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언각비(6)

이것인지 저것인지 불분명할 때 우리는 보통 헷갈린다거나 ‘알쏭달쏭’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말을 일본말로 하면? 답은 ‘아리까리’다.

중국어로는 ‘갸우뚱’, 프랑스어로는 ‘아리송’이다. 독일어로는 ‘애매모흐(애매모호의 변형)’이며, 케냐어로는 ‘깅가밍가’다.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우스갯소리다.

‘긴가민가’는 그런지 그렇지 않은지 기억이 분명하지 않거나 확실한 판단이 서지 않을 때 흔히 쓰게 된다. 이 낱말은 본디 '기연(其然)가 미연(未然)가'라는 원말이 줄어서 된 말이다. '기연가 미연가'를 줄여서 '기연미연'이라고도 한다. ‘~가’라는 의문을 나타내는 ‘~ㄴ가’에서 앞에 ‘ㄴ’으로 끝나는 단어 때문에 ‘ㄴ'이 탈락하여 된 꼴이다.

“기연미연한 일을 입 밖에 냈다가 만일 애기가 아니라면 그런 망신이 어디 있어요?” (박종화 ‘다정불심’)

“아비에 대한 두려움의 꼬리 부분이 아직은 약간 남아 있는 상태라서 정옥이는 기연미연한 시선으로 아비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윤흥길, ‘완장’)

“닛뽄진이지, 그럼, 상고쿠진(三國人)으로 알았나….” “얼굴 맵시가요….” “뭐 어째…?” 하하하…, 호호호…, 하고 한바탕 홍소(哄笑)가 요란하다.

오늘 낮에 들은 도쿄 TBS방송, 10년 넘어 연속인 홈드라마 ‘웃카리 부인과 치얏카리 부인(아차부인과 재치부인이라는 뜻)’의 한 토막이다.

행복스런 샐러리맨의 가정 풍경-라디오를 듣는 청취자들도 극중 인물의 웃음소리에 끌려서, 응당 따라 웃었으리라. 그나마 자그마치 수십만이.

‘삼국인’이란 기연미연한 명사는 중국인을 포함한 특수한 경우가 간혹 있기는 하나, 요즈음 와서는 열에 아홉, ‘조센진’을 두고 쓰는 문자다.

대본의 작가는 아마 무심코 이 문자를 꽂아 넣었으리라. 이렇다 할 악의는 아닐 것이다.(계획적인 작위라면 너무도 치졸한 솜씨이다.) (김소운 ‘목근통신’)

그런데, ‘알쏭달쏭’과 ‘알쏭알쏭’의 차이는? 겉으론 매우 닮은 형제 같지만 뜻은 아주 차이가 크다. 알쏭달쏭은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줄이나 점이 “고르지 않게 함부로” 무늬를 이룬 모양을 나타낸다. 반면 알쏭알쏭은 여러 가지 빛깔로 된 줄이나 점이 “규칙적으로” 무늬를 이룬 모양을 뜻한다. 따옴표로 강조한데서 알 수 있듯 규칙적이냐 불규칙적이냐의 차이다. 알쏭달쏭처럼 앞뒤가 다르니 불규칙이고 알쏭알쏭처럼 반복되니 규칙적이라고 분간하면 쉬울듯 싶다. 그러나 ‘생각이 자꾸 헷갈려 분간할 수 있을 듯하면서도 얼른 분간이 안 되는 모양’은 둘 다 같은 뜻이다.

'긴가민가'가 '기연가미연가'의 준말이었는지 알쏭달쏭했는데 이제 알쏭알쏭하신지?

우리말 뜻이나 어감, 꽤나 알쏭달쏭하고 괴까다롭다. 하지만 영어 단어는 기를 쓰고 외우는 판에 우리말 공부에 시간 좀 기울인대서 그다지 손해 볼 것은 없다.

/이강록 <사람과 언론>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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