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미디어오늘 9월 29일 기사(홈페이지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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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일한 KBS에서 말 한마디로 해고” 

“라디오·뉴미디어·TV 오갔는데…해고 사유조차 제대로 듣지 못해” 

7년 동안 작가로 일해 온 전북지역의 한 방송사에서 단 말 한마디로 해고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공영방송인 KBS전주방송총국(KBS전주총국)에서 일어난 이번 일은 그동안 방송사에서 일하고 있는 많은 비정규직 방송작가들의 홀대와 처우 개선 문제가 사회적으로 이슈화된 시점에서 발생해 더욱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미디어 전문 비평 언론사인 <미디어오늘>이 29일 보도한 "7년 일한 KBS에서 말 한마디로 해고”란 기사 제목에서부터 방송사 작가들이 노동 현장에서 얼마나 열악한 대우를 받고 있는지 그 실상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일할 땐 정규직 잣대가, 처우에 대해선 프리랜서 잣대 적용” 

KBS전주방송총국 홈페이지(캡쳐)
KBS전주방송총국 홈페이지(캡쳐)

전북지역 공영방송사에서 발생한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시선을 끌었다. 피해를 주장한 작가를 A씨로 지칭한 해당 기사는 리드에서 이렇게 피해자의 하소연을 전했다. 

“스물 셋, 대학 졸업 전부터 KBS전주방송총국에 들어와 7년간 청춘을 바쳤지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 받았다. 일할 땐 정규직 잣대가, 처우에 대해선 프리랜서 잣대가 적용돼왔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기에 더더욱 그냥 넘어갈 수 없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2015년부터 KBS전주총국에서 일해 온 방송작가가 '갑작스레 해고를 당했다'며 피해를 주장하고 나섰다”면서 “수신료 가치를 위해 공적 책무를 강화하겠다는 KBS가 방송작가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계약을 오히려 노동자를 내모는 수단으로 삼았다”고 전제했다. 

이어 기사는 “최근까지 KBS전주총국에서 ‘생방송 심층토론’ 작가로 일해 온 A씨는 28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자신이 일했던 회사를 상대로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냈다”면서 “지난 6월 30일 잠깐 이야기를 하자던 KBS전주총국 보도국장이 ‘7월 31일 계약 만료로 계약은 연장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A작가는 당시 보도국장이 일부 구성원과의 ‘불화’를 언급했을 뿐 관련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밝힌 뒤 계약 만료 통보를 서면으로 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회사가 여러 부가적 지시를 한 것만으로도 법적 근로자 징표" 

또한 “비슷한 시기 A씨를 비롯한 보도국 소속의 작가 3명은 각각 재계약 불가, 작가 공모, 재계약으로 운명이 갈렸지만 그 기준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고 밝힌 기사는 “결국 A씨는 인수인계를 끝으로 7년간 일한 직장을 떠나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밖에 <미디어오늘>은 기사에서 A작가가 그동안 KBS전주총국에서 일해 오면서 겪은 비정규직 프리랜서 작가의 생활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는지 상세히 전해주었다. 

또 부당 해고 구제신청을 맡은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의 말을 인용한 기사는 “특정 작업을 완성해 납품하라는 게 도급계약이고 특정한 파트만을 떼어내서 맡기는 게 프리랜서 계약”이라며 “회사가 여러 부가적 지시를 한 것만으로도 A씨가 법적 근로자라는 징표”라고 강조했다.

“MBC 해고 방송작가들, 부당해고 맞다”...방송작가 노동자성 첫 인정 '의미'

뉴스타파 1월 11일 보도(화면 캡쳐)
뉴스타파 1월 11일 보도(화면 캡쳐)

실제로 MBC 보도국에서 일하다 해고당한 두 방송작가가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로부터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인정받았다. 방송작가로는 처음으로 노동자성을 인정받은 사례가 나온 것이어서 큰 의미를 지녔다. 

지난 3월 19일 중노위는 두 방송작가가 MBC를 상대로 제기한 ‘부당 해고 구제신청’ 재심판정에서 두 작가의 부당 해고와 노동자성을 인정했다. 지난해 서울지방노동위원회(지노위)가 내린 1심 판정을 뒤집은 것이다. 지노위는 “사용 종속 관계에서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했다고 볼 수 없으므로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근로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두 방송작가의 부당 해고와 노동자성을 인정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중노위에서 노동자성을 인정한 결과가 나오자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은 “MBC 사측은 중노위 판정을 겸허히 인정하고 판정문 송달 이전에라도 조속히 원직 복직 의무를 이행하기 바란다”며 “중노위 판정을 계기로 MBC뿐 아니라 전국의 모든 방송사는 자사 내 비정규직 실태를 점검하고 처우 개선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김유경 노무사는 이번 KBS전주총국 A작가 문제와 관련해 “방송 프로그램 제작은 협업이고 작가 혼자서 어느 것도 결정할 수 없다"며 "원고를 쓰면 방송 전까지 여러 차례 지시에 따라 수정을 거치고 넘기는 과정이 있기에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고 주장했다.

KBS전주총국 “원고 집필 등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평가 있었다” 주장

KBS전주총국 전경
KBS전주총국 전경

그러나 KBS전주총국은 "A작가 생산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계약이 만기됐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미디어오늘>에 전했다. 해당 기사에서 KBS전주총국은 "계약 기간 A씨의 토론 원고 집필, 구성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며 "부정적인 평가는 A씨도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KBS전주총국 측은 또한 “계약을 종료하고자 할 경우 4주 이상의 기간을 두고 통보하도록 돼 있다”며 “계약 만료를 알린 것인데 공문을 작성해 전달하라는 건 전례도 없고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또 A씨가 사실상 근로자로서 일해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법적, 행정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생방송이 나가는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업무 시간(출퇴근), 업무 장소 등에 관해 아무런 구속이나 제재가 없었다”고 <미디어오늘>에 밝혔다. 

그러나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A작가가 일해 온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무늬만 프리랜서’라 볼 수 있다”며 “근로자에게 해고를 통보하려면 절차를 밟았어야 하기에 부당 해고”라고 주장함으로써 논란은 확대될 전망이다.

특히 김 지부장은 “지역 방송사 작가들은 ‘화분에 물주기’ 같은 자잘한 업무가 많은데, 오히려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많다”며 “그럼에도 좁고 일자리가 적은 지역사회에서 부당한 문제를 견디며 일하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고 덧붙여 지역 방송사 작가들의 고충이 얼마나 심한지 짐작케 한다.  

방송작가 노동단체 가입 등 연대 활성화 불구 여전히 지역에선 '홀대'

방송작가교섭요구 기자회견 포스터(전국언론노조 제공)
방송작가교섭요구 기자회견 안내(전국언론노조 제공)

한편 이와 관련해 지역 방송작가들도 비상한 관심을 보이며 공감하는 분위기다. 

전북지역의 한 방송작가는 “업무량은 정규직과 같거나 많아도 대우는 정규직에 훨씬 미치지 못한 게 현실”이라며 “작가들도 최근 들어 노동조합이 결성돼 민주노총 가입 및 단체협상 등에도 참여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지역에서 보는 시선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시민사회·종교·인권·여성 대표들은 지난 15일 KBS 본사 앞에서 ‘방송작가친구들’이란 이름으로 기자회견을 개최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방송작가유니온을 출범하고 방송작가들은 근로자성 인정과 최저임금을 보장해달라는 투쟁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방송사가 일절 보도하지 않으니 사람들이 모르고 방송사 역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이들은 “방송작가는 방송작가유니온으로, 방송작가 아닌 이들은 ‘방송작가친구들’로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방송작가친구들'은 방송작가 및 방송사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시민단체다.

방송작가친구들 "연대 힘으로 동참하면 공론화될 수 있다" 250명 서명 참여

김한별 언론노조방송작가 지부장(전국언론노조 제공)
김한별 언론노조방송작가 지부장(전국언론노조 제공)

김한별 방송작가유니온 지부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방송작가유니온을 출범하고 방송작가들은 근로자성 인정과 최저임금을 보장해달라는 투쟁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방송사들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니 연대의 힘으로 방송사가 두려워하는 여론을 만들고자 ‘방송작가친구들’을 모으게 됐다”고 밝혔다.

김 지부장은 "방송작가친구들은 방송사내 비정규직들이 착취당하는 노동 현장을 알리고 싸울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또 ”방송 현장에 있는 PD, 기자들이 함께하지 않는 이상 이 싸움은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며 “동료 선후배 방송작가분들도 적극 동참해 달라. 우리 함께 나서자"고 참여를 촉구했다.

KBS전주총국 향후 법적 다툼 등 결과 주목 

이처럼 방송작가들에 대한 처우 개선 요구가 확산되고 있고, 방송작가들의 연대 움직임이 시민사회로 확산되는 가운데 공영방송인 KBS전주총국에서 방송작가의 부당 해고 구제신청 등의 문제가 이슈로 부각됐다. 

그동안 방송작가들의 열악한 처우 문제가 줄곧 제기돼 온 만큼 이 문제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이는 한편, 향후 법적 다툼 등 결과에도 귀추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박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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