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 잊혀질 권리 논쟁은 무엇?

지난 10월 13일, 김포의 한 아파트에서 한 여성이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린이집 보육교사였던 이 여성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극단의 선택으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녀에게 평생 따라 붙어 다닐 꼬리표는 “아동학대 가해자”였다. 이 꼬리표의 시초는 한 인터넷 카페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밀쳤다’라고 시작되는 글은 순식간에 많은 이들에게 읽혔고, 비난의 댓글이 이어졌다. 몇 줄의 글로 순식간에 아동학대 가해자가 된 그녀는 이제는 개인 신상정보까지 공개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일명 마녀사냥이 시작된 것이다. 사는 곳, 이름, 그녀의 얼굴이 공개된 사진까지 말이다. 그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세계에서는 변명의 여지도 없이 이미 그녀는 아동학대 가해자가 되어 있었다.
사실은 사건 발단이 되었던 글이 작성되었을 때는 넘어졌던 아이의 부모와 오해를 풀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이유는 명백하다. 이미 자신의 신상이 공개된 인터넷 세계에서는 여전히 아동학대 가해자였기 때문이다. 후에 정리가 되었고, 오해가 풀려도 여전히 많은 이들에게 꼬리표로 기억에 남을 테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소리 없는 아우성일 뿐이었다.
“인터넷은 절대 망각하지 않는다”
디지털 시대, 스마트폰의 대중화, 이 다방면의 사회적 변화가 맞물려 우린 이제 손쉽게 정보를 제공, 공유를 할 수 있다. 개인이 수많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만큼 또 타인에게 자신의 정보를 쉽게 노출 당한다.
1998년 라시카(J. D. Lasica)가 ‘인터넷은 절대 망각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이 세계에서는 한 번 노출된 정보는 처음 제공했던 소스를 삭제한다고 해서 영원히 삭제될 순 없다. 타인이 만약 정보를 공유했다는 전제하에서 말이다. 해당 정보나 기사가 과거에 쓰였다 하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흘러도 누구나 언제든지 이를 검색 또는 인터넷을 통해 유포시킬 수 있는 ‘신상 털기’가 가능해졌다. 더 나아가 아이디를 사용해 익명으로 자신의 개인 정보고 들어간 글을 올린 경우에 검색을 통해 작은 정보가 모여 종합적으로 개인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는 ‘프로파일링’마저 인터넷 세계는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렇든 이 세계 속에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뒤에 수많은 꼬리표가 달려있을지 모른다. 이와 같은 상황으로 사람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주제가 바로 ‘잊혀질 권리’이다. ‘국민의 알권리’는 민주주의를 외쳐왔던 지난 수 십 년의 역사에서 많이 들어봤을 법한 내용이다. 하지만 ‘잊혀질 권리’는 많은 이들에게 생소한 개념이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개념은 아니다.
타인에게 잊히고 싶은 권리, 당신은 자유로운가?
잊혀질 권리는 말 그대로 개인이 타인에게 잊히고 싶은 권리를 의미한다. 즉 ‘자기 통제권 확대’를 통해 개인의 권리를 강화하고자하는 데 그 핵심을 두는데 신상 털기가 무분별하게 일어나는 현 시대에서 잊혀질 권리는 자기 정보 통제권을 보장해주는 최후의 카드인 셈이다. 이 개념이 주목받기 시작하게 된 것은 『잊혀질 권리(Delete)』의 저자 빅토어 마이어 쇤베르거(Viktor Mayer-Schönberger)가 디지털 정보의 소멸 필요성을 주장하면서부터이다.
과거에는 개인 정보는 한정된 공동체 구성원의 기억에만 오로지 의존하여 존재했다. 하지만 이후 급격한 기술의 변화는 개인정보 포함 모든 각종 정보들이 데이터베이스화되어 저장, 또 누구든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너무나도 쉽게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다. 더 이상 개인 자신은 공동체 구성원 안을 뛰어 넘어 세계로 뻗어나가게 되버린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 이는 특히 언론이 빚어낸 기사에서 문제시 되는데, 언론이 만들어낸 기사는 엄청난 영향력과 확산을 가지면서 무한대의 유효기간마저 보유한다. 과거 기사를 누구나 보고, 이를 또 공유하면서 재확산까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고 파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환경
정보를 만들어내는 것은 아주 쉬운 세상이지만, 이 정보를 완전히 삭제하고 파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인터넷 환경에서 잊혀질 권리는 개인정보, 더 나아가 그 정보에 대한 권리까지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개념에 대해서 모든 이들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잊혀질 권리와 알 권리 간의 입장은 마치 평행선과도 같이 반대편을 향해 달릴 뿐이다.
어떤 토론 주제가 던져지면 항상 찬성 의견을 먼저 들여다보곤 하는데, 이번엔 반대 편 입장을 들어보고자 한다. 찬성 입장은 사실 서론에서 계속해서 언급해왔기에 넘어가겠다.
잊혀질 권리의 입법화 찬성만큼 반대 입장도 대쪽같이 강경하다. 반대 입장은 곧 ‘기억할 권리’라고 말할 수 있다. 기억할 권리에 대한 주장은 미국을 중심을 전개되었다. 기억할 권리를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는 우리가 많이 들어보았던 “개인은 표현의 자유와 알 권리를 가진다”라는 미국의 수정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그 제 1조이다. 즉 이들의 의견은 다수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정보가 개인의 표현이나 알 권리를 보호하는 현대의 긍정적인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데이터의 사적 검열에서도 반감을 표하는데 잊혀질 권리가 만약 입법화 된다면 정보 검열이 법적으로 보장되기 때문에 데이터의 빅브라더, 파놉티콘의 발생이 우려된다. 인터넷이 가지는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가 개방성인데, 그 정체성의 근간이 흔들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 다음 근거로는 잊어달라고 하는 인터넷 상의 개인정보의 범위는 사실상 모호하고 기술상으로도 기준을 정하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설령 가능하다 할지라도 법을 집행할 때 투입되는 인력과 비용 문제는 정부와 기업 모두에게 훗날 큰 부담을 껴안게 할 수도 있다.
그리고 애초에 정보의 영구 삭제는 기사에서 객관성을 완전히 지킨다는 것만큼 현실 초월의 이야기이다. 광범위한 인터넷 전체에서 개인의 일부 정보를 지우는 것은 대단히 기술적으로 어렵다는 것이다.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은 웹 크롤러(Web Crawler)라는 정보 수집 방법을 기본으로 삼는데, 웹 크롤러는 거의 모든 정보를 무한대로 공유하고 복제한다. 그렇기 때문에 잊혀질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애초에 잊혀질 권리가 불가능하다고 날을 세우는 것이다.
잊혀질 권리,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요한 권리
이 두 입장은 저널리즘의 영역에서 크게 쟁점을 다투는데, 개념상에서의 잊혀질 권리는 언론의 자유와 알권리, 인격권의 충돌을 가져온다. 즉 잊혀질 권리를 합법적으로 인정하게 된다면 고유한 권리인 국민의 알권리와 언론 표현의 자유가 동시에 침해될 수 있다. 또한 환경 감시자라는 언론 본연의 역할이 과도한 기사 삭제시 모호해진다. 이러한 이유로 현 유럽연합은 언론의 기사를 잊혀질 권리의 대상으로 제외한 채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여러 측면에서 쟁점을 다투고 있는 잊혀질 권리는 2014년 유럽연합 사법재판소 판결 이후 확대되어 가고 있고, 지난 5월 25일에는 일반정보보호법(GDPR)을 발표하였다. 개인정보의 권한이 정보 주체인 개인에게 이동하면서 정보주권 패러다임에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국내의 경우 방송통신위원회가 2016년 4월 29일 인터넷 ‘자기 게시물 접근 배제 요청권 가이드라인’을 공개하였다.
본인이 작성한 글, 사진 또는 동영상 등 게시물을 다른 사람이 볼 수 없도록 게시판 관리자에게 요청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움직임은 분명 잊혀질 권리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위해 필요한 권리라고 인식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하지만 국회의 잊혀질 권리 입법화만으로는 ‘마녀사냥’과도 같은 잔혹한 일에 완전한 방패막을 만들 수는 없다. 다수가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거짓들이 손쉽게 진실의 탈을 뒤집어쓰는 광경을 사람들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말이다.
삶을 뒤로한 채 떠나버린 그녀는 이제 아동학대 가해자라는 꼬리표는 벗어던졌을지 몰라도 남아있는 가족들에게 또 다른 꼬리표를 남기고 갔을지 모른다. 안타까운 세상이다. 쉽게 타인의 신상정보를 올려 한 사람의 죽음과 또 남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이별을 너무나도 쉽게 남기는데, 이름 모를 글쓴이들은 바람처럼 사라지니 말이다. /이지영. <사람과 언론> 제3호(2018 겨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