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람 : 간호사와 법학도가 민중 예인 ‘우분투’지기

사회적 기업 우분투에서 민중음악을 연주하고 잇는 회원들
사회적 기업 우분투에서 민중음악을 연주하고 잇는 회원들

우분투?

전주시 완산구 성지산로 62에 자리한 민중 예인 사무실이자 연습장 간판으로 내건 이름이다.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이름이 상호로 걸려있으니 단연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호기심 반, 기대 반 설레 가득한 채 그 곳을 찾은 건 소슬한 늦가을 바람이 코끝을 스치던 11월 첫 주말 오후. 1층에 들어서니 한국무용, 난타, 사물놀이 등을 연습 할 수 있도록 요란한 시설들이 설치돼 있었다. 벽면거울이 부착된 대형 연습장과 소그룹 연습장이 배치돼 있고 간이무대 설치용 트러스 등이 잘 정돈 되어 있었다. 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가니 개인 심화 연습실 6칸이 줄줄이 마련돼 있었다. 지방의 중소도시에 이렇게 훌륭한 음악 시설을 갖추고 활동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볼수록 점점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우분투 창고에 보관된 민중 예인들의 연주 도구들
우분투 창고에 보관된 민중 예인들의 연주 도구들

필자의 눈앞에 먼저 나타난 사람은 어릴 때부터 백의의 천사를 꿈꾸며 열심히 공부하여 간호대학에 진학한 뒤 간호사의 꿈을 이루었다는 박병숙 씨. 한 달만 지나면 나이 50줄에 진입하게 되는 마흔 아홉의 예인이다. 지금은 예인이지만 한때는 흰 가운이 잘 어울리는 간호사였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순간 민중 음악과 함께 하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머무름을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대학시절 농악 동아리 활동이 열정과 용기 불어 넣어줘

우분투 회원들이 교도소에서 교화공연을 하는 모습
우분투 회원들이 교도소에서 교화공연을 하는 모습

“대학시절 농악 동아리 활동을 하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실토하는 그녀는 “농악을 배우면서 마음 한 구석에서 불처럼 일어나는 열정을 느꼈다”고 말한다.“간호사의 꿈을 이루어 간호사로 근무하면서도 늘 가슴에 뜨겁게 치미는 농악에 대한 연모와 열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는 그녀는 “히말라야 산을 등정한 후 결국 농악에 자신의 인생을 걸기로 결정하고 농악이면 가리지 않고 배워가며 닥치는 대로 공연을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교육관련 집회의 공연장에서 음향을 도와주던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현재 함께 운영하고 있는 우분투의 추장이자 대표를 맡고 있는 조기현(51) 씨다. ‘노리터’란 이름으로 시작한 민속음악 활동이 ‘우분투’로 바뀌면서 규모가 점점 커지기 시작한 것이다.

우분투 부추장 박병숙 씨
우분투 부추장 박병숙 씨

“오랜 희망이었던 간호사 직업까지 내팽개치고 감행한 일이어서 더욱 열심히 한 것 같다”고 말하는 그녀는 “조 대표와는 그저 민속음악을 서로 좋아하는 동지일 뿐 더 이상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그래서 우분투를 오늘날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데 성공했다”고 그녀는 자랑한다.

우분투 부대표이자 부추장으로 불리는 그녀는 기접놀이 단원이기도하다. 북을 치는 고수로 2016년 제57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 참가한 적이 있다. 그때 열정적인 그녀의 연주를 본 부산지역 대표가 “나도 농악을 오래 한 사람인데 북이 전체 판을 이끄는 농악은 처음 본다”며 “기회가 되면 부산에 꼭 와달라고 간청을 한 적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회원들의 열정과 노력이‘노리터’를 사회적 기업 ‘우분트’로

우분투 추장 조기현 씨
우분투 추장 조기현 씨

그녀는 추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추장은 대학시절 전공이었던 법학보다는 음악에 심취해 드러머이자 음악 그룹의 창단멤버였다”며 “손재주가 좋아 자연스럽게 그룹 내의 잡일 등을 도맡아 하는 등 공연을 할 때마다 으레 크고 작은 문제가 발생하고는 하는데 그때마다 없는 장비도 뚝딱 만들어가며 척척 문제를 해결해 낸다”고 칭찬을 널어놓는다.

이처럼 별난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민속음악의 활동 영역은 점점 폭이 넓어만 갔다. ‘딴따라’ 소릴 들으며 음악활동을 시작해 2002년에는 30~40대 직장인 그룹사운드 ‘노리터’를 창단해 운영하기도 했다”는 우분투 추장은 “드럼 강사에서부터 밤무대까지 어디든 음악이 있는 곳이면 남사당패처럼 수익과 상관없이 쫓아다녔다”고 말한다.

그러다 2014년 우연히 그녀를 만나 함께 음악을 하게 된 것이 오늘에 이르게 됐다. 활화산 같은 민속음악의 열정가와 만난 그는 영역이 달라 갈등을 겪기도 했지만 이제는 톱니바퀴처럼 일사분란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함께 하면서 이들은 지역을 대표해 전국 경연대회에 출전해 상을 받기도 했으며 매년 교도소 교화공연과 지역에서 열리는 축제에 3년째 함께하고 있다.

전래의 민중 예인 집단이었던 남사당패를 지향하는 추장은 전북경제진흥원으로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었다. “지원 없이도 자유롭게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잘 해나왔는데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 규격화, 형식화 될 수밖에 없어 하고 싶은 일을 오히려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처음엔 망설였다”는 그는 “정부 지원을 그 옛날 남사당패의 놀이에 한층 흥을 돋우던 막걸리처럼 신명난 문화운동의 ‘흥’으로 삼자는 결론으로 2017년 사회적 기업 육성과정을 통과했다”고 설명한다.

이들이 이끄는 사회적 기업 ‘우분투’는 이러한 별난 사람들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 곳은 지역의 문화 소비자 조합이며 공연 기획사이고, 드럼은 물론 난타, 농악, 타악 등 한국 민속무용의 연습장이며 공연장이다.

공연을 마치고 회원들이 한 자리에
공연을 마치고 회원들이 한 자리에

민속 음악과 지역 문화를 아울러 다양한 형태로 인재 육성과 공연활동과 전통음악 전수를 겸하고 있는 곳이다.

문화의 완벽한 공유체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는 우분투 추장과 부추장의 공동 목표다.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뜻의 아프리카 한 부족의 언어를 간판으로 내건 ‘우분투’(Ubuntu)가 지역의 전통문화와 어울려 풍류를 다채롭게 할 것이란 든든한 믿음을 갖고 우분트 문을 나섰다.  /서치식. <사람과 언론> 제3호(2018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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