작했다. 참았던 감정이 터진 듯, 마스크가 벗겨질 정도로 그녀는 눈물을 쏟아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짧게, 그러나 절절하게 그 말을 꺼냈다. 지난 5년, 아니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가정폭력까지 더하면 수십 년을 혼자의 힘으로 버텨야 했던 시간들. 누구도 대신 감당해주지 못했던 현실. 아마 이 재판도, B의 죽음도, 모두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게라 여겼을 것이다.
차가운 감옥 속에서 ‘다른 삶’이 가능하리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그 시기에, 생면부지의 시민들이 보내온 연대. 4,360명의 탄원서, 법정을 가득 메운 100여 명의 방청인들. 그 순간, A는 짧지만 가장 진심 어린 말 한마디로 모든 감정을 전했다.
“감사합니다.”(계속)
/문주현(책방 '토닥토닥'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