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정년퇴임 앞둔 여태명 원광대 미술대 교수

                        효봉 여태명
                        효봉 여태명

"코로나19로 남북 정상회담 2주년 기념전 취소 아쉬워"

"6월 19일 예술회관 퇴임기념전서 30여점 전시"

"퇴임 후 중국 오가며 작품활동·전시·연구 이어갈 터”

여태명 교수(작업실에서)
여태명 교수(작업실에서)

코로나19의 광풍은 무서웠다. 멀쩡한 사람들이 역병에 걸려 세상을 떴다. 코로나환자를 치료하던 의료진들까지 숨졌다. 학교는 교실 문을 닫고 강의는 멈췄다. 경제는 곤두박질 쳤다. 온 나라가 크나큰 재앙에 빠졌다. 팬데믹이라 했다.

코로나19 광풍은 미술품 전시마당에도 불었다. 여태명 교수(64·원광대 미술대)가 당초 4월 27일부터 열려던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 2주년 기념전시회도 취소됐다. 그러나 여교수는 오는 6월 정년퇴임 기념전시회를 갖는다. 19일부터 25일까지 전북예술회관에서 연다.

여교수는 지난 2018년 4월 27일 판문점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함께 심은 나무의 표지석 글씨 ‘평화와 번영을 심다’를 민체로 쓴 바 있다.

여태명 교수의 자료앨범 중에서
여태명 교수의 자료앨범 중에서

여교수는 “60년 서예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글씨를 썼지요. 당시 역사적인 일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탰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어요. 세계 이목이 집중된 그 순간 가슴이 벅차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TV로 지켜보던 그 순간 가슴이 쿵쾅거렸던 여운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벌써 2년 전이 됐군요.”라고 돌이켰다.

여교수는 “평화의 길로 가는 남북 정상회담에 내 작품으로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며 “당시 두 정상이 말한 것처럼 한반도 평화 선언이 다시 뒤로 가지 않아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잠시 머뭇거리는 거 같아 안타깝습니다”라고 아쉬운 마음을 드러냈다.

현재 여교수는 코로나19 때문에 대학과 대학원생들에게 원격 강의하고 있다. “물론 실제 글씨를 쓰는 데 있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인터넷 강의에서 전달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얼굴을 마주하고 하는 강의와는 효과 측면에서 다르겠죠. 그래서 빨리 코로나 광풍이 잠잠해졌으면 좋겠어요.”

"퇴임 후 중국 작업실 더 확보 활동 영역 넓힐 것"

여태명 교수의 작업 모습
여태명 교수의 작업 모습

실습에서 직접 대면 지도해야 효과적인 부분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조금 아쉽기는 하다. 학생들만 딱한 게 아니다. 교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퇴임 후에는 중국을 왔다갔다 하면서 전시도 하고 자료정리도 할 계획입니다. 현재 중국 하얼빈에 작업실이 하나 있습니다. 연태 쪽에도 작업실을 하나 더 확보해서 작품도 하고 현지 작가·교수들과 30여년간 맺어온 유대도 계속 이어갈 생각입니다.”

연태 쪽에 더 작업실을 마련하려는 것은 우리나라와 가깝고 기후도 비슷해서 머무르기가 딱 알맞아서 그렇다. 더구나 비행장, 고속철도 등 교통이 아주 좋아서 생활이 아주 편리해서다.

여교수는 내년 초 대학에서 정년퇴임한다. 퇴임후 우리나라에서는 작업실 겸 미술관을 마련해서 작품도 만들고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소설·가사 필사본과 서간·동학 관련 판본 등 여러 자료들을 분류하고 정리한 뒤 이를 공개할 계획이다.

또 아주 오래전 시작했다 중단된 자전(字典)을 발간하는 일도 계속하겠다는 생각이다. 여교수는 1994년 용비어천가와 송강가사 판본체 자전 2권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젊은 열정으로 오로지 혼자서 어렵고 인내심이 요구되는 작업을 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진행하기가 벅차므로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았으면 한다. 그래야만 연구원을 두고 분류·정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90년부터니까 여지껏 30년 동안 강의 때문에 학교에 매여 있었는데 이제 어떤 소속도 없는, 어찌 보면 자유스러운 몸이 되지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얼마나 홀가분한지 몰라요. 물론 그 자유로운 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내느냐에 따라 극과 극으로 달라지겠지만…”

"무한히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작가다"

여태명 교수의  자료앨범 중에서
여태명 교수의  자료앨범 중에서

여교수가 학교를 떠난다 해서 아주 한가한 처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그는 원래가 체질적으로 한곳에 머무르는 것을 싫어한다. 습성도 그렇거니와 서예 작품에서도 그렇다. 한 곳에 머물러 쉬는 것을 마다하는 천성이라 끊임없이 움직이며 부산을 떤다. 때문에 퇴직 이후에 할 일이 더 많아질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영리한 사람은 늘 앞서간다. 이번에 뭘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벌써 다음에 뭘 할 것인가를 머릿속에 담고 있다. 한 번 전시에 성공했다 해서 거기에 만족한다면 이미 죽은 작가나 다름없다. 무한히 변화해야 한다. 그래야 살아있는 작가다. 생명력이 있다.”

지난 2006년 열었던 사랑노래 그림전은 작품이 없어서 못 팔았다. 그만큼 대성황이었다. 여기저기서 “여태명이 그림도 그렸어? 참”하고 감탄했다. 이때 여교수는 알았다. 어렵거나 무거우면 사람들이 안 쳐다본다. 서예나 그림이나 마찬가지다. 부드러운 것은 팔린다. 어려운 것은 안 산다.

“내 작품 천·지·인 초기에 그런 면이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려웠다. 내용이 좋은들 무엇 하겠는가. 사람들에게 호응받지 못하면 작품으로는 버림받은 거다. 작가 자신이 만족한다고 해서 그것이 좋은 작품인가? 작품이란 감상자가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감상자에게 어필하는 작품이 돼야 한다.”

여교수는 앞으로 천·지·인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고 또 소리를 테마로 서예로 표현하고 싶다고 한다.

“바람소리·물소리·빗소리 등 자연 소리가 다 다르다. 바위가 굴러 떨어지는 소리, 물이 떨어지는 소리 이런 것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심중이다. 천·지·인은 훈민정음 모음(각각 ·, ㅡ,ㅣ)인데 아설순치후 각각 자음이다. 이걸 어떻게 연결할지 궁리하고 있다. 천·지·인 시리즈는 도예작품에 서각을 하는 입체적인 서예작품으로 계속 이어나갈 작정이다.”

무한히 변해야 한다는 것이 예술가의 숙명이라는 여태명 교수. 퇴임은 하나의 절차일 뿐, 왕성한 그의 활동력이 앞날을 기대하게 한다.

/이강록 <사람과 언론> 편집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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