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정치권은 물론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했다. 마치 마주 보고 달리는 열차처럼 여야 정치권의 대립각이 첨예한 양태를 보이고 있다.
워낙 뜨거운 쟁점이라 내년 대선에 미칠 영향을 의식했을까? 극한 대치 국면을 보이던 정치권이 잠시 쉬어가기로 합의한 모양새다. 언론중재법안 본회의 상정을 한 달 가량 미루면서 정면충돌은 일단 피하게 됐다.

그러나 찜찜한 구석이 많다. 이번 언론중재법 개정안으로 가장 타격을 받은 쪽은 더불어민주당으로 보인다. 언론중재법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통과까지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정작 피해자 구제 및 언론개혁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언론개혁을 위해 칼을 꺼내들었다가 반대 여론에 직면하자 슬며시 다시 집어넣는 우스운 형국이 되고 말았지만 정작 필요한 언론개혁은 뒤로 한 채 언론중재법을 정쟁의 도구화로 만든 장본인이 되고 만 정당이 바로 여당이란 점에서 상황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언론중재법 밀어붙이던 민주당, 한발 물러선 이유는?
애초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처리를 강행하면서 ‘가짜 뉴스로 고통 받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개정안은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통상 ‘가짜 뉴스’라 불리는 보도가 그 대상이다. 문제는 가짜 뉴스에 대한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는 데 있다.
미국 등 외국의 ‘페이크 뉴스(Fake News)’란 개념을 그대로 차용하다보니 국내에선 개념 정의를 놓고 여지껏 혼란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계뿐만 아니라 정치권, 법조계, 시민사회단체 등이 합치된 개념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가짜 뉴스’라는 용어 외에는 미숙한 개념들을 각기 사용하는 수준이다.

그러다보니 언론중재법 개정을 둘러싸고 첨예한 대립 논쟁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합치된 개념 정의부터 필요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언론단체들은 30일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처리 즉각 중단과 사회적 합의 기구 수용을 거듭 촉구했다.
여기에 참가한 단체들을 보면 관훈클럽·대한언론인회·한국기자협회·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한국신문협회·한국여기자협회·한국인터넷신문협회 등 7개 언론단체다. 이들 단체는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 강행 처리를 즉각 중단하고,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한 야당과 각계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하라”고 촉구했다.
'언론개혁' 외치던 시민단체들, 개혁의 칼 빼든 정당 향해 꾸짖는 형태
언론개혁을 외치던 시민단체들이 개혁의 칼을 빼든 정당을 향해 꾸짖는 형태가 되고 말았다. 이들 단체는 “세계신문협회, 국제언론인협회, 국제기자연맹, 국경없는기자회 등 전 세계 주요 언론단체와 국내 언론단체, 야당·법조계·학계·시민단체 등이 이념과 정파를 뛰어넘어 한목소리로 반대했으나 집권여당은 입법폭주를 멈추지 않고 있다”며 “민주당이 각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개정안을 강행 처리한다면 언론중재법 개정을 무효화하기 위한 ‘위헌심판’ 소송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단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공동으로 위헌 소송 변호인단 구성에 착수했다”며 “변호인단은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즉각 기자회견을 열고 개정 언론중재법의 위헌심판 소송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등 가능한 모든 법적 조치에 대한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했다.
이날 오전에는 한국기자협회와 전국언론노조, 한국방송기술인연합회,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현업단체들이 민주당에 사회적 합의 기구 수용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이른바 언론 현업단체들도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이들 단체들은 성명에서 “사회적 합의 기구야말로 민주당이 입법권력을 민주적으로 행사할 마지막 기회”라며 “이 제안마저 저버린다면 가장 민주적인 권력에 의해 선출된 정부 여당이 가장 반민주적인 법안을 통과시켰다는 역사적 오명을 쓰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이들 단체는 국민의힘을 향해서도 “언론중재법 개정 반대 이유가 일부 보수언론과 자본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 아니라면 즉시 언론 현업단체와 시민사회가 제안한 사회적 합의 기구에 참여의사를 밝히고 건설적 대안을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언론중재법 환영하기도 반대하기도 힘든 지역언론?"
이처럼 여당이 밀어붙이며 추진하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뜨거운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지역에선 관심이 저조하다. 전국적인 뜨거운 쟁점이 지역에선 냉랭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지역언론들이 관심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언론들이 거의 이 이슈를 다루지 않으니 지역언론을 이용하는 뉴스 이용자들이 관심을 가질 리 없다. 마침 미디어오늘이 31일 ‘언론중재법 환영하기도 반대하기도 힘든 지역언론’이란 타이틀로 기사를 내놓았다. 지역의 실상을 제대로 반영했다.
[해당 기사] 언론중재법 환영하기도 반대하기도 힘든 지역언론
전국 각 지역의 내로라하는 진보·대안언론 관계자들과 언론·시민단체까지 종합적으로 취재한 내용이었다. 서울 안에서 시민신문의 길을 고집하고 있는 은평시민신문은 독창적이기로 정평이 나있다.
지난해 은평구청의 부구청장의 차량을 운전하는 운전직 공무원(운전원)의 과잉노동·과잉의전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다가 구청 측이 ‘왜곡보도’라며 보도 이후 신문사에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며 손해 배상과 정정보도 소송으로 주목을 끄는 신문이다.
미디어오늘의 이날 기사에 따르면 은평시민신문은 주민들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고 진실 보도를 추구하기 위해 더욱 꿋꿋하게 은평구청장 등이 세금으로 개인휴대전화 요금을 낸 사실 등도 추가 보도하는 등 행정권력 견제를 이어갔지만 구청 측의 압박이 거센 상황이다. 은평구청장, 부구청장, 운전원 등이 각각 500만원씩 총 1,500만원의 손해배상을 언론중재위원회에 청구했다. 이후엔 정정보도를 청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고위공직자 등은 제외'라지만 허울 좋은 말일 뿐”
박은미 은평시민신문 편집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고위공직자 등은 제외라고 하지만 이 말이 얼마나 허울 좋은 말인지 우리는 안다”며 “고위공직자 뒤엔 무수히 많은 공무원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행정력을 동원해 얼마든 언론사를 압박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 편집장은 이어 “지역신문은 기초자치단체와 가장 밀접한 위치에서 막중한 역할을 함에도 언제든 보복성 압박을 당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디어오늘은 기사에서 “은평시민신문 구성원은 편집장과 기자 합해서 총 2명”이라고 전해 마음을 짠하게 했다.
은평구 지역신문인 은평시민신문은 구청 조치에 항의하며 1면을 백지로 발행해 전국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미디어오늘은 기사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선 보복·반복적으로 허위보도를 할 경우 고의·중과실이 있다고 추정하지만 ‘보복·반복적’이란 표현에 역시 지역신문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나온다”며 “비판기능을 수행해온 언론사들은 이미 위축된 상태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바로 이 대목이 가장 염려되는 지점이다. 가뜩이나 힘 있는 정치권이나 토호세력, 행정기관 등에 기대어 비판적인 기사대신 우호적인 기사만을 주로 제작·유통시키는 지역언론, 특히 지역 일간지들의 보도 행태가 더욱 가관일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이현경 옥천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국회에선) 차떼고 포떼고 다 열어놨다지만 지역사회안에 대기업·중견기업이 어딨나. (언론중재법으로) 토착세력들이 더 심각한 부패에 빠질 수 있다”며 “이미 언론중재법(징벌적 손배)이 아니더라도 힘 있는 이들은 법을 악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은 기사에서 “옥천신문은 최근 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구제, 영유아보육법 위반으로 자격 정지된 어린이집, 방역수칙을 위반한 공무원 등 상대적으로 명확한 사건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언론중재위에 출석하며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언론중재법, 의혹·비판 보도 옥죌까 걱정하는 소수 지역언론들
이날 미디어오늘 기사에는 전북지역 언론사 기자와 시민단체 관계자가 자주 등장해 주목을 끌었다. ‘최근 석산업체 등은 완주신문 측에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신청과 수사기관에 형사처벌을 요청했다“는 기사는 ”전북 완주 일대에는 약 30년간 석산개발로 주민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기사는 ”산에서 돌을 채취하는 등의 공사가 진행되면 돌가루가 인근 마을로 날아들어 빨래를 밖에다 내걸지 못할 정도이고, 암 발병 주민들이 늘고 있다“며 ”이에 완주신문에선 꾸준히 주민들의 목소리와 석산개발의 문제 등을 보도하며 당국에 대책마련을 촉구했다“고 썼다.
이어 유범수 완주신문 기자의 말을 인용한 기사는 “‘형사 건이 끝나면 민사로 손배청구할 가능성이 있지 않겠나’라고 말했다”면서 “이는 대다수 비판보도를 막으려는 측에서 취하는 방법이며, 해당 언론사를 고소 고발과 손배 소송으로 압박하는 동시에 다른 매체의 추가 보도를 막는 효과”라고 분석했다.
완주군에서 발생하고 있는 환경훼손과 이로인한 주민들의 피해 등을 세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완주신문이 미디어오늘 기자에게도 다른 지역언들과 대조되는 사례로 보였던 모양이다.
지역 일간지들이 언론중재법에 관심이 적은 이유는?
이날 미디어오늘 기사 중에서 “지역신문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며 “지방정부를 비판·감시하는 곳과 지방정부의 스피커 역할을 하며 홍보비로 연명하는 곳인데 전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는 대목이 빼 아프다.
기사는 “한국기자협회 차원에서 나서서 언론중재법에 반대하면서 지역언론 기자들도 반대 서명에 동참했지만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것과 해당 법안을 당사자의 문제로 보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소송 걸릴만한 기사를 쓰지 않는 언론사나 기자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법 적용대상자들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언론중재법을 반대하는 언론현업단체들과는 다른 각도로 바라봐야 하는 웃픈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목이다. 그러면서 미디어오늘은 손주화 전북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과 인터뷰한 내용을 소개했다. 손 처장은 기자와 인터뷰에서 “사실 비리를 폭로하고 지자체를 비판하는 기사는 극소수니까 많은 기자들이 당사자라는 생각이 떨어지는 것 같다”며 “정치권 공방을 중계하는 느낌으로 지역에서는 체감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역언론사에서 일하는 많은 기자들이 깊이 있는 보도나 비판적인 기사 보도가 적다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언론중재법이 개정돼도 지역언론에서는 미미하게 적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드러낸 말이다.
이어 미디어오늘은 이날 기사에서 "박주현 전북의소리 발행인(언론학 박사)은 '지역언론사들이 언론중재법에 시큰둥한 것도 애초에 언론사들이 무리수를 두지 않기 때문'이라며 '예를들어 전북도지사 측근이 투기 의혹으로 경찰수사하고 전북도에서 감사가 이뤄졌는데 16개 일간지가 한줄 제대로 못 쓰고 전북CBS와 전북의소리 정도만 열심히 보도했다고 말했다"는 내용을 전했다. 기사는 또 “대다수 매체들은 지역 현안인데도 타사의 비판 보도를 관전해왔기 때문에 징벌적 손배도 남 얘기란 뜻”이란 해석도 붙였다.
“언론중재법 통과되면 관변 언론 늘고 비판 언론 줄 것”
그러면서 “박 발행인은 이 법이 통과되면 더욱 (지역언론사가) ‘친관 대변지’가 되지 않겠나 싶다”며 “지역에는 관에 기댄 관변단체들이 많아 진보매체, 대안매체들의 설 땅이 좁아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는 내용도 밝히면서 “관변단체는 징벌적 손배를 청구할 수 없는 ‘권력자’에 들어갈 가능성이 낮다”고 보도했다.
이날 미디어오늘에서 밝힌 또 다른 지역 핵심은 바로 뒤에 이어졌다. “지역신문 기자들이 이 법에 관심이 적은 두 번째 이유는 어차피 소송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압박에 대응하고 처리하느라 하루하루 힘들기 때문”이라며 “법조항, 단어 한 두 개 까지 들여다볼 여력이 안 된다”고 기사는 지적했다.
또 기사는 이승환 경남도민일보 뉴미디어부장이 쓴 “동의하지 않지만 반대할 수 없다”는 칼럼을 인용하면서 “법의 허점은 지적할 수밖에 없지만 언론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선 자기반성과 함께 기사의 질이 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기사는 다시 전북의소리 박주현 발행인의 말을 인용해 “처음 언론중재법 제정할 때(2005년, 징벌적 손배 제외)나 김영란법 만들 때도 언론계에서 ‘언론자유 침해’라고 비판을 많이 했지만 통과되고 시행하면서 좋은 쪽으로 기능하지 않았나”라면서 “이번 개정안도 시행과정에서 올곧은 지역언론이 위축된다면 다시 (개정)운동이 일어나며 정의로운 방향으로 갈 수 있다”라고 말한 내용을 강조했다.
언론중재법 논쟁 불구 ‘언론개혁’은 반드시 필요
한편 취재를 하다보면 지역의 사이비 언론, 특히 1인 미디어들이 허위 정보를 퍼뜨려 여론을 왜곡하는 경우가 심각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동이 태안신문 기자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허위 정보로 관을 압박해 광고비를 뜯거나 공무원을 협박해 개인사업에 이용하는 경우를 봐온 터라 관련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며 “심지어 가짜 뉴스를 SNS 등으로 퍼트려 호도하고 주민들은 가짜 뉴스를 근거고 피해 보상 요구하는 사례까지 있어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미디어오늘 기사는 끝으로 “현행법으로도 허위 조작 정보를 유포하면 1인 유튜브 방송이나 누리꾼도 처벌 받지만, 이런 사례가 드문 가운데 언론사만 규제를 강화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며 “이런 여론을 고려한 듯 윤영찬 민주당 의원은 ‘1인 미디어 징벌적 손배’에 해당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을 이미 발의했고 현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논란이 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문제는 다양해 보이지만 언론개혁을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산과 같다. 과거 김영삼·김대중 정부 때 언론사들에 대한 세무조사 실시 초기에도, 언론중재법 초기 시행 때도, 김영란법 도입 때도 언론개혁이라기 보다는 '언론 죽이기'라는 주장이 거셌다.
기득권 세력과 동조하는 주류 참칭 언론들의 목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크다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언론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시대적 과제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