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내년에 실시될 대통령선거와 지방선거가 점점 다가오면서 학연, 지연, 줄서기, 줄세우기 등의 구태 정치 풍토가 되살아나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선출이 가까워 오면서 전북지역 정치인들의 특정 후보 지지 선언이 잇따라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정치인이 후보 지지 의사를 밝히는 것은 자유지만, 소신보다는 정치적 셈법만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비등하다. 더욱이 조직과 인맥 등을 활용한 계파나 계보에 의한 조직 선거 또는 줄서기 정치의 후진성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몇 가지 사례들에서 잘 나타난다.
대선 주자 지지 선언 잇따라...“소신보다 정치 셈법 우선” 비난
[#사례 1]

지난 12일 더불어민주당 소속 전주시의원 18명은 정세균 대선 예비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날 시의회는 참여한 의원들과 참여하지 않은 의원들로 갈렸다.
이날 전주갑 지역구 소속의 시의원들은 대부분은 참여하지 않았다. 전원 참석한 전주병 지역구 소속 시의원들과는 대조를 보였다. 이상직 국회의원(무소속)의 민주당 탈당으로 사고 지역구로 분류된 전주을 지역구를 제외한 김윤덕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전주갑 시의원들은 1명을 제외하고 이날 모두 불참했다.
위원장인 김 의원이 이재명 후보를 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반면, 김성주 국회의원의 지역구인 전주병 지역구 시의원들은 빠짐없이 전원 참여하여 정세균 후보 지지에 이름을 올렸다.
이처럼 지역구 위원장이 어느 대선 주자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해당 지역구 지방의원들이 마치 한 몸처럼 줄서기를 하고 있는 모습이 반복되고 있다. 전주지역 2명의 민주당 현역 국회의원 중 김윤덕 의원은 대선 경선 후보 중 이재명 경기지사 지지와 함께 전북지역 조직을 담당하고 있다. 반면 김성주 의원은 지난 5월 일찌감치 정세균 전 총리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중립 지켜야 할 도의원들 특정 후보 지지 선언...구시대 정치 표본” 비판
[#사례 2]
전·현직 전북도의원 82명이 지난 7월 8일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 중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지지하는 선언을 했다. 민주당 소속 현직 도의원 35명 중 29명이 동참했다. 도의원 출신인 임정엽 전 완주군수 등 무소속 전직 의원들도 일부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민주당 복당 의지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이날 참여자들은 전북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역량과 덕망을 갖춘 우리 고장 출신의 정 전 총리가 대통령이 된다면 획기적 지역발전을 이룰 절호의 기회"라며 "당내 경선을 거쳐 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도민과 함께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또 "정 전 총리는 전북에서 4선, '정치 1번지'인 서울 종로에서 재선을 지냈고 장관·국회의장·국무총리를 역임함으로써 나라를 운영할 탄탄한 준비와 역량을 검증받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 전 총리는 대기업(쌍용)에서 일한 경험과 당 정책위 의장을 맡는 등 실물경제에 밝고, 총리로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막아냈으며 화합의 리더십으로 사회통합을 할 수 있는 준비된 대통령감"이라고 설명했다.
39명의 현 전북도의원들 중 민주당 소속 도의원은 35명. 이 가운데 이날 정 전 총리 지지에 참여한 현직 도의원은 민주당 소속 28명, 무소속 1명 등 29명이며 전직은 51명이었다. 현직 중에선 7명만이 정 전 총리 지지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날 참석한 도의원들은 세간의 따가운 눈총을 의식했는지 "도의원들은 정치인이므로 당의 경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선호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중립을 지켜야 할 도의원들이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구시대 정치의 표본이자 줄 세우기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상직 후보에 줄섰다가 낭패 당한 시의원들도
[#사례 3]

지방의원들이 동원된 세 과시는 선거철마다 반복된다. 지난 21대 총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사고지역으로 분류돼 홍역을 치르고 있는 전주을 지역구에서는 지난 총선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상직 후보에 많은 지방의원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이 의원 선거를 도왔던 시의원 2명이 최근 이 의원과 함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에서 직위 상실형을 선고 받았다. 전주지법 제11형사부(부장판사 강동원)는 지난 6월 16일 이상직 의원과 함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이미숙(효자 4·5동)·박형배(효자 4·5동) 시의원에게 징역 4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200만원을 각각 선고했다.
형이 확정되면 이들 시의원은 의원직을 잃고, 향후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이들은 지난해 4·15 총선 당내 경선 과정에서 중복투표를 받기 위해 이 의원이 선거에서 사용하는 네이버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또는 단체 문자메시지를 통해 권리당원에게 일반시민인 것처럼 거짓응답을 권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당시 이 의원은 이상직 후보 선거캠프 총괄본부장을 맡았고, 박 의원은 정책·상황실장으로 활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검찰은 이들 의원이 민주당 전주을 당내 경선 투표 과정에서 이 의원을 돕기 위해 권리당원에게 권리당원 투표뿐 아니라 일반시민 대상 여론조사도 거짓으로 참여토록 유도했다고 판단했다.
아직도 '학연'이 작동되는 정치 풍토
[#사례 4]

지난 17일 전북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이환주 남원시장을 불구속 입건해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북경찰은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 경선 기간에 정세균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문자를 보낸 이 시장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조사하면서 지역사회와 정치권에 파장이 크다.
이 시장은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 기간인 지난달 3일부터 5일 사이에 지인들에게 '정세균 전 국무총리를 응원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낸 혐의를 받고있다.
정 전 총리와 이 시장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란 점에서 지연 외에도 학연이 여전히 정치권에 작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됐다. 게다가 이 시장은 지난해 7월부터 사고지역으로 분류된 민주당 남원·임실·순창 지역위원장 직무대행까지 맡고 있다.
앞서 남원시 선거관리위원회는 이 시장에 대해 서면경고 조치했지만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의 반발이 거세다. 이 시장은 “문자 메시지는 알고 지내는 일부 지인들에게 보낸 것이며, 단체 톡방 글은 선거인단에 참여해 달라는 취지였다”고 해명했지만 사나워진 여론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민주당 남원·임실·순창 지역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는 이 시장의 '문자 메시지 사건'에 남원지역 일부 시민단체들은 “내년 지방선거에서 3선 제한에 걸린 이 시장이 다음 총선 행보를 위한 정치적 행보”라며 의심하고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가 활성화한 이면에 대통령 선거부터 국회의원 선거는 물론 광역·기초의원에 이르는 선거 조직이 상시로 가동되면서 줄서기 정치, 조직 선거가 선거 때마다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서는 공천권을 쥐고 있거나 막대한 영향력이 있는 현역 국회의원, 지역구 당 위원장에게 잘 보이는 것은 물론 충성을 다하는 구태가 반복되고 있다.
줄서기, 줄세우기...지방 정치의 중앙 예속 심화 요인
그러나 선거철마다 불거지는 줄서기 논란은 결국 지방 정치의 중앙 정치 예속을 심화시킨다는 따가운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구태는 한국 정치의 후진성으로 제기되는 국회에서 몸싸움, 상대를 파트너가 아니라 적으로 인식하는 태도, 선거에서의 무차별적인 네거티브 공세, 불법 여론조작, 자기 진영에 속한 인사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보호, 불법 자금수수, 이권 청탁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정치인들은 직업으로서 정치인이 아니라 특권 계급으로서 대접을 받고 주변인들에게 나름대로의 대우를 받기 때문이기도 하다. 따라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혈연, 학연, 지연 등 각종 인맥으로 얽혀진 정치구조를 개인적 능력과 성과로 평가하는 시스템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지적이 높다.
또한 정치 집단은 사회 특권층으로서 정치인이 아니라 대국민 정치 서비스를 하는 정치 집단으로 인식되도록 정치인들의 각종 특권이 사라져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특정 정당이나 집단에 팬덤으로 소속되어 자기 펀은 정의이고 반대편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박주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