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바로온' 마을버스 손경애 주임의 특별한 삶

손경애 씨(42)는 전주시 시설관리공단 마을버스 운영부 주임이면서 전주기접놀이 '기잽이'다. 손 주임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것은 지난해 부터다. 전주기접놀이가 그와 친하게 될 수 있는 역할을 해주었다.
'기접놀이의 기잽이'는 큰 용기(龍旗)를 가지고 절묘한 기 놀이를 하는지라 오랜 시간의 강습과 연습 과정을 거쳐 양성되는데 지난해 6월 (사)전주기접놀이 전수관 개관을 앞두고 '기 놀이반' 강좌를 개설했다.

개설 소식을 듣고 뇌병변 2급 장애를 가진 필자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신청하기로 결심했다. 전통적으로 기접놀이의 기잽이는 남자들만 했었다.
그런데 금녀의 벽을 허물고 그 첫 주자로 태권도 유단자인 손 주임이 적격이라는 생각에 '전주기접놀이의 첫 여성 기잽이가 되어 보지 않겠느냐'는 내 제안에 그녀가 선뜻 응했다.
'금녀의 벽' 허물고 힘든 기접놀이 '기잽이'에 도전

그런 인연으로 우리는 ‘전주기접놀이 전수관 1기 기 놀이반 동기(同期)가 됐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임해 과정은 마쳤지만 기잽이가 못된 필자와 달리 그녀는 지난 10월 25일 '세계인이 집에서 즐기는 온라인 한국문화'라는 콘텐츠 촬영에서 기잽이로 공식 무대에 올라 세계무대에 첫선을 보였다.
이 공연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이 코로나19 시대를 맞아 해외 공연기회가 없는 문화예술인들에게 공연 기회를 제공하고 현장에서 공연을 접할 기회가 없는 세계인들에게 실감나는 한류문화를 제공하기 위해 실시한 공모사업으로 전주기접놀이의 첫 세계 무대였다.
세계적인 무대에서 정식 기잽이가 된 손 주임에게 “불편한 몸으로 함께 기잽이가 될 수는 없었지만 혼자 열심히 연습해 곧 나란히 무대에 설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며 응원했다.
손 주임은 중학생 때 2단을 따고 그만둔 태권도를 20대 초반에 다시 시작해 3단, 4단을 취득해 아예 전문 사범으로 취업을 할 정도로 솜씨가 뛰어났다. 활동적인 성격의 소유자 이기도 하다.
태권도 사범으로 성실하게 일하는 모습을 본 주변에서 태권도장 창업을 권유하는 사람이 늘면서 운동을 평생 직업으로 삼아야 하는지 고민에 빠질 무렵 원불교 교무의 권유와 추천으로 2001년 전주양로원의 생활지도원을 시작으로 사회복지의 길로 들어섰다.
16년 헌신적으로 종사했던 사회복지 일 그만두고 새로 찾아온 '변화'
전주요양원 시절 평생 인생 멘토인 김연규 교무와 운명적으로 만나고 이타적인 손 주임을 눈 여겨 본 김교무가 전무출신(專務出身 : 원불교에서, 교단을 위하여 헌신하는 출가 교역자를 이르는 말) 서원을 추천하며 성직자의 삶을 살 것을 강력하게 권유를 했다고 한다.
은퇴한 김 교무는 그 일에 대해 지금도 “ 이타적인 손 주임은 한 가정의 삶이 아니라 널리 많은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권유를 했었다고 말한다.
독실한 원불교 신자인 어머니 김순(68, 부안읍 동중리) 씨는 “교무님들을 성직자로 존경하지만 효성스러운 딸 경애만큼은 평범한 여자로 행복하게 살기 바라는 엄마의 마음에 극구 반대할 수밖에 없었다"며 "그 일을 생각하면 지금도 경애와 김연규 교무님에게 미안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원불교 신학과를 다니며 준비하던 서원을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로 포기하게 되자 퇴사할 수밖에 없던 손 주임은 익산 소재 원광종합사회복지관을 거쳐 원심원에 재입사 후 2016년 퇴사하게 된다. 복지관련 대학원 공부와 신학 공부를 해가며 16여 년 동안 헌신적으로 종사했던 사회복지 일을 그만두면서 다시금 큰 전환점을 맞게 된 것.
원불교의 도반(道伴)으로 13년 여 함께 일하며 전무출신(專務出身) 서원을 권유하고 추천한 김 교무는 "천만금을 맡겨도 끄떡없는 사람”이라는 한 마디 말로 그녀를 평가했다.
신학공부, 사회복지 업무이어 마을버스 운전...친절함 몸에 배어

활동적인 손 주임은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의식으로 16여 년을 종사하던 사회복지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활동적인 성격 탓으로 보인다. 새로운 일을 하려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게차, 대형 운전면허 등을 취득해 관광버스 운전을 하며 소리맴, 두드림 등의 전통민속, 예술단 회원으로 봉사활동을 하다가 기접놀이에 합류해 필자와 인연이 된 것이다.
16년여 사회복지 관련 일에 헌신적으로 종사했으며 원불교 신학공부를 해 한때 성직자를 준비하던 손 주임이기에 필자가 처음 만났을 때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 주임의 맨토인 김연규 교무를 만나 그 이야기를 했더니 “원불교에서는 사람을 부처님 대하듯 공경하고 중히 여기며 무정물인 물건도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원불교 신앙인의 자세이기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 하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 1일 그녀가 운행을 맡은 평화 10구역의 출발지인 완산체련공원으로 가니 전기버스의 충전을 하며 운행을 준비하느라 바쁜 손 주임을 만날 수 있었다. 18개 노선에 전기차 14대, 경유차4대를 운행 중이라는데 그날 손 주임은 전기차를 운행했다.

준비하는 중에도 체련공원에 운동하러 나온 주민들이 수시로 문의를 했는데 ‘사람을 섬길 줄 아는’ 손 주임은 바쁜 중에도 친절하게 안내를 하곤 했다. 운전석에 앉아 “자 이제 출발하니 안전하게 좌석에 앉아 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부드럽고 조용하게 버스는 출발했다. 그런데 처음 도착한 곳은 마을은 2009년 기접놀이의 백중행사가 열렸던 학전마을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승객이 없어 다음 마을인 원당리에 들어가니 종착지에서 출발을 위해 대기 중인 시내버스의 기사가 막 운행을 시작한 마을버스를 보고 자기 차에서 일부러 내려 차를 손보는 손 주임에게 말을 걸어오기도 했다. 모악산 자락을 한참 들어가야 비로써 나오는 추동마을에서 기다리던 첫 손님을 맞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마을에서야 첫 손님을 맞는 것을 보고 교통오지 교통은 공영버스가 책임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악산 자락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인지라 외부에서 마을의 존재를 잘 몰라 예로부터 피난지로 유명했다는 추둥마을에서 10여년 통장을 했다는 김영아(전주시 원당동 추동마을) 씨는 "노지에서 재배한 배추를 로컬푸드 매장에 내기 위해 마을버스를 이용한다"고 했다.
"캐리어가 크지 않아 기껏 해봐야 서너 포기 남짓이나 들어 있을듯 하다"는 말에 "로컬푸드는 신선도가 생명이라 하루에 팔 수 있는 양만 내는데 요즘은 코로나19 여파로 양이 많이 줄어 마을버스를 많이 이용한다"며 묻지도 않았는데 줄곧 마을버스에 대한 칭찬을 했다.
"태권도 4단 친절 아가씨에 중매 좀..." 웃음 활짝

시내버스에 비해 마을버스는 시간을 잘 지키며 친절하고 깨끗하며 조용해 승차감이 훌륭하다며 연신 칭찬을 이어갔다. 마을버스가 생기면서 시내버스 기사들이 안하던 인사도 하며 눈에 띄게 친절해졌는데 그것도 "마을버스가 가져다 준 이점"이라는 말까지 살뜰하게 챙겼다.
거기에 "이 차는 여자가 운행하니 더 믿음이 간다"기에 “저 주임은 태권도가 4단으로 아직 아가씨니 중매 좀 해달라”는 필자의 말에 일순간 차안에 웃음꽃이 피었다.
차가 시내로 진입하자 10여년의 통장 경력이 무색하지 않게 이제부터는 마을버스가 개선해야할 점을 말 할 테니 잘 듣고 기사에 빼놓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마을버스로 시내에 나오는 사람들은 물을 사거나 은행 등에 일이 있어 나오는 사람들인데 근린시설이 없는 지역 몇 군데만 정차해 불편하니 근린시설이 있는 곳에 정류장을 더 늘려주어야 제대로 된 마을버스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 총총히 차에서 내렸다.
회차 후 해양경찰 시험을 준비한다는 이소연(전주시 원당동 학전마을) 씨가 마을버스에 올랐다. 시험 준비를 결심하고 새해 첫날 새로운 마음으로 이른 아침부터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집안 행사를 위해 마을버스를 타게 됐다고 한다.
수영강사를 하다가 좋아하는 물에서 근무하고 싶어 해양경찰을 준비했다는 그녀에게 용기를 내 ”똑같은 시간에 비슷한 환경에서 공부하기에 공부 방법의 선택과 집중 정도에 따라 당락이 결정 된다“는 경험에서 우러난 내 생각을 말했다. 이 차를 운행 하는 손 주임에게 기쁜 전해길 바라며 손 주임과 필자가 기도로 응원하겠다고 말하니 차는 다시 학전마을에 도착하고 있었다.
"버스를 타는 손님들 모두 부처님처럼 대우..."
바로온 버스의 계류지인 완산체련공원은 필자에게도 남다른 장소다. 필자가 만2년의 입원치료 후 통원치료를 하면서 생활을 위해 아내는 5살 난 딸을 데리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해 장애를 얻은 후 처음 혼자 생활을 하던 때, 재활을 위해 많은 시간을 보낸 장소다.
혼자 하루를 무사히 지내는 일조차 내겐 대단한 일이라 재활운동을 마칠 무렵이면 아내에게 자랑스럽게 전화를 하곤 하던 때였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완산체련공원에는 사람이 많지 않아 필자가 조직한 재활카페 회원들과도 이곳에서 재활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삼천변은 운동하는 사람들로 붐벼 우리는 사람이 적은 완산체련공원을 이용했던 것이다.
빛조차 보이지 않는 긴 터널 속에 있는 것처럼 암울했던 시절이었다. 그토록 돌아가기를 원했던 일상을 회복한 지금, 전주시 한옥마을지원과에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전주시 시설관리공단 직원인 손경애 주임을 취재하기 위해 그때 그곳에 와있다는 생각에 깊은 감회에 젖어 식사 후 야간 차량 운행을 떠나는 손 주임의 버스를 배웅했다.
한때 성직자가 되고자 준비하던 독실한 원불교 신자로 노인복지시설 등에 16년여 근무하며 마음을 다해 사람을 섬겨본 사람, 직장 상사로 만난 교무님을 인생의 길라잡이 삼고 18년째 지극정성 섬기는 사람, 손 주임은 오늘도 승객들을 부처님처럼 공경하며 전주시 마을버스 바로온을 공경하며 운행하고 있다.

※다음 글은 손 주임이 항상 새기며 간직하고 있는 '삶의 길라잡이' 김연규 교무가 '바로온' 버스를 운행하는 그녀에게 남긴 당부의 메시지다.
"우리 경애가 본래의 마음자리, 텅 비고 두렷(흐리거나 흐트러지지 않고 분명함)하고 바른 자리로 돌아가는 수행을 하고 승객을 부처님 대하듯 공경하고 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대하며 버스를 운전하면 버스를 타는 손님들은 모두 참다운 사람으로서 대우를 받게 돼 마음이 기쁘고 편안할 것입니다."
/서치식 시민기자(전주기접놀이보존회 홍보국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