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철의 '의학 에세이'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유행이 반년 넘게 지속된 지금, 상황을 돌아보면 절망감이 든다. 사람들은 당장 역병을 물리칠 방법에만 흥미가 있을 뿐 근본 원인에 대한 성찰은 자취를 감추었다.

병원체와 환경과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고찰한 책들은 더 이상 팔리지 않는다. 위기를 이용해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와 코로나19 이후에 대한 근거 없는 전망서들이 인기다.

이 판국에 자기를 더욱 채찍질하라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쓴웃음이 날 뿐이다. 역사상 가장 더운 여름이 언제였을까? 쉬운 질문이다.

2015년 이후 폭염은 거의 매년 기록을 갱신하므로 항상 “올해 여름”이 답이다. 2020년도 예외가 아니었다. 북반구의 여름 기온은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8월 1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의 기온은 관측 이래 최고라는 섭씨 54.4도를 기록했다. 북미 대륙의 서해안은 울창한 숲이 아름다운 지역이다. 그만큼 탈 것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온건조한 여름이 이어지니 아름드리나무들도 건강을 잃고 우뚝 선 채 장작이 되어간다. 산불이 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화산 폭발 등으로 특정 지역에 태양 복사가 줄어들면 이듬해부터 지구 반대편에 극심한 가뭄이 찾아온다. 남한 면적의 10% 이상을 잿더미로 만들며 우주에서도 연기와 불길이 보였다는 대화재의 영향이 화산 폭발만 못 할 리 없다. 내년부터 지구 곳곳에 가뭄이 들고 기근이 찾아올 것이다.

고통은 빈곤국의 취약계층에 집중되고, 국가 간 갈등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은 기축통화인 달러와 막강한 군사력을 쥐고 자국의 고통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는 나라다. 대화재가 어디 남의 일이겠는가.

이럴 때 사람들의 선한 의지를 결집하고, 상상력을 발휘하고, 일상 속에서 쉽게 기후행동을 실천할 길을 마련하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다.

하지만 ‘기후악당’ 국가인 우리는 나무 한그루도 심지 않으면서 어린 학생의 표창장과 군인의 휴가를 두고 입씨름만 한다. 국회를 없애버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코로나19는 언제 물러갈까? 아무도 모른다. 확실한 것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이번을 넘겨도 조만간 똑같은 위기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코로나19를 이겨내도 다른 전염병이 반드시 찾아온다.

싼샤댐은 올해를 견뎠지만 내년, 내후년에 점점 큰 홍수가 온다면 그 역시 알 수 없다. 이게 모두 한 가지 문제라면 차라리 잘되었는지 모른다. 한 가지에만 집중하면 될 테니까.

다만 ‘생전 처음 보는’ 비상사태를 극복하려면 비상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무엇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포스트 코로나를 묻지 마라. 예언자들을 믿지 마라. 그건 예측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손에 달린 일이다.

/강병철(꿈꿀자유 서울의학서적 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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