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 특강 현장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진주 남성당한약방 김장하 원장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를 올해 1월 펴냈다.(사진=도서출판 피플파워 제공)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기자가 진주 남성당한약방 김장하 원장 취재기 '줬으면 그만이지'를 올해 1월 펴냈다.(사진=도서출판 피플파워 제공)

책 표지에서 눈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제목부터가 특이했다. 부자면 부자지 ‘아름다운 부자’란 표현이 맞는 걸까? 과연 어떤 부자기에 아름답다고 했을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또 그 옆의 활자, ‘취재기’가 뭔가? 심층 인터뷰가 아닌 취재기라고 표현한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취재와는 분명 다르다는 느낌을 준다. 취재는 물론 그에 필요한 자료나 재료를 찾아내서 수집하거나 조사하는 과정이 상당히 필요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이 보다 더 오랜 생각에 잠기게 한 것은 바로 이 책 표지의 가장 큰 활자 제목이었다.

김장하,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라고 부르는 이유는?  

 12일 저녁 7시 30분부터 전주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에서는 노무현재단 전북지역위원회가 마련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모 시민학교 특강'에 김주완 선생이 강사로 초대, 약 2시간 가량 강의가 진행됐다.
 12일 저녁 7시 30분부터 전주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에서는 노무현재단 전북지역위원회가 마련한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모 시민학교 특강'에 김주완 선생이 강사로 초대, 약 2시간 가량 강의가 진행됐다.

“줬으면 그만이지”란 제목과 그 아래 희미한 어느 노인의 뒷모습에서 온갖 생각들은 금세 멈추고 말았다. 사진 속 뒷모습의 주인공은 바로 책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이었다.

백발에 허리는 구부정하고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인다. 오랜 세월 앞에서 고단했던 삶의 역정이 느껴지는 뒷모습에서 왠지 짠한 느낌도 들었다. 하지만 책 페이지를 찬찬히 넘기다 보면 책 주인공을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남명 조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으로 부르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50년 넘게 해온 전달식 없는 장학금, 명신고등학교 설립과 헌납, 진주지역 공동체를 위한 김장하 선생의 흔적, 김장하의 기질과 철학 등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서부 경남에 있는 유서 깊은 도시 진주에서 50년간 한약방을 운영해 온 김장하 선생의 생애와 철학 등이 생생하게 기록됐다. 

한겨레신문이 창간할 때 2,600만원을 쾌척하고, 지역 토호 세력을 감시하기 위해 만든 진주신문의 발기인으로 참여하여 신문사의 열악한 재정을 지원하는 등 그침 없는 선생의 행보를 직접 취재하고 기록과 자료들을 고찰해 현실 그대로를 기록한 책이다.

아쉽게도 김장하 선생이 일군 ‘남성당한약방’이 지난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과정도 담겼지만 그냥 ‘부자’가 아니라 ‘어른 김장하’로 존경 받을 만한 이유들이 빼곡히 적혀있어 책의 무게를 더했다.

저자 김주완, 12일 저녁 전주팔복예술공장에서 ‘김장하 선생 일대·취재기’ 2시간 강의 ‘주목’

시민학교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시민학교 특강을 진행하고 있는 김주완 전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바로 이 책의 저자이자 평생을 기자로 살아왔고, 지금도 세상을 영상과 글로 기록하며 후학 등의 강의에 열중하는 김주완 선생이 전주를 찾았다. <경남도민일보> 기자에서부터 편집국장과 전무이사까지 지낸 지역 언론계의 전설적인 인물이다. 

12일 저녁 7시 30분부터 전주팔복예술공장 이팝나무 그림책도서관에서는 노무현재단 전북지역위원회가 노무현 대통령 서거 14주기 추모 시민학교 특강으로 김 선생을 강사로 초대해 약 2시간 가량 진지한 강의가 진행됐다. 책의 저자인 김 선생과는 10여년 전 전주에서 만나고 두 번째 만남이다.

그 때도 현역 기자로 활동할 무렵 강의를 위해 전주를 방문했다. 이번엔 현역에서 은퇴한 원로급 언론인으로서 중후함과 노련미가 강의장을 더욱 압도했다. 주말이 시작되는 늦은 저녁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60여명의 시민들이 자리를 메운 채 ‘아름다운 부자 김장하 취재기’를 강의하는 김 선생에 주목하며 많은 질문도 이어졌다.

이 외에도 ‘풍운아 채현국 별난 사람 별난 인연’, ‘지역 출판으로 먹고 살 수 있을까’, 대한민국 지역신문 기자로 살아가기‘ ‘80년대 경남 독재와 맞선 사람들’, ‘토호 세력의 뿌리’ 등 그가 현역 기자 시절에 펴낸 책들은 모두 전국적으로 널리 읽힌 유명한 책들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 세력은 바뀌지 않는다”...‘토호 세력의 뿌리’ 책에서 명언 남겨 

강의장 입구에 게시된 안내 홍보물들. 
강의장 입구에 게시된 안내 홍보물들. 

그 중 “정권이 바뀌어도 토호 세력은 바뀌지 않는다”며 “그 이유는 일제 강점기 이후 오랜 기간 그들은 기회주의로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고발한 ‘토호 세력의 뿌리’는 많은 감동을 주었던 책이다. 그 책을 주제로 필자는 <사람과 언론> 대표를 맡고 있던 2년 전 그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많은 뒷얘기들을 독자들에게 전할 수 있어 얼마나 기쁘고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이러한 책들의 저자가 이날 “줬으면 그만이지”란 자신의 책을 들고 전주를 다시 방문해 책 주인공인 김장하 선생과의 인연에서부터 선생의 별난 삶을 인터뷰하기 위해 노력한 취재 과정과 인터뷰를 위해 만난 수백명과의 인연 등을 자상하게 소개하고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본 강의에 앞서 그는 “취재 과정에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어떻게 김장하 선생의 허락을 받았느냐’는 말이지만 선생은 허락한 적이 없다”면서 “인터뷰도 한 적이 없다. 찾아오는 사람을 냉정하게 내치지 못하는 선생의 ‘약점’을 공략했을 뿐이다”고 밝혀 주목을 끌었다. 그러면서 “많은 분이 자연스럽게 선생과 함께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주셨다”며 “100명의 김장하, 1000명의 김장하를 취재 과정에서 많이 만날 수 있었던 것도 기쁨이었다”고 회고했다.

아울러 “한약방에서 벌어들인 돈으로 땅을 사고 건물을 사고 재산을 불려 나갔다면 그는 그냥 ‘부자’ 김장하가 되었을 것이다”며 “그러나 선생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는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핀다’고 말할 정도로 나눔과 베품을 젊어서부터 실천함으로써 ‘어른 김장하’로 존경하고 그의 청빈, 무욕의 삶 앞에서 옷깃을 여미게 된다”고 말했다.

반세기 넘게 온전한 나눔 실천해 온 김장하 선생 삶에 저절로 '숙연' 

책과 저자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 행사장 입구 안내 배너. 
책과 저자에 관한 내용을 소개한 행사장 입구 안내 배너. 

모두 4부로 구성된 책 전반부는 김장하 선생의 굴곡진 삶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할아버지가 소개해서 들어간 삼천포에 있는 한약방에서 점원으로 일하면서 낮에는 온갖 허드렛일을 하고 밤에는 한약 관련 공부를 하던 차에 어느 날 신문을 뒤적거리다가 한약종상(한약업사) 자격시험 공고 기사를 보게 된 것이 훗날 문전성시를 이루며 경남 일대에서는 가장 유명한 남성당한약방을 일군 김장하 선생의 일대기가 담긴 내용이지만 젊은 시절부터 시작한 장학사업이 눈에 띈다.

김장하 선생의 삶의 백미는 단연 학교설립을 꼽는다. 선생은 학교설립에 필요한 부지매입과 교사 신축에 들어가는 돈을 마련하기 위해 한약방을 해서 벌어들인 돈이며 땅을 전부 팔아서 명신고등학교를 1984년에 설립했다. 이사장이지만 학교에 대한 일체의 간섭없이 오직 최고의 복지로 교직원과 학생들을 대우하였고, 지역 사회의 명문고로 발전시켰다. 7년이 지난 1991년도에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국가에 헌납한 이야기는 당시 전 지역에 신선한 충격이었다. 

또한 선생은 한겨레신문과 진주신문 등 올곧은 언론의 창간에 깊은 관심을 갖고 지원하기도 했으며, 젊은 시절부터 어려운 학생들을 도우며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진하면서도 형평운동사업회, 지역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재정적인 지원 등은 진주라는 도시가 문화도시가 되는 데 큰 밀알이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성찰의 메시지 던져줘" 

강의장에는 60여명의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연띤 강의와 진지한 질문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강의장에는 60여명의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자리를 지키며 열띤 강의와 진지한 질문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책을 읽다 보면 "아픈 사람한테서 번 돈을 함부로 쓸 수 없다"며 반세기 넘게 온전한 나눔을 실천해 온 김장하 선생의 삶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저자는 "김장하 선생을 이 시대 강상호 선생이라고 표현한 극단현장 고능석 대표의 말에 가장 공감했다"며 "호의호식할 수 있는 부자임에도 자신의 재산을 털어 세상의 가장 천대받는 사람들 편에서 평등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앞장섰다는 점에서 ‘가장 닮은 두 사람’이라 기록했다“고 말했다. 강상호 선생은 천석꾼 진주 양반으로 '백정의 인권'을 외친 형평운동가로 지역 사회에서 유명하다. 

이러한 김장하 선생에게도 많은 시련이 있었다. 지역 국회의원과 세무서장 등 토호 세력들과의 좋지 않은 사연들도 책에 소개됐다. 김 선생이 운영하는 학교에 교사 채용 청탁을 거절해서 교육부 표적 감사와 한약방이 세무조사를 받게 된 일화는 대표적인 사례로 소개됐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주민들은 그를 ‘생불’, ‘보살’, ‘의인’, ‘진정한 어른’, ‘이 시대의 예수’, ‘든든한 뒷배’, ‘시민운동의 비빌 언덕’, ‘남명 조식 같은 분’, ‘모든 것을 품어주는 호수’ 등으로 부르고 있다고 한다. 

책의 저자 김주완 선생은 끝으로 "김장하 선생이 어떻게 불리든 선생은 많은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선생의 삶은 타인에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에 성찰의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고 말했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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