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주의 영화 속으로-알라딘

그 땐 그랬지, 디즈니여!

한 때 매년 나오는 디즈니의 새 애니메이션을 챙겨보는 것이 매우 당연한 일처럼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현재 상영 중인 ‘라이온 킹’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자리 잡아서 고개를 잔뜩 들고 바라보던 커다란 화면이 생각난다. 전반적인 내용은 희미하지만, 아빠 사자가 절벽에서 떨어지던 순간의 표정과 더불어 그 상황에 대단히 분노했던 어린 날의 감정만은 내 머릿속 기억 보관함에 잘 저장되어 있다.

알알못, 엉뚱한 질문

‘알라딘’은 ‘라이온 킹’보다 더 내게 남아 있는 기억의 부스러기들이 적었다. 주인공인 알라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영화를 보기 전에는 램프의 요정 ‘지니’와 유명한 OST인 ‘A Whole New World’밖에 몰랐다. 줄거리는 전혀 알지를 못한 채 막연하게 ‘고소공포증 있는 나 같은 사람도 마법 양탄자를 즐겁게 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본다거나, ‘세 가지 소원만 들어준다고 하면, 세 번째 소원을 말할 때 열 가지 소원을 더 들어주세요, 라면서 영원히 소원을 빌면, 얌체 같다거나 그건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라고 하려나?’ 하는 생각만 해봤을 뿐이었다.

실사화 우려=괜한 걱정

그리고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화한 작품이라는 것이 이번 영화 관람을 결정하는 데 은근히 걸림돌이 되었다. 흔히 책이 원작인 작품을 영화화했을 때도 그렇지만, 만화를 실사화했을 때도 ‘어쩐지 내 생각과 다른데? 실망이야! 차라리 손대지 말지.’라는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어서 고민이 한층 깊어졌다. 하지만 결론은 ‘(극장에서) 보길 잘했다!’ 좀 더 나아가자면, ‘관람료가 적어서 미안. 더 내도 될 것 같아!’

엔터테이닝 뮤지컬 영화의 정석!

알라딘은 매우 알찬 엔터테이닝 무비라고 할 수 있다. 풍부한 볼거리와 따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기게 만드는 OST로 무장하여 관람객들은 눈 호강, 귀 호강, 그야말로 알라딘이라는 바다에 풍덩 빠지고 만다. ‘셜록 홈즈’ 시리즈로 유명하며, 속도감 있는 편집과 스타일리쉬한 액션을 선호하는 ‘가이 리치’ 감독과 더불어 알라딘, 자스민, 지니, 자파 등 캐스팅 조합도 훌륭했다. 특히 자스민 같은 경우는 영화를 보는 내내 상영관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공주 완전 예뻐’라는 소곤거림이 열 손가락으로도 세기 부족할 정도로 매력이 넘쳤다. ‘speechless'를 온몸으로 열창하며 감정을 토로하던 자스민은 여자인 나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멋쁨 그 자체!

개인적으로는 윌 스미스의 팬인데, 이번에도 역시나랄까. 인터넷 검색을 해 봤을 때 캐스팅 미스 논란이 있었다고 해서 오히려 놀랐을 정도였다. 원래 스타성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영화 ‘나는 전설이다’를 보고 나서 ‘아, 이 사람은 혼자서도 영화 전체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는, 그저 스타가 아닌 배우구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여기서도 램프의 요정 지니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완벽하게 소화해내서 어쩐지 다른 지니는 상상이 되지 않게 만들어버렸다.

‘알라딘’이 연기, 춤, 노래, 유머의 4박자를 고루 갖춘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는 세간의 평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기에 ‘보헤미안 랩소디’와 마찬가지로 4DX 싱어롱을 넘어서 댄서롱 상영 이벤트까지 나오는 것이리라. 가만히 앉아 수동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캐릭터들과 함께 노래 부르고 춤추며 완전히 영화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 흥부자가 많은 한국에서 더욱 흥행하기 좋은 요소들을 갖춘 영화가 아닌가 싶다. 인디아나 존스, 툼 레이더, 캐리비안의 해적, 반지의 제왕과 같은 보물찾기 어드벤처물이 슬쩍 머리를 스쳐지나가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건전하고 밝게, 마치 축제에서 터지는 불꽃놀이 같은 따뜻함과 화사함을 지닌 영화, 그게 바로 알라딘이다.

나를 찾는 모험

거리의 좀도둑 ‘알라딘’은 마법사이자 재상인 ‘자파’에 의해 마법 램프를 찾아 나섰다가, 주인에게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 ‘지니’를 만나게 되고, 우연히 만났던 자스민 공주의 마음을 얻으려다 점점 더 예상치 못한 모험에 휘말리게 된다. 어렴풋한 기억 속에서 알라딘은 특유의 이국적인 느낌과 판타지 가득한 모험뿐이었는데,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된 알라딘은 ‘진정한 자신을 찾아!’라는 메시지를 내게 던져주었다.

시녀라고 속였던 공주 자스민, 왕자라고 속였던 도둑 알라딘. 그리고 ‘진흙 속의 보석’만 들어갈 수 있다던 동굴. 그 곳에서 어렵사리 마주할 수 있었던 램프의 요정 지니. 공주에게 쉽게 다가가지 못하던 알라딘에게 ‘너의 가치를 믿어.’라고 말해주던 지니. 글쎄, 얼마든지 여러 각도에서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있는 상황이자 대사들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게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로 들려왔다. 진정한 나를 찾아. 꾸밈 없는 나, 거짓 없는 나, 여러 가지 변형된 기억들과 상대방의 말들에 파묻혀 숨어버린 나. 그런 나를 찾아내서 마주하고 바라보자. 그 과정은 쉽지 않을 거야. 하지만 마주해야만 해. 그리고 자유로워져. I wish... to set you free.

지니는 선도 악도 아니다. 어떤 주인을 만나, 그 사람이 어떤 소원을 비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니 그저 그대로 행할 뿐이다. 지니는 어쩌면 우리 모두가 가진 내면의 자아 또는 잠재된 가능성 같은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본다. 소원을 빌어, 이뤄줄게. 일방적 명령에 가까운 소원을 비는 주인이 될 수도 있겠지만, 서로를 돕고 함께 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제일 가까운 파트너. MYSELF. 함께하는 순간 모든 마법이 현실이 된다는 것은 한낱 포스터의 문구로 그칠 문장이 아닐지 모른다.

나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어 도전할 가치는 충분한 일일 것이다. 무더운 여름 밤, 조심스레 마음 속 램프의 먼지를 꺼내어 닦아본다. 문질문질. 내 소원은 말이야. 

/김명주(<사람과 언론> 제6호(2019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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