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 항소심 재판 방청 연대 후기[2편]

4월 2일 재판을 통해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의 실체가 조금은 드러났다. 사진은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3월 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모습.(사진=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4월 2일 재판을 통해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의 실체가 조금은 드러났다. 사진은 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발족 기자회견이 3월 6일 오전 11시 30분 전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모습.(사진=군산 교제폭력 정당방위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제공)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의 내막 

4월 2일 재판을 통해 ‘군산 교제폭력 방화사건’의 실체가 조금은 드러났다. 사건은 2024년 5월, 차로만 이동이 가능한 외딴 곳에 위치한 남성 파트너 B의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면서 알려졌다. 이 불로 B는 사망했고, 생존자인 A는 그 자리에서 체포되었다. A는 이미 가정폭력을 경험한 이력이 있었다. B와의 교제는 5년간 이어졌고, 그 안에서의 폭력과 학대는 상상을 초월했다.

외부 활동을 막겠다는 이유로 시작된 폭행은 얼굴 부위를 집중적으로 가격하거나, 목을 조르는 식으로 이루어졌다. 부엌칼로 살해를 위협하거나, 배에 담뱃불을 세 차례 지지는 일도 있었다. 그녀는 한 차례 응급실에 실려갔고, 호흡곤란으로 사망할 수 있다는 의료기록 사본도 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녀는 5년 동안 무려 31차례나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지역 기관과 연계된 도움을 받지 못했다. 교제 기간 동안 A는 오롯이 홀로 폭력을 견디고 살아야 했다. 사건이 있기 한 해 전 23년 어느 날, 똑같이 폭행을 하는 B를 경찰에 신고했고, B는 체포되었다. 이때 법원은 B에게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B는 복역 중에도 지속적으로 사과 편지를 보내왔고, 출소 후 곧바로 A에게 연락을 취했다. 방화 사건은 출소 후 1주일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그날도 폭행은 당연한 듯이 일어났다. B는 A의 휴대폰을 빼앗고, "너 때문에 내가 감옥에 갔다"며 분노를 표출했다. 다시 죽을 만큼 때리기 시작했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아 턱 부위가 찢어지고 옷에 피가 튀어 묻었다. A는 휴대폰도 없이 사실상 감금된 상태였다. B의 휴대폰은 정지된 상태였고, 외부에 도움을 요청할 방법은 전무했다.

B가 술에 취해 잠든 후, A는 탈출을 결심했다. 그녀가 떠올린 유일한 방법은 ‘불을 내 소방관의 구조를 받는 것’이었다. 옆방 이불에 불을 붙이면 119가 와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절망 속에서 떠올린 마지막 수단이었다. 그녀는 불을 붙이고 자신은 집 바깥 화장실에 몸을 숨겼다.

1심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 A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며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경찰 조사 당시, 화재 현장에서 잠시 머뭇거린 이유에 대해 A는 “저 불이 꺼지면 제가 죽어요”라고 진술했다. 이 진술은 그녀가 처한 상황이 얼마나 절박했는지를 말해준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절박함을 B를 살해할 동기로 해석했다.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몇 차례 반복하는 것으로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활동가들과 2심 국선선변호인은 교제폭력 피해와 신체 및 정신적 건강상태 등은 전혀 참작하지 않았다고 안타까워했다.(한겨레21, 1553호) 이에 2심에서는 국립정신건강감정기관에 직접 의뢰해 A의 정신감정 분석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분석 결과, A는 판단력은 유지하고 있으나 ‘심신미약에 가까운 상태’라는 소견이 나왔다.

또한 변호인은 ‘매 맞는 여성 증후군(Battered Woman Syndrome)’을 제시하며, A의 행위가 정당방위 혹은 과잉방어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상황은 B가 깨어나는 즉시 폭행이 재개될 수 있는 위기상황이었다는 점도 강조했다. ‘매 맞는 여성 증후군’은 반복적 학대 속에서 무기력, 공포, 자존감 저하와 우울증 등이 겹쳐 극심한 심리적 고립 상태를 겪게 되는 상태다. 

그녀가 재판에서 탄원서가 제출됐다는 소식을 듣고 오열했던 이유도, 아마 그 극도의 고립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변호인은 A가 5년 동안 반복된 폭행을 당하면서도 지역사회로부터 아무런 구조를 받지 못한 점, 감금 상태에서 탈출 수단이 없었던 점 등을 호소하며, 상습적 폭력 피해자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A는 최후 변론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지 못했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세상으로부터 외면받아온 지난 날들. 그리고 자신을 위해 함께 해주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되었을 때의 복잡한 감정. 그녀는 “감사합니다”와 “죄송합니다”를 몇 차례 반복하는 것으로 그 마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계속) 

/문주현(책방 '토닥토닥'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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