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혜경의 '기억의 기록'
“기억은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어떤 경험을 같이 한다는 것은 일생일대의 사건이다. 여러 사람이 뜻을 같이하여 만나는 장소를 뜻하는 광장의 개념을 좀 더 확대해보면 아직 개발도상국 단계였던 우리의 1960년대 공설운동장 건립은 시민들의 염원이기도 했다.
빈자일등(貧者一燈)의 성의로 1963년 전주 덕진원두에 전주종합경기장은 탄생했다. 총 건립비용 8,000만원 중 3,500만원이 도내 초등학생 5원, 중고등학생 10원, 대학생 20원, 공무원 50원씩 일률적으로 걷은 성금으로 모였는데, 당시 분뇨수거로 푼푼이 모은 500백원은 1착으로 전북일보사를 통해 기탁되었다.
25일 상오 인생원 원장 이봉식씨와 동원 분뇨수거원생 대표 공기석군은 오백십원을 직접 본사에 기탁해왔는데 그간 그들이 아껴쓰고 저축했던 돈을 가져왔노라고 공기석군은 말하고 있었다. 누더기였지만 깨끗하게 세탁해 입은 윗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공군은 이날 가난한대로 극히 자랑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이들의 빈자일등(貧者一燈)격의 이 성금이 앞으로 도내 부유층과 온 도민들의 성심을 불러일으켜 주었음 한다. - 분뇨수거서 모은 푼푼돈 『인생원』서 제1착으로 – 1962년11월30일, 전북일보.
제44회 전국체육대회 유치가 확정되면서 종합경기장 건립을 위한 범도민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러한 정신은 건설현장에도 그대로 전해졌다. 경기장 건설 당시 공사 현장 감독 공무원이었던 임양원(91)씨는 8개월의 공사기간 동안“새벽5시부터 밤까지 강행군을 하면서도 열정 넘치게 일해주신 현장 노동자분께 고마운 마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냥 공사가 아니라 전주 자부심을 세우는 것이다는 말씀을 먼저들 하셨어요.”라고 회고한다. 60여년 전 매일의 흙먼지와 준공일까지의 긴장은 세월 너머로 사라져도 이렇게 서로의 마음에 닿은 진실함은 견고한 기억으로 감동의 종을 울린다.
1963년 10월 제44회 전국체육대회 전주 개최를 시작으로 제7회 전주시민의 날(1965), 전북학도종합체육대회(1965), 신민당 김대중 대통령 후보 연설회(1970), 전국민속경연대회(1971), 제1회 국립대학교체육대회(1973), 제1회 전주대사습대회(1975)가 연이어 전주종합경기장에서 열렸다. 지금이야 각 종 문화행사가 넘치고 공간도 많지만, 1960-70년대는 경기장의 위용도 큰 관심거리였으며 단옷날이며 풍남제, 각 종 행사에 구경가는 것이 일상의 단조로움을 깨는 큰 즐거움이었다.

1980년 제61회 전국체전 개최를 계기로 경기장은 대대적인 규모 확장 공사를 하고 변화를 맞이한다. 1970년대까지를 탄생에서 도약기로 본다면 1980년대를 거쳐 1990년대까지는 과히 전주종합경기장의 전성기로 봐도 무방하다. 민주화 열망과 경제 성장의 혼돈 속에서도 전북 체육의 성지로, 문화 체전의 상징으로, 전설의 돌격대 쌍방울레이더스의 홈구장으로, 그 날의 함성은 경기장 곳곳에 역사의 흔적으로 남았다.
전주민속난장(1984), 천주교 전주자치교구설정 50주년 기념식(1987), 제29회 전국민속경연대회(1988), 제72회전국체전(1991), 쌍방울과 OB의 프로야구 개막전(1991), 동계유니버시아드(1997)로 경기장은 흥이 넘쳐고 뜨꺼웠고 신명이 났다.
경기장의 원래 목적이 전문 체육인들을 위한 대규모 행사장을 필요로 생겨나지만 시대의 흐름을 타고 생활 체육인들의 동호회, 문화 광장, 시민들의 놀이터로 자리잡은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한일월드컵 응원전(2002), 인라인국제마라톤대회(2005), 전라북도음식맛축제(2008),전국국민생활체육대축전(2009),전주국제영화제(2015), 사랑의김장나눔행사(2016), 가맥축제(2017), 얼티밋뮤직페스티벌(2017)같은 다양한 행사가 경기장 일원에서 열렸다. 지어진지 40년이 지나 오래되고 낡아 제구실을 못하기 시작할 때도 다채로운 시민 행사가 열리는 즐거운 공간으로 함께 있었다.

전주종합경기장의 탄생을 위한 주춧돌을 놓았던 1962년부터 시간은 흘러 60여년이 지났고 시민들과 함께 숨쉬고 열광했던 맥박이 느려져서 이제 조금씩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다. 3만명의 관객을 수용했던 위용과 역전의 순간과 환희로 가득찬 축제의 열기, 박수와 함성은 옛일이 되었다.

그런데 낡고 허름해진 이 경기장의 일대기를 정리하다 보니 흙과 철근으로 단단하게 지어진 구조물이 오랜 시간 완산벌 전주 사람들과 희노애락을 함께 하며 희망의 한자락을 같이 키워온 유기체로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낀다.
전주 토박이로 당당히 우리들의 기억에서 환히 빛나며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온 우리 시대 산 증인, 전주종합경기장에게 말을 걸어보게 된다.

그 모든 시간과 담아놓은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고 싶은지. 물자도 부족했고 팍팍한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고단한 시절에도 어떤 간절함은 서로 이어지고 연결되어 피가 통하는 혈관이 되었고 결국 어느 지점에 다다랗는데 그 때부터 맥이 뛰기 시작하더니 내게도 심장이 생겼다고 말할까? 가만히 귀를 대본다.
기억은 시간이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 축적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시간이 축적된 곳에 경험이 자라고 다시 이 경험들이 모여서 공통된 이야기를 생성한다. 이야기는 다시 사람들에게 돌아가 생명을 얻는다.
전주미래유산 1호로 지정된‘전주종합경기장’의 기억을 환기하고, 시간의 흔적을 소중하게 보존하기 위해 관련 자료를 모아보니 그 날의 염원과 함성, 감동이 다시 우리들에게 전해지는 것 같아 뭉클하다. 그래서 이 빛나는 기억이 시민들 가까이에서‘시민의 숲 1963’으로 다시금 살아 숨쉬길 촛불 하나 켜는 마음으로 빌어본다.
/신혜경(전주정신의 숲 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