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시민과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제정된 법률, 약칭 ‘중대재해처벌법’이라고 한다.”
'산업재해와 환경재해 등으로 인한 지속적인 인명사고 발생에 대한 책임 소재를 분명하게 하고 재해예방에 힘쓰는 한편, 책임자에 대한 벌칙과 배상의 규모를 분명하게 한다'는 취지로 2021년 제정돼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그러나 시행 1년이 됐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약자보다는 강자의 편에서 이 법을 적용하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약자인 노동자들보다 사업(공사) 발주기관 또는 시행회사의 눈치를 여전히 더 보는 상황에서 법 취지가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는 지적이 팽배하다.
중대재해처벌법 조사도 처벌도 '흐지부지'..."지난해 500명 넘게 사망, 1970년대 영국 수준”

고용노동부, 경찰, 검찰 등의 소극적 대응이 잦은 논란과 갈등을 야기하고 있다. 3일 MBC PD수첩 ‘그들은 처벌받지 않았다’의 보도 내용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산재 사고는 11월 30일 기준 총 519건으로 이 중 고용노동부는 194건을 중대재해 사건으로 입건해 31건을 기소 의견 송치했고, 그중 검찰의 기소는 단 6건 뿐"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원인 중의 하나는 고용노동부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처벌'보다 '예방'에 중심을 둔 ‘중대 재해 감축 로드맵’을 발표했지만 노동자의 참여 보장 방안 언급이 없어 '자기 규율'이 '규제 완화'로 이어진 결과라는 지적이 높다.
이날 PD수첩은 “정부에서 발표한 중대 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2021년 산업재해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828명으로 OECD 38개국 중 34위로 심각하다”며 “사망자 수준을 비교하면 영국의 1970년대와 독일·일본의 1990년대 수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기대와 우려 속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됐지만 지난해 11월 기준 산업재해 사망자는 544명으로 여전히 높은 사망률을 보였으며, 추락과 끼임 등의 후진국형 산재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부연했다.
전북지역 7건 해당 사고 중 1건 검찰 송치...조사 시간 너무 많이 소요
전북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사고와 처리 등이 별반 달라지지 않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전북지역에서도 후진국형 사망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실제 지난해 3월 현대차 전주공장에서는 '끼임 사망' 사고가 발생한 것을 비롯해 김제 새만금수변도시 준설공사 현장에서는 '굴삭기 기사 사망' 사고 등이 잇따랐다. 또 군산에서는 하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터파기 공사 중이던 60대 노동자가 토사에 매몰돼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는가 하면, 남원에서는 한 공사현장에서 전기 작업용 화물트럭을 운전하다 동료 근로자를 치어 숨지게 한 사고가 발생했다.
진안에서는 용담댐 인근 국도 다리공사 현장에서 120톤 가량의 대형교량 구조물이 탑승해 있던 트레일러 위로 떨어져 노동자가 숨지는 일도 발생했다. 지난해 연말에는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철거 공사 현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추락해 사망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이처럼 노동 현장에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지만 처벌과 예방은 미약하기만 하다. 지난해 전북지역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된 7건의 사고 중 단 한 건만이 검찰에 송치됐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판가름하기까지 장기간이 걸리면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이유다.
특히 대부분 사건이 고용노동부 조사에서 검찰 단계로 넘어가지 못하고 있는 데다, 적용 여부를 판정하는 단계에서부터 상당한 시간이 걸리면서 예방효과 또한 미미하다는 지적이 우세하다.
'쪼개기 발주' 등 중대재해처벌법 피하기 위해 '편법' 남용

가장 최근에 발생한 지난달 29일 전주시 옛 대한방직 전주공장 부지 철거 현장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추락해 사망한 사건의 경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우세했다. 이 때문에 노동계와 시민사회단체들의 관심이 높았다. 그런데 조사가 본격 진행되기도 전에 처벌이 곤란하다는 말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조사기관인 노동부는 발주처인 ㈜자광이 하도급 업체 2곳에 ‘쪼개기 발주’를 맡긴 점 등으로 심사숙고 대상이라고 밝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앞서 발생한 유사 사고들에 대한 수사나 조사도 속도를 내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맴돌고 있어 진척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에 더욱 힘을 싣는 분위기다.
지난해 5월 발생한 세아베스틸 군산공장 근로자 사망 사건과 관련해 광주고용노동청은 세아베스틸 대표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지난해 10월 검찰에 불구속 송치했지만 사건 발생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돼 송치에 이르기까지만 무려 5개월이 걸렸다.
이처럼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사고들이 적게는 3개월에서 많게는 10개월까지 1차 조사에서 시간이 소요된데 이어 법정 공방 기간까지 포함하면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돼 결국 흐지부지되고 마는 경우가 다반사다.
“시행 1년이 됐지만 처벌은 단 한 건도 없어...제도적 보완책 필요"

이 때문에 전북지역에서 발생한 다수의 나머지 사건들의 경우도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 조사 중이긴 하지만 언제 검찰에 송치될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처음 시행된 법안이다 보니 관련 판례가 없고,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법과 상충하는지를 일일이 따져봐야 한다”는 게 관계 당국의 설명이지만 법 취지가 제대로 실행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 전북본부 관계자 등 노동계 전문가들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지 1년이 됐지만 현재까지 전북지역에서 처벌까지 받은 사례는 단 한 건도 없다“면서 "법 도입 취지가 예방이 목적인데 사고발생시 철저한 조사와 상응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시간만 끌면서 애매한 입장들만 내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따라서 "제도적 보완책이 당장 필요하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근로자 사망 등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또 2024년부터는 50인 미만 사업장에도 시행될 예정이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해 처벌된 사건은 찾아보기 힘든 실정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