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중의 자전거 이야기(20)

1960년대 말부터 1980년까지 10여년 사이에 포틀랜드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디트로이트(미국 미시건)와 포틀랜드(미국 오리건) 두 도시의 인구 변화 그래프(출처: 위키백과)
디트로이트(미국 미시건)와 포틀랜드(미국 오리건) 두 도시의 인구 변화 그래프(출처: 위키백과)
트로이트와 포틀랜드의 인구변화에 전주(녹색)까지 같이 대입시켜본 그래프. 세 도시 공히 2023년 현재 65만 수준에서 만나고 있다. 그뒤에 얇은 실선은 현재의 추세를 이어본것으로 세 도시의 운명이 다시 다르게 전개될거라는 추정이다.
트로이트와 포틀랜드의 인구변화에 전주(녹색)까지 같이 대입시켜본 그래프. 세 도시 공히 2023년 현재 65만 수준에서 만나고 있다. 그뒤에 얇은 실선은 현재의 추세를 이어본것으로 세 도시의 운명이 다시 다르게 전개될거라는 추정이다.

오늘날 세계인들이 도시혁신의 모범적 사례로 매우 많은 사람들에 의해 언급되는 도시 포틀랜드. 이 도시는 잠깐잠깐 소개했지만 평범하고 보잘것없는 도시였다. 대표적인 이미지가 습하고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를 감안해 ‘우중충한 도시’였다. 그리고 아래 사진에서 살펴보듯이 미국 여느 도시와 다를 바 없는 자동차 도시였다. 시내 중심부 전역에 건물에 부속된 주차장들이 많이 관찰됨을 직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전작(하우턴 이야기)에서 비교했던 이야기를 잠깐 환기시켜 보자. 비교되는 도시 디트로이트와 전주까지 대입시켜 20세기 후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50여 년 사이에 어떻게 운명이 달라졌는지 인구 그래프를 통해 살펴보도록 하자.

​1950년경을 정점으로 하강하기 시작하고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한 1970년대까지만 해도 디토로이트와 포틀랜드는 비교 대상이 되지 못하는 도시였다. 이때의 인구, 디트로이트 150만 포틀랜드 38만으로 네 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 도시였다. 디트로이트가 재앙적 수준으로 인구가 소멸하는 동안 포틀랜드도 70년대에 일시적으로 인구가 줄어드는 시기를 겪었지만 이후 지속적인 성장세를 기록한다. 아울러 전주까지 대입시켜 보면 2023년 현재 세 도시 공히 65만 가까운 인구규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래프만 살펴보더라도 세 도시의 운명은 다른 추세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많은 도시계획 전문가들이나 여타 분야의 전문가들이 도시를 생명을 가진 유기체라고 여기듯 도시도 나고(생성) 자라고(성장), 정체되거나 소멸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렇게 해석하자면 디트로이트는 현재의 하락세를 잡지 못하는 한 소멸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틀랜드는 지속적으로 성장 중인 상황으로 읽을 수 있다. 전주는 정체되고 있거나 줄어들고 있는 추세에 접어 들었다. 도시마다 위기와 혁신을 요구하는 사회적 변화에 직면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산업마다의 차이가 있지만 포틀랜드나 디트로이트 공히 산업구조변화라는 상황과 도시가 앉고 있는 과제에서의 변화를 요구받았다. 전자가 성공적으로 혁신을 이뤄낸 반면 후자는 문제가 더욱 악화된 상황전개가 두 도시의 운명을 갈랐을 뿐이다.

​오늘날 많은 전문가와 세계인들이 포틀랜드의 오늘을 짚어 낼 때 중요한 변곡점을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경의 10여 년 사이에서 일어난 몇 가지 사건과 그를 바탕으로 이뤄낸 변화의 결과로 평가한다. 그 몇 가지 사건을 정리해 보겠다.

나중에 Keller Auditorium으로 이름이 바뀐 시민 강당 일대.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인근 지역이 많이 보일 것이다. 1967년 5월 8일 (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나중에 Keller Auditorium으로 이름이 바뀐 시민 강당 일대. 주차장으로 활용되는 인근 지역이 많이 보일 것이다. 1967년 5월 8일 (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같은 각도를 비추고 있는 Keller Auditorium 인근의 위성사진. 녹지와 광장등이 켈러강당 인근에 있음을 확인할수 있다.(사진출처: 구글 어스 캡처)
같은 각도를 비추고 있는 Keller Auditorium 인근의 위성사진. 녹지와 광장등이 켈러강당 인근에 있음을 확인할수 있다.(사진출처: 구글 어스 캡처)
캘러 강당과 월라멧강변의 모습 강변의 도로가 하버드라이브였고 I-5도로의 핵심축이었다. 하버드라이브는 인근 우회로 개설과 함께 폐지된 후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67년 5월 8일.(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캘러 강당과 월라멧강변의 모습 강변의 도로가 하버드라이브였고 I-5도로의 핵심축이었다. 하버드라이브는 인근 우회로 개설과 함께 폐지된 후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었다. 1967년 5월 8일.(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캘러공원과 월라멧강 수변공원의 오늘날 모습.(사진출처: 구글 어스 캡처)
캘러공원과 월라멧강 수변공원의 오늘날 모습.(사진출처: 구글 어스 캡처)

주차타워 대신에 시민의 거실로 만든 ‘파이오니어 코트하우스 스퀘어(광장)’

이 연재 첫 회에서 소개한 바 있는 공간으로 이곳은 포틀랜드 시의 심장이라 할 만한 공간이다. 본래 이 공간은 학교로도 쓰였고 포틀랜드의 대표적인 호텔로도 쓰였던 공간이다. 1950년대 이 공간은 인근의 Meier & Frank라는 대형백화점 체인에서 2층짜리 주차장으로 쓰던 공간이다. 백화점 측이 1960년대 이를 11층짜리 주차타워로 신축하려 하자 시민들은 반대했다.​

이들이 내세운 가장 큰 이유는 ‘포틀랜드의 심장에 주차장을 세울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포틀랜드 시민들은 반대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행동에 나섰다. 공간을 광장으로 만드는 대안을 세운 시민들은 광장으로 만들어질 때 광장 한편을 맡을 벽돌 한 장을 내겠다고 나섰다. 벽돌 하나에 100달러씩 모아진 총액이 150만 달러다. 1만 5천의 벽돌(시민)이 모아지는 대단한 사건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 대단한 사건을 모른 체 할 수 없던 연방정부는 시민들에게서 모아진 만큼을 매칭해 150만 달러의 연방기금을 투입한다. 이렇게 모아진 300만 달러의 기금에 담긴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 없었던 백화점에게서 주차장 부지를 인수받아 광장으로 조성하는 데 성공한다.​

단순한 시청의 소유가 아닌 시민의 소유가 되었고 이는 재단을 만들어 오늘까지 시민들이 운영하는 거실로 활용되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광장으로 시민들은 ‘포틀랜드의 거실’이라고 부르며 사랑한다고 한다. 광장을 조성하는데 그치지 않고 100달러를 통해 기여하는 이 운동은 현재 7만 5천 장의 벽돌 참여자가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Jefferson과 Madison St 사이 SW 2nd에서 3rd Ave 방향 주차장 건너편 북쪽을 바라보는 전망. 2층의 주차장으로 활용되던 이 공간은 백화점 소유였으며 11층의 주차타워 신축계획이 제출된 상태였다. 1972년 12월 30일.( 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Jefferson과 Madison St 사이 SW 2nd에서 3rd Ave 방향 주차장 건너편 북쪽을 바라보는 전망. 2층의 주차장으로 활용되던 이 공간은 백화점 소유였으며 11층의 주차타워 신축계획이 제출된 상태였다. 1972년 12월 30일.( 사진출처: 포틀랜드 시청 아카이브)
파이오니어 스퀘어의 오늘날 모습. (사진 출처:https://www.thesquarepdx.org, 광장을 관리운영하는 비영리재단 홈페이지 캡처)
파이오니어 스퀘어의 오늘날 모습. (사진 출처:https://www.thesquarepdx.org, 광장을 관리운영하는 비영리재단 홈페이지 캡처)

주간 고속도로를 반대하고 대중교통 확충을 선택한 사람들

가보지 않았어도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미국은 자동차의 나라다. 현재 미국의 인구는 대략 3억 4천만 명에 달하고 등록된 자동차의 수가 2억 8천만 대에 달한다. 면허 취득이 가능한 연령대는 모두 차를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 많은 차를 굴리기 위해 존재하는 주차장의 수가 약 20억 면이라고 한다. 차량 1대당 약 7.1대의 주차장을 가지고 있는 엄청난 자동차의 나라다. 최근에는 건물의 성격에 따라 일정 수의 주차장을 확보해야 하는 법안을 폐지하고 있는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실제 이를 완화하는 주도 생겼다) 도저히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 데는 세계 자동차 시장을 선도해 온 자동차회사와 정유사 등 관련 산업들의 의도가 깊숙하게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평가한다. 가령 일찍이 1900년대 초반에 자동차회사가 철도회사 지분을 인수하고 트렘 등 다른 교통수단을 운영하는 회사를 인수하는 방식이다. 유럽 등과 달리 철도교통이 발달하지 못한 배경으로 설명한다.​

이런 배경하에 미국의 연방정부는 1920년대부터 국토 전역에 고속도로망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펼치기 시작한다. 이에 가장 열성적으로 앞장선 인물로 꼽히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1956년 연방-지원 고속도로 법안 (Federal-Aid Highway Act)을 통과시킨다. 주와 주 사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구축 시에 연방정부가 90%의 자금을 배정하는 내용으로 이때부터 본격적인 고속도로망 구축에 나선다. 아메리카 대륙 전역에 고속도로가 깔린다. 하나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는 이런 정책이 도시를 파괴하고 환경을 악화시킨다는 반대의 움직임이 벌어진다. 대표적인 곳이 뉴욕이나 캘리포니아 등이다.​

포틀랜드가 속한 오리건도 다르지 않았다. 멕시코로부터 대서양 연안을 따라 캐나다의 밴쿠버로 연결하는 I-5번 고속도로를 비롯해 몇 개의 고속도로가 포틀랜드시 주변을 우회하여 통과하는 계획이 확정되었다. 특히 포틀랜드를 통과하는 구간은 정체가 심한 도로로 유명하였는데 이 당시 일부 포틀랜드 시민들에게 인근 캘리포니아나 시애틀에서 2층으로 고속도로를 놓는 방법을 고려하는 등의 움직임도 있었다. 그러나 더 많은 포틀랜드 사람들은 고속도로가 자신들의 일상적 삶에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교통문제 해결의 답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하며 연방정부 및 주정부가 확정한 고속도로망 확충에 대해 반대하게 된다.​

이 운동을 이끌었던 '1000-friends' 등의 시민단체는 이 계획에 대해 소송 등 법적 투쟁과 함께 대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들은 시민들로부터 모은 100만 달러의 기금으로 LUTRAQ(토지 이용 교통 공기 품질 연결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기도 한다. 여기서 현대화된 경전철 개설을 통한 대중교통망 확충과 여타의 대중교통과 자전거 인프라 구축 등의 아이디어가 모아진다.​

결국 I-505, 마운틴후드 고속도로 등 두 개의 노선은 영구적으로 백지화된다. 이 계획에 투입하기로 했던 500만 달러는 대중교통에 투입하기로 승인된다. 더욱 놀라운 일은 도심 한복판을 가로질렀던 하버드라이브는 도심 밖으로의 우회로 개통과 함께 철거하기로 결정한 일이다. 애초 20여 년 동안 이 구간을 입체화해온 포틀랜드는 이 구간을 완전히 지하화 하는 등의 또 다른 대안 말고 철거라는 놀라운 선택을 한 것이다. 2층 고속도로 등의 아이디어를 통해 영감을 준 캘리포니아와 시애틀에게 오히려 고속도로 철거라는 정반대의 영감을 주게 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기도 한다. 폐쇄된 하버드라이브는 수변공원으로 조성되어 많은 포틀랜드 시민들에게 사랑받고 활용하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파이오니어 광장과 고속도로 계획 백지화는 포틀랜드가 나아갈 방향을 180도 달라지게 만든 큰 사건이다. 여기에 다음 편에서 이야기할 톰맥콜 주지사의 ‘토지이용계획’에 관한 법률 제정이 연결되어 있으니 이어가도록 하겠다.

/김길중(자전거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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